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5층 첫 계단 - 살아오며 행복했던 때를 적어봐요

#행복 #메모 #오징어 게임 #군생활 #구타

by 별하

여러분, 살아오면서 언제가 행복했는지 한번 적어보실래요. 아무거나 다 좋아요. 한번 적어보세요.





내 등 뒤에는 두 남자가 서있다. 그리고 내 앞에 한 남자가 서서 나를 바라보며 내 가슴 이곳저곳을 손으로 툭툭 만져본다.

“가슴이 조금 튀어나왔네, 새가슴이네, 괜찮겠어”

“네 괜찮습니다”

“알았어. 움직이지 마, 움직이다가 다친다”


액션 영화를 보면, 주인공 남자가 발로 문을 걷어차고 들어가는 모습이 종종 나온다. 내 앞에 서있는 남자는 마치 주인공처럼 내 가슴을 발로 걷어찬다, 그리고 내 몸이 걷어 차인 충격으로 뒤로 물러날 때, 두 명의 남자가 나를 잡아준다.


89년 11월 만 18세의 나이에 군입대했다. 그리고 92년 8월에 제대했다. 약 35개월이란 세월을 나는 군대에서 생활했다.


“여기 아버지 교실에 오신 여러분, 이미 훌륭하시게 살고 계시는 겁니다. 이곳에 오신 것 자체가 이미 훌륭한 아버지이신 거예요”


한때 경기남부 경찰청에서 한시적으로 매주 수요일 저녁에 아버지 교실을 운영한 적이 있다. 나는 괜찮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서 지원했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마다 김포에서 수원에 있는 경찰청으로 가서 교육을 받았다.


“자 지금부터 아버님들이 살아오시면서, 이때가 정말 행복했다고 느꼈던 그때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메모장에 적어보세요, 이때가 정말 행복했다. 그때를”


당황스럽다. 내 옆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뭔가를 적어나간다.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또는 경찰이 되었을 때, 결혼했을 때 등등 다양한 이유를 적어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나는 선뜻 이때가 행복했다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너무 놀랐다. 내 머릿속에서는 뭔가 정리가 되지 않고 행복이 뭔지도 잘 떠오르지 않는데, 어느 순간 내 뇌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독립적인 손이 펜을 놀리고 있었다.


<군 생활>


군 생활, 내 행복했던 순간을 군생활이라고 적어놓은 메모장을, 왜, 왜 군 생활인데, 나는 아이도 있는데 왜, 정말 왜.라고 내 스스로 반문을 계속했다. 지금 아버지 교실에 와있는 다른 사람들이 볼까 봐 너무 창피하다. 왜 도대체 왜.


(나) “너, 공수 지원했다며”

(친구) “어, 나 공수 부사관 지원했어. 담양이나 이쪽에서 일할수 있을 것 같아서”

(나) “엄마 때문에”

(친구) “엉, 부사관으로 가야 출퇴근되고, 엄마일도 도와드리지, 엄마가 몸이 불편하니까”

(나) “나도 해병대 부사관이나 지원해야겠다”

(친구) “해병은 왜”

(나) “광주 뜰라고, 아주 멀리”

(친구) “참, 힘들다, 누구는 군대 안 가려고 빽쓰고 난린데. 우린 알아서 지원해주고”


18세, 군대 가지 않을 부모 찬스 카드가 내게는 없다, 빽도 돈도 없는 가난한 10대의 남자, 그냥 군대 가야 한다. 그래 이왕 갈 거 빨리 가고, 부사관으로 가면 돈도 벌 수 있고, 뭐하면 그냥 말뚝 박아도 되니까. 지원해보자. 모 아니면 도니까.


“야, 야, 그래 너 말이야, 이리 와 봐”


파출소 정문에 서있는 경찰관, 나에게 소리를 치면서 와보라고 한다. 뭔 일이지, 나쁜 짓 한 게 없는데, 왜 오라고 하지, 80년대의 경찰관들은 참으로 무서웠다. 괜히 걸어갈 때 파출소가 눈에 보이면 피해 간 적도 있으니까. 오일팔이라는 엄청난 역사의 순간이 내 눈앞에서 지나간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그래도 광주에서의 경찰관은 내 눈에 공포였다.


“너 며칠 전 저녁에 어디에 있었어?”

“집에 있었는데요, 혼자”

“그럼 혼자 집에 있었는지 확인해줄 사람 있어?”


무엇을 묻는지, 왜 묻는지 전혀 알 수 없다. 파출소로 나를 부르고, 뜬금없이 며칠 전 동네에서 발생한 강도사건 관련해서 알리바이 데라고 추궁한다. 어디서 구체적으로 발생한 강도사건인지 어떠한 설명도 없이 그냥 추궁하면서, 그리고 어디론가 파출소 경찰관은 전화를 한다.


