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5층 앞에서 - 파랑새는 자기 자신이다

#파이어족 #파랑새 #행복 #안전

by 별하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룰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노래 : 민물장어의 꿈, 가수 : 신해철)





“형님, 조금만 있으믄 퇴직이네. 앞으로 어떻게 살 거야”

“시골 가서 살라고”

“좋은 여자 만나서 한번 살아야지, 언제까지 혼자 살거요”

“좋은 여자 만나는 게 뭐 내 뜻대로 되나, 나 같은 놈을”

“형님, 그런 소리 마요, 성실하지, 착하지, 모아둔 돈도 있지, 시골에 집도 있지, 그렇다고 자식 딸린 것도 아니고, 쌩 총각이고, 얼마 좋아"

“그러네, 나하고 같이 살면 여자는 횡재한 거네, 난 완전 총각이니까, 좋은 여자 있으면 자식이 딸렸어도, 내 자식같이 생각하면서 살 건데”

“형님, 부럽소, 다 해놓고, 나는 노후가 걱정이요”


따르릉따르릉


주물제조 업체에서 근로자가 작업 중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프레스, 선반 등 다양한 제조기계로 인한 사고로 근로자가 사망하거나 다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매우 위험한 작업들이니까.


주물을 제조하는 업체를 가보면, 참으로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상당히 많다. 예전만 해도 넉넉지 못한 집안 살림에 입 하나라도 덜기 위해 스스로 가출해서 이곳저곳 떠돌다가 어느 조그마한 공장에 들어가 숙식하면서 일을 배웠던 사람들이 당시에 많았다. 마침 그런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 기계를 만지는 중소기업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시기가 그때 그분들이 퇴직할 때가 되었다. 각자의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살았던 인생 선배들. 그분들이 이제 남은 여생을 편하게 살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으로 들어갔던 공장에서 가벼운 마음과 양손 무겁게 나올 때가 된 것이다.


“유족은 연락됐나요”

“아니요, 가족이 없어요, 부인이나 자식도 없고, 그래서 가까운 친척들을 확인하고 있어요”

“죽은 사람만 불쌍하네, 지금까지 번 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이제 퇴직해서 편히 살면 되는데, 어떻게 이러냐, 불쌍하게”


가족이 없는 사람, 배운 게 없으니 이걸 하지, 배운 게 없고 일이 변변치 못하니 결혼도 못했지라고 평소 말을 하던 사람, 항상 공장에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던 사람. 왜냐고, 공장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모든 직원들이 퇴근했을 때도 공장 경비일까지 도맡아 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반복했던 사람.


성실과 정직을 빼고는 말할 수 없었던 중년의 아저씨, 어린 나이에 가출해서 첫 취업을 하고 기술을 배웠던 지금의 공장, 공장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나름 공장을 빛낸 사람이라고 자부심을 갖고 있던 아저씨. 그런 아저씨가 매일 같은 작업을 한다. 그리고 공장에 납품되어 들어온 주물 재료를 톤백에 담아 재료 받이통에 담는 일도 한다. 항상 해왔고, 내일도, 모레도, 퇴직할 때까지 해야 할 단순작업.


톤백 또는 톤백 마대 :

보통 100 × 100 × 150센티미터로, 약 1,000kg 정도의 물품을 담을 수 있는 마대 포대다. 80kg의 쌀을 담아놓은 쌀 포대를 생각해보면 편하다. 아주 큰 쌀 포대.


오늘도 톤백에 담긴 주물 재료를 받이통에 옮겨 담아야 한다. 지게차의 양쪽 포크에 톤백의 연결 벨트를 걸어 받이통으로 이동한다. 받이통 보다 지게차의 포크는 더 높이 들어 올려 톤백의 하부를 받이통 위까지 올린다. 그리고 톤백 하부 부분을 면도날로 쓱 한번 긁어주면, 톤백 밑 부분은 찢어지면서 톤백 안에 담겨있던 무거운 주물 재료들이 받이통으로 우당탕탕하는 시끄러운 큰 북소리를 내면서 담긴다. 수십 년을 해왔던 일이다.


