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속도, 저항의 아름다움

살기 위해 문 그 한 입은, 생명의 마지막 언어였다

by 별하

[작가 노트]


누군가는 말한다.
술 한잔은 퇴근 후의 피로를 풀어주는 인간의 오래된 의식이라고, 경찰도 다르지 않다.


술자리에선 사건보다, 사람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하지만 그날, 형님이 들려준 한 이야기는 술기운보다 오래 남았다.

그 이야기는 한 형사의 손끝에서 피어난, ‘나무늘보의 저항’이었다.



퇴근 후의 소주 한잔은 경찰에게도 신성한 의식이다. 쌓인 피로를 풀고, 그날의 무거움을 덜어내는 시간
하지만 그날 형님은 유쾌한 썰 대신, 자신이 처음으로 관통상을 당했던 사건을 이야기했다.

바로 ‘동물보호단체의 고발 사건’이었다.

반지하 단칸방 안, 불법으로 감금된 ‘특별한 존재’가 있다는 제보, 형님의 팀에서 그 수사를 맡았다.


그 존재는 남아메리카 숲의 느린 생명체, 나무늘보였다.
영화 주토피아에서 민원 도장을 천천히 찍어주는 바로 그 존재

형님은 포획 장비도, 전문가도 없이 현장으로 갔다.

주변 동물원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형사 둘이서 철장을 열었다.

나무늘보는 철창을 두 팔로 감싸고 있었다.

형님은 천천히 다가가, 나뭇가지를 이용해 그의 손톱을 하나씩 펴주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느림의 대명사라 불리던 나무늘보가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형님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그의 이빨에 관통됐다. 살기 위한 본능이었다. 두려움이 가득한 그 한 입은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저항의 언어였다.


그 반지하에서 나무늘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한때는 바람결에 흔들리던 나뭇잎의 나라에서, 어느 날 바람 한점 없는 반지하의 공기를 마시고 있었겠지,


갑자기 변해버린 낯선 환경, 낯선 철장, 낯선 냄새 속에 갇혀 하늘 대신 형광등을 바라보며 살던 시간을, 그의 느림은 게으름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겸손이었을지도 모른다.


형님은 붕대를 감은 손으로 말했다.

“살기 위해 문 거였어, 그 녀석은 나를 공격한 게 아니라, 세상을 견딘 거야.”


사람의 욕심은 참 빠르다. 돈을 벌기 위해, 때론 특별해지고 싶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한 생명을 낯선 나라로 납치한다. 하지만 느림은 죄가 아니다.


살기 위해 문 나무늘보의 그 한 입에는 ‘살아있음의 선언’이 담겨 있었다.




[소 에필로그]


형님의 손가락 흉터는 지금도 그때의 기억처럼 남아 있다.

그는 가끔 말한다. “그 녀석이 아직도 동물원에서 천천히 매달려 살고 있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살기 위해 물어야 했던 그 느린 생명, 그의 저항이 아름다웠다고,

그리고 오늘, 나는 다시 생각한다. 느림은 나약함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가장 오래된 생존 방식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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