“저예요 형님, 여기 수상한 놈 잡아놨으니까 빨리 와보세요”


누군가와 전화통화 후, 30분 정도 흘러 검은색 지프차가 파출소 앞에 선다. 그리고 대뜸 타라고 한다. 어디로 가는지, 나를 데리고 가는 사람은 누구인지 전혀 설명 없이 그냥 타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함께 어디론가 갔다.


“여긴 경찰서야, 파출소와는 달라 알았어. 알았냐고”

“네”

“너 저기 들어가 있어, 일단은”


지금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그때 나를 데려간 곳은, 경찰서 형사계 사무실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경찰이 되고 나서 형사계에서 근무도 했었으니까.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형사계 사무실 안에는 유치장 같은 철창 시설이 있어서, 일단 사람들을 가둬두고 한 사람씩 빼내서 조사할 수 있는 그런 시대였다. 나도 철창 안으로 들어간다.


저녁 되기 전에 나를 데리고 온 형사는 철창에 있는 나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자정이 되기 전에 묻는다.


“야, 너 집에 전화해, 그래서 나 좀 바꿔”

“네”


집에 전화를 했을 때, 외할아버지가 받으셨다, 그리고 형사와의 전화통화, 바로 외할아버지는 경찰서 형사계로 오셨다.


“관내 강도사건이 발생했는데, 손자분이 굉장히 비슷해서 조사를 해봐야 하는데, 알리바이가 확실치 않네요”

“아니 이놈은 그럴 놈이 아닙니다. 강도질할 아이가 아니에요”

“일단 무슨 말씀인지 알겠고요, 할아버지 봐서 내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 서류에 서명 좀 해주셔야 합니다”

“무슨 서류인가요”

“이 서류요”


의경 지원서, 나는 이미 병무청에 해병 부사관 지원서를 제출했는데, 형사는 해병 부사관은 지원이니까 될지 안될지도 모르고, 된다고 해도 안 가도 된다고 하면서, 경찰서에서 나갈 방법은 의경 지원서를 작성하고 나가는 거란다. 그래야 선처해줄 수 있다고 하면서.


선처, 내가 무슨, 왜, 외할아버지는 형사가 권하는 데로 의경 지원서를 작성했다. 손자를 경찰서에서 빼올 수 있는 방법이 의경 지원서가 유일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밖으로 외할아버지와 함께 나왔다.

“어르신이 손자를 꼭 논산까지 데리고 가서 부대에 들어가는 것 까지 보셔야 합니다. 부대에 안 들어가면 제가 또 손자를 데리러 가야 해요”


경찰서 정문을 향해 나가고 있는 외할아버지와 내 뒤통수를 향해 그 형사는 꼭 부대에 들어가야 한다고 몇 번이고 강조를 했다. 왜, 그리고 나는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다. 의무경찰로, 당시 전국에 집회가 많았던 시대로 의무경찰 지원을 많이 기피했었고, 막상 현역으로 입대해도 훈련소에서 전투경찰로 착출 되면 정말 한숨만 나오던 시대였다. 전방에서 근무하는 현역이 의경이나 전경보다 훨씬 나았던 시대였으니까.


시간이 지나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내가 의경 지원서를 쓸 때만 해도, 의경 지원율을 높이기 위해 현직 경찰관들에게 몇 명씩 지원서를 받아야 하는 개인 할당이 내려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 형사의 할당에 들어간 제물이었다. 그래서 나의 험란한 의경 생활이 시작되었다.


35개월 정도의 의경 생활, 처음 올라간 서울, 그리고 종로경찰서에서 근무를 하게 된 나, 저녁 9시에 시작한 점호가 끝나면 내무반 불이 소등되고, 불침번이 돌아다닌다. 그리고 저녁 10시에 내무반 불이 켜진다. 드디어 기수 빳다가 시작된다. 최고 선임 순으로 시작을 한다. 오늘 근무가 어땠고 군기가 빠졌다느니 어쨌다느니 어떠한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한따까리가 시작된다.


침상 앞렬에 머리박아부터, 치약 뚜껑에 머리 박아, 진압 하이바에 머리 박아, 2층 침상에 매미, 그리고 가슴을 주먹과 발로 걷어차기, 엎드려뻗친 상태로 진압봉으로의 엉덩이 찜질 등 무수한 한따까리가 시작된다. 그리고 끝나면 2시간 단위로 불침번이 깨운다. 그다음 기수들이 다른 장소에서 게임을 진행하니까.


마치 오징어 게임에서 게임에 따라 장소가 바뀌듯 바뀐다. 최고 선임은 내무반에서, 그다음 선임은 최고 선임을 피해 다른 내무반에서, 그다음 선임은 복도에서, 그다음 선임은 목욕탕에서, 그리고 마지막 피날레는 챙기는 기수가 화장실에서,


그리고 아침 6시가 되면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아침 점호를 마친 후 각자의 근무장소로 향했다. 교통외근 근무를 하는 의경 생활은 그리 녹녹지는 않았다. 교통 위반 스티커를 내 할당 20장, 초소장 할당 10장, 몇 명의 선임 할당까지 하루에 내게 할당된 교통위반 스티커 발부 건은 거의 100건이었다.