얼마 안 있으면 퇴직이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시골집에서 남은 여생을 편히 살 것이다. 조그마한 텃밭에 야채도 심고, 그동안 가보지 못한 좋은 곳도 여행 다니면서, 그리고 좋은 여자도 만난다면 큰 행운이고. 그래서 앞으로 재미나게 살 거야 라는 마음으로 며칠 안 남은 일이 즐거웠던 아저씨. 앞으로는 즐거움으로 가득 찬 세상일 테니, 나이는 60 중반이 넘어가지만, 요즘 당당한 젊은 파이어족처럼 살길 바라면서.


오늘도 어제와 같은 일을 한다. 공장에 납품 들어온 주물 재료가 담긴 톤백을 지게차에 걸어 받이통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받이통 위로 올려진 톤백 하부를 면도날로 긁으면 된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면도날을 잡고 있는 손을 쭉 뻗어보았지만 톤백의 모서리 먼쪽 하부까지 닿지 않는다. 그래서 상체를 숙여 내 머리도 톤백 하부와 받이통 사이로 들어간다. 그리고 제일 멀리 떨어진 톤백 하부를 면도날로 긁으면서 상체를 동시에 빼본다.


그런데 톤백에 실려있는 주물 재료는 무겁다, 무거운 것은 중력가속도에 제곱이 된다. 그리고 무거운 것이 중력의 법칙으로 쏟아지니 톤백 아랫부분의 찢어짐의 속도는 사람의 움직임보다 빠르다.

“작업하는 곳을 비추는 CCTV 있죠”

“네 이겁니다”

“그때 그 시간 한번 보죠”


CCTV 녹화 화면을 통해 과거 시간으로 흘러들어 간다. 마치 타임머신처럼. 주물 재료가 가득 들어있는 톤백을 지게차가 무겁게 들어 받이통으로 향한다. 그리고 퇴직을 얼마 남지 않은 아저씨 혼자서 걸어온다. 지게차는 무거운 톤백을 힘겹게 받이통 위까지 들어 올려준다. 그리고 아저씨는 자신의 팔을 톤백 하부로 넣어보다가 머리 부분까지 함께 들어간다.


그리고 갑자기, 지게차가 흔들, 순식간에 떨어지는 톤백 하부와 받이통 모서리 사이에 머리가 끼인 아저씨. 흔들흔들 3 발자국 정도 비틀거리며 걷다가 쓰러진다. 마치 뭔가를 말하는 것처럼, 뭔가를 불쌍하다며 원망하는 것처럼.


"어떻게 해, 어떻게, 너무 안됐어, 어떻게"


함께 보던 사람들이 오히려 더 고통스러워하면서 비명을 지른다. 너무 안됐다고, 너무 불쌍하다고, 이제는 편안 세상이 기다리는데, 어떻게 하냐고, 너무나도 쨘하다고, 고생만 하던 사람이 고생만 하다가 죽었다고,


“사장님, 친척이라면서 어떤 사람이 바꿔주라는데요”


경찰일을 하다 보면 무척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 그리고 정말 욕해버리고 싶은 유족 아닌 유족으로 둔갑한 혈귀들이 보일 때가 있다. 이 아저씨의 죽음, 이 아저씨는 행복을 어떻게 생각하면서 살았을까. 아마 남은 인생을 하고 싶은 것 하면서, 그리고 인연이 된다면 좋은 여자 만나서,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게 미래의 행복이었을까, 아마 그 행복을 기다리면서 힘든 인생을 견뎠을 것이다. 앞으로는 행복한 시간만 남았을 테니. 그런데 그 행복은, 살아있는 누군가가 대신할 것이다.


“야 다 나와, 이 씨발놈들아, 대표 누구야, 어떤 새끼야, 내 불쌍한 형을 죽게 만든 놈이 누구야”

“너희 수사 똑바로 안 하면 내가 가만 안 둬, 씨발, 같은 관내라고 봐주고 하면 내가 가만 안 둬”


요즘은 사촌이라고 해도 거의 남이다, 살아있을 때는 코빼기도 보지 못했던 친척, 막상 누군가가 죽고 나면 얼씨구나 하고 달려드는 여름철 징글징글한 모기떼 같은 친척들이 있다. 특히 죽은 사람에게 어떠한 유족도 없으면서, 보너스로 산업재해로 죽었을 때, 이때는 엄청난 모기떼가 달라붙는다. 자신들의 배부름의 행복을 위해,


직계 가족 전혀 없던 아저씨. 사촌에 팔촌이라고 하는 악바리 진상 친척들이 나타났다. 가족관계를 확인해보니, 살아있었을 때에는 완전히 남이었을 사람. 행정처리상 무연고 처리를 하지 않기 위해 먼 친척까지도 확인을 하기 때문에 이러한 모기떼에게는 커다란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진정 사망한 사람을 위한 게 아닌, 살아있는 자들의 자신을 위한, 자기만의 행복을 위해서 오는 것이다. 바로 죽은 자가 그동안 열심히 모아둔 재물을 차지하기 위한 욕심뿐이니까, 누가 더 가져가나를 따져야 하니까.


