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묵은 짭새, 이제는 인생의 새로운 신곡을 연습한다
[작가 노트]
사람들은 경찰을 흔히 ‘짭새’라 부른다. 한때는 그 말이 듣기 싫었다.
그 안에는 비아냥이 섞여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20년을 이 길에 서 있다 보니, 이제는 ‘짭새’라는 말에도 정이 묻어난다.
욕이 아니라, 삶의 별명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벌레는 아닌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로 표현해 주었으니 그저 감사하다.
나는 처음부터 ‘짭새’는 아니었다. IMF 외환위기 전, 나는 ‘토목쟁이’였다.
전라도에서 1군 건설회사에 다니던, 현장 냄새가 가득한 밥을 먹던 기술자였다.
한때 나는 120만 평, 제주 묘산봉 골프 유락시설 현장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맞고 있었다.
제주 노형동에 있는 ‘유나이티드 아파트’에 전세로 살면서 3천만 원에 사라고 했던 그 시절,
“그냥 나중에 사자.” 하고 흘려보냈다. 지금은 어느새 억대가 넘는다. 그때 사둘 걸… 아까비, 이 말이 지금도 입 안에서 씹힌다.
어느 날 IMF가 왔다. 건설회사들이 줄줄이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나도 3차 정리해고 명단에 올랐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도대체 부도 안 나는 직업은 뭘까”라고, 답은 하나였다.
공무원, 그중에서도 제일 많이 뽑는 경찰공무원, 그러나 문제는 나는 공업고등학교 토목과 출신이었다.
영어, 형법, 형소법… 전부 생소했다. 그래도 나는 ‘쟁이’ 근성으로 덤벼들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그게 내 유일한 나만의 공부법이었다.
학원 의자에 앉으면 6시간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담배 피우러 옥상에 나가서 잡담하는 사람들 틈엔 끼지 않았다.
그 시간에도 책을 봤다. 그렇게 1년 2개월, 나는 경찰 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경찰 인생의 첫 노래를 부천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20년이 흘렀다. 지금 나는 20년 묵은 짭새다. 부도도, 월급 체불도 없는 이 조직 덕에 가족이 편히 밥 먹고 살았다. 경찰 조직은 나의 인생 항구였다. 그래서 이제는 은퇴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제, 내 노래의 다음 구절은 뭐가 될까” 나의 답은 이것이다. “토목쟁이와 짭새의 블렌딩”
과거의 ‘쟁이’ 감각을 꺼내 지금의 경찰 경험과 섞으려 한다. 건설 현장, 산업 현장은 여전히 사고가 많다.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를 수사하려면 기술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
예전에 건물 증축공사 붕괴사고가 났을 때, 건축사와 구청 공무원들이 전문용어로 떠들었다.
경찰은 당연히 모를 거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나는 ‘쟁이’ 시절의 감으로 사고 원인을 짚었다. 그들이 놀라서 나를 쳐다보는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때 느꼈다. “내 두 인생이 결국 연결되는구나.” 이제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다음 목표를 향해서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으로
경찰로서 마지막 몇 년, 조직에 은혜를 갚고 싶다. 그리고 퇴직 후에도, ‘현장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소 에필로그]
오늘 새벽하늘에 붉은 노을이 번진다.
20년 묵은 짭새는 그 노을 속을 바라보며, 이제는 부도도, 해고도, 시험도 두렵지 않다.
인생의 현장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하늘 위로 나는 새들에게 속삭인다.
“이제 나도, 또 다른 인생의 신곡을 준비한다. 이번엔 조금 더 따뜻한 멜로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