청와대 주변 문국이나 팔판 초소에서 근무하고 교대하면, 자유롭게 외근 활동할 수 있는 시간에 계속 광화문 로터리나 종로 1가부터 3가까지 돌아다니며 위반차량을 잡아내는 사냥꾼으로 살아야 했다. 교통위반 스티커 발부와 차량 정체 해소를 위한 수신호 근무를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그리고 내무반에서는 저녁 점호 이후 2시간 단위로 돌아가는 한따까리 게임이 시작되고, 게임에서 살아나면 교통위반 스티커 실적을 위한 종로통으로 나가야 하는 무한반복은 군 제대 몇 개월을 제외하고는 계속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랬던 군 생활이 제일 행복했을 때라고 기재했다. 왜일까. 10대 때부터 돈 벌면서 월세를 내야 했고, 쌀을 사고, 정말 지겹고 힘든 생활, 그런데 군대 생활은 구타나 얼차례와 빡빡한 근무가 있었지만 그래도 월세는 낼 필요가 없고, 시간 되면 밥 주고, 때에 따라 옷과 신발도 주니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정말 좋은 곳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매일 벌어지는 구타 게임은, 어린 나이에 얹혀서 살았던 친척집에서도 자주 있었던 일이었고, 나름 단련이 되어서 맷집이 상당했기에 참을만했다. 저녁 시간에 벌어지는 구타와 한따까리의 게임은 나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인생이면, 모 아니면 도니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이니까라고 생각했던 내 인생 암흑의 시대였으니까.


군 제대한 지 30여 년이 지나가는 세월, 그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도 군 생활보다 더 행복한 게 없었다는 내 메모장을 보면서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지진은 강진으로 내 가슴을 때렸고, 충격의 파동은 계속되는 여진으로 다가왔다.


내게도 한때는 첫 키스의 설렘,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 애틋한 신혼 첫날밤, 첫딸이 태어났을 때, 아들이 태어났을 때, 세상에 태어난 아이가 처음으로 내게 아빠라고 말해주었을 때, 고사리 같은 애들 손을 함께 포개 잡은 채로 생일 케이크를 자를 때, 아이가 첫걸음마 뗄 때, 이유식에서 맘마를 처음 먹을 때, 족발 뼈에 붙은 살점을 입에 문채로 방문 틀에 매달린 그네에서 새근새근 잠을 자는 큰딸의 얼굴, 멋진 건설회사에 취직되었을 때,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을 때, 진급했을 때, 이러한 수많은 과거가 있었는데 왜 굳이 군생활이었을까. 나는 의아했다. 나에게 행복은 어떤 의미였을지.


러시아 작가 막심 고리키는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을 했다. <행복이란 가까이 있을 때는 작게 느껴지지만, 그 행복을 떠나보낸 후에는 그것이 얼마나 크고 소중했는지를 알게 된다>라고, 그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너무 지쳐 있었는지 모른다. 풍진 세상의 한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린 나이 때부터 거친 인생을 살다 보니, 소중한 추억들의 의미는 그렇게 크지 않았으며 행복이란 마음을 느끼기보다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잘 버티는지가 중요했는지도 모른다.


아마 나에게 행복은 그냥 나를 내버려 두는 세상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냥 내가 해야 할 일만 끝내면 아무도 건들지 않고, 어느 누구도 내 것을 빼앗으려고 하지 않고, 뭐 해주라고 부탁도 하지 않는, 마치 나만의 그늘진 책상 밑에서 나오지 않고 더 깊숙이 숨어버리는 나였지 않았을까. 어렸을 때 들어갔던 책상 및 어두운 공간에서, 마치 행복이란 놈이 소소하게 슬며시 찾아와서 하나씩 모아지면 큰 행복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로또 1등처럼 큰 행운이 나를 찾아왔을 때, 마치 큰 행운이라는 밧줄로 나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책상 괴물을 묶어서 들어 올려주기 바라는 것은 아닐까, 마치 어둠에서 밝은 세상으로 탈출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라도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하게 사는 게 어떤 것인지, 서서히 알아가려 한다.


지금 나도, 그리고 당신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앞에 있는 메모지에 한번 써보기를. 부디 큰 행복이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맹장수술 후 처음 나오는 방귀소리에 병실에 있던 모두가 함께 웃음 짓고 누군가가 간호사에게 달려가서 방귀 소식을 전하는, 바로 행복이란 것은 이런 소소함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이게 행복일 겁니다. 나는 이제야 행복이 무엇인지 조금은 감이 오고 있어요. 어두운 방안이 서서히 밝아지는 것처럼요.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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