물론 공장 대표는 안전조치 미흡으로 인해,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악바리 진상 친척과 어쩔 수 없이 민·형사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바로 돈으로, 바로 돈, 돈, 돈, 죽은 이를 정말 그리워하는 이는 없다.


하늘나라로 올라간 아저씨를 보면서, 나도 새삼스러움을 느낀다. 어떻게 보면 나도 그 아저씨 같이 어린 나이부터 일을 해왔다. 늙어서 편히 살면 되지, 그러니까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돈 모으고, 그러려면 내 취미생활도 잠시 미루고, 갖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도 나중에라는, 나만의 어리석은 정의를 내리면서, 내일을 알 수 있는 능력도 없으면서 어리석은 판단을 매번 반복되어왔다.


그러나 이렇게 행복의 문 앞에서 죽어버리면, 마냥 기대했던 모든 행복은 개꿈이 된다. 행복한 삶을 한 번도 살아본 적 없이 말이다. 그리고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친척들이 나를 위해서 왔다고 하면서 내 영정 사진 앞에서 자기들끼리 물어뜯고 할퀴는 모양 빠진 춤을 멋들어지게 놀다 갈 테니 말이다. 진정 내 삶은 누구의 행복을 위한 삶으로 살아야 하나.


1분 후, 5분 후, 1 시간 후 그리고 내일, 모래, 앞으로 어떤 미래가 내게 올지 모른다. 어떻게 보면 젊은 나이에 적당한 돈을 벌어 회사를 그만두고 한적한 곳에서 적당하게 먹고 즐기면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파이어족이 멋지고 뭔가 자신을 위한 삶으로 보일 때도 있다. 그리고 나도 파이어족으로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안될 것도 같고, 물론 욕심을 버리면, 가능할까.


모리스 마테를링크 작가의 「파랑새」 1막 1장에 <인간이란 참 묘한 존재들이란다. 요술쟁이들이 죽은 뒤로 인간은 제대로 보질 못해. 게다가 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심조차 안 하지>. 요술쟁이는 누구일까. 왜 요술쟁이가 죽은 뒤로 눈이 보이지 않을까. 요술쟁이는 바로 우리 마음에 있는 욕심일까. 욕심을 버리면 눈에 보여야 하는데, 욕심을 버렸다고 하면서 다른 욕심이 생긴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욕심 때문에 사람끼리 싸우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파이어족은 큰 물욕을 버리고 적당한 물욕으로 살면서 파랑새를 찾는 어린 남매들일까.

그렇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바로 행복을 만들면서 살기 딱 좋은 때다. 비싼 음식이 꼭 맛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비싼 옷이 나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냥 평범하게 내가 먹고 싶은 것 먹고, 내가 가고 싶은 곳 가고, 회사에서 일처리 잘했다고 칭찬해주면 칭찬해주는 상급자가 예뻐 보이기도 하고, 퇴근 후 마음에 맞는 지인들과 시원한 생맥주에 노가리를 뜯기도 하고, 집에서는 반갑게 기다려주는 가족들도 있고, 바로 지금이. 바로 내 옆에 머무르는 파랑새가 있다. 바로 서로가 서로의 파랑새가 아닐까. 그런데 자신이 파랑새라는 사실도, 옆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파랑새라는 사실도 보이지 않아서 힘들게 행복을 찾아 헤매는 것은 아닐까.


지금 살아있음이 행복이고. 살아 있다는 것이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살아있어야 행복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만든 모든 것을 갖고 남은 인생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일을 하며 놀기도 하려고 한다. 그리고 거침없이 숨을 쉴 수 있음에 매 시간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풍부하고 상쾌한 산소에 감사를 한다. 365일 매 시간이 행복의 향기로 스스로 감쌀 수 있게 해주는 파랑새가 될 수 있음에 감사를 하자. 내 주변 모든 이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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