죽음보다 무서운 건, 외로움이었다

맛있는 밥이 생각나요, 아주머니.....

by 별하

[작가노트]

인생을 살다 보면, 사람에게 남는 건 결국 ‘밥의 기억’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 내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주던 그 마음, 그 온기가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나는 오랜 시간 경찰로 살며 수많은 죽음을 봤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슬펐던 건 ‘외로움에 쓰러진 밥집 아주머니’ 었다.
그분의 마지막은 조용했고, 또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함바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회사원은 구내식당에서, 학생은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그럼 순찰차를 타고 다니는 경찰은 어디서 밥을 먹을까

싸고 맛있는 동네 식당이다. 주인이 경찰에게 호의적인 곳이면서 장부에 이름을 적고, 월말에 정산하는 그곳

내가 부천에서 근무하던 시절, 전라도 음식을 맛있게 해 주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지구대 팀원 대부분이 그 식당 단골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두 딸을 홀로 키워내신 훌륭하신 분이었다.
큰딸은 뉴욕에서 유학 중이고, 작은딸은 지방에서 대학을 다녔다.
그래서 딸들이 오지 않는 날, 대부분 혼자 외로움과 함께 식당을 지키셨다.
가족이라면 그저 단골들이다.


아주머니의 밥상은 참 따뜻했다. 배추김치의 숨이 적당히 죽어 있었고,
된장찌개는 구수했고, 가끔 나오는 홍어무침엔 나의 고향 냄새가 배어 있었다.
나는 고향이 그리워질 때마다 그 집으로 향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경찰, 소방관, 구청 직원, 군인… 서로 만난다. 밥을 이유로 대면서
누구나 그 식당을 한 번은 들렀다. 그만큼 사람 냄새나는 곳이었다.


어느 날, 아주머니가 유난히 들떠 있었다.

“며칠 있으면 뉴욕에서 큰딸이 온대. 갑자기 온다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이날 음식은 더 맛있었다. 반가움이라는 양념이 듬뿍 추가되었으니까.


며칠 뒤, 식당에 가보니 아주머니 얼굴이 어두워져 있었다. 이 날따라 식탁 위의 반찬들이 아주머니의 눈치를 보면서 조용했다.

“아니 이럴 수가 있어… 뼈 빠지게 공부 보냈더니…” 박 경사님이 이유를 묻자 아주머니는 겨우 입을 열었다.

“돌도 안 된 머시마를 품고 왔네. 이년이… 아이고 내 팔자야.”


큰딸이 아기를 안고 귀국한 것이었다. 뉴욕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남자와 만나 혼자 아이를 낳은 것이다. 그래서 아주머니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며칠이 지난 후, 식당 안 어두운 구름은 옹알옹알 바람에 어둠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손자의 재롱에 웃음이 피어났고, 그 웃음이 딸에 대한 서운함도 녹았다. 그렇게 모처럼 가족이 다 모였다. 딸 둘과 사위, 그리고 손자,


그렇게 식당 안은 다시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그런데 행복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딸은 다시 뉴욕으로, 둘째는 학교로 돌아갔고,
식당엔 아주머니 혼자 덜렁 남았다. 며칠 뒤, 아주머니는 식당 문을 닫았다.


“며칠 쉬려고. 다른 식당 가서 먹어, 미안해” 말투엔 기운이 없었다.


우린 그저 “네” 하며 돌아섰다.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몰랐다.

며칠 후 순찰을 돌다 그 식당 앞을 지나는데 셔터가 반쯤 열려 있었다.


“와, 문 열었네! 드디어 다시 하시나 보다” 반가운 마음에 허리를 숙여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코끝에 이상한 냄새가 스쳤다. 술 냄새였다. 식당 안에는 30~40병의 소주병이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골방에서 미세한 숨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가 천장을 향해 누워 있었다.

입가엔 검은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로 나는 알 수 있었다.

“응급이다.” 곧바로 119에 연락했다.

이 식당에 익숙한 구급대원들이 쏜살같이 도착했다.
그러나 결국… 그분은 병원에서 눈을 감으신 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병원에서 날아온 사망 소식, 아마 깊고 깊은 외로움이 흉기가 되었던 모양이다.

딸들이 멀리 있고, 매일 같이 밥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도 없었으니,
식당엔 외로움이라는 친구만 함께 아주머니와 남았으니,

그저 술로 생(生)을 억지로 억지로 버티고 버티다, 마지막엔 그 외로움의 아가리에 먹히셨다


며칠 후, 뉴욕에서 큰딸과 사위, 그리고 옹알옹알 손자도, 작은딸도 왔다.

장례식장 영정 속 아주머니는 편히 웃고 있었다.

마치 “너희 왔구나, 이젠 외롭지 않다”라고 말하는 듯이



[소 에필로그]


누가 아주머니 식당 셔터를 열어놓았을까.
아마도 마지막 순간, 누군가 찾아와 주길 바라셨던 게 아닐까.


그때 그날 이후 나는 가끔 생각한다. 죽음보다 무서운 건, 그리움뿐인 외로움이라는 것을,

순찰 중 식당 앞을 지날 때, 불 꺼진 간판이 유난히 마음에 걸린다.

‘맛있는 밥이 생각나요, 아주머니’ 그때 밥 냄새가 여전히 마음가에 맴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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