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댄스 크루에서 스트리트 장르에 발을 담그고부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에 댄스 배틀이 아주아주 많다는 점. K-pop 안무를 배우거나, 혼자 코레오그래피를 배울 때는 어찌 몰랐나 싶을 정도로 많은 배틀이 열리고 있었다. 실제로 직관한 배틀이 많지는 않지만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배틀 영상을 접하면서 생긴 목표 중 하나는 라인업 배틀을 직관하는 것이었다.
라인업 배틀(이하 ‘라인업’)은 매해 광주광역시에서 열리는 댄스 배틀이다. 광주광역시 출신의 댄서들이 만든 ‘빛고을댄서스’*라는 팀에서 주최하는 대회이다. 힙합, 왁킹, 팝핑, 오픈 스타일 등 각 사이드의 예선에서부터 본선까지 나흘 동안 진행되는 행사로 올해는 락킹 사이드까지 추가되었으며, 약 1,500명의 댄서가 참여한다고 한다. 가히 광주광역시를 춤의 성지로 만든 우리나라 최대 댄스 배틀로 최근에는 광주광역시와도 협업하고 있다.
* 빛고을댄서스 : ‘비 엠비셔스’와 ‘스트리트 맨 파이터’에 출연한 댄서 오천(IG @5000rspn.kr)이 대표로 있으며, 나의 첫 왁킹 쌤인 댄서 키키(IG @kiki.coming, 예전 글 ‘Time to Wacck!’의 선생님)도 이 팀 소속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단 한 번도 광주광역시로 향하지 못하고 있다. 관람객 인원이 너무너무, 정말 너무너무 적기 때문이다. 처음엔 마음만 먹으면 무조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뮤지컬과 콘서트 예매로 단련해 온 티켓팅 실력과 ‘Shut up and take my money’ 할 수 있는 직장인의 재력만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라인업은 아무래도 댄서들을 위한 행사이기에 관람‘만’ 하는 관람객으로 할당된 수는 매우 적었다. 배틀에 참여하는 댄서는 예선에서 탈락한다 하더라도 남은 배틀을 모두 관람할 수 있기 때문에 별도의 관람객을 두지 않는 배틀도 있으니 관람객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수도 있다.
라인업 배틀 관람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작년 라인업 8 때였다. 선착순 신청으로 인스타그램 프로필 링크에 신청폼이 뜨면 내용 입력 후 입금을 완료하면 끝나는 프로세스였다. 크루 멤버들과 카톡으로 긴장감을 공유하며 링크가 뜨는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밤 10시가 되고 몇 번의 프로필 새로고침 후 업데이트된 신청폼 링크를 클릭했다. 손을 바들바들 떨며 정보를 입력하고 입금 계좌를 복사하고 신청 완료를 누르는데 자꾸 에러 메시지가 떴다. 알고 보니 중간의 개인정보 동의 내역의 동의 버튼을 체크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부리나케 동의 체크를 완료하고 신청을 완료했다. 이윽고 복사해 둔 입금 계좌로 입금까지 완료! 소요된 시간은 2분 남짓. 그래 이 정도면 됐겠지. 그리고 약 3분 뒤 올라온 공지. 신청 마감. 라인업을 원하는 사람이 많구나, 느낀 참이었다. 긴장한 탓에 여느 날보다 일찍 졸렸으나 관람 확정자에게는 완료 문자를 바로 보내준다고 하기에 단톡방에 되겠지? 될 거야.를 남발하며 졸음은 쫓았다.
- 문자 받은 사람 있어? 내 친구는 확인 문자 받았다는데.
그 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예매 성공자에겐 문자 발송이 완료되었으며, 그 외 사람들에겐 관람비를 환불할 것이라는 공지가 떴다. 젠장. 화가 났다. 탈락된 아쉬움에 관람 신청 프로세스마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청 폼부터 받고, 선착순 안에 든 사람들한테만 돈을 입금받으면 될 걸 왜 일을 두 번 하는 거지. 굳이 굳이 내 환불이 누락되어 별도 DM을 보내고 나서야 관람비를 환불받을 수 있었기에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은 내가 대신 잘해 줄 수 있는데. 행사 운영 업무 잘할 자신 있는데. 대신해 주고 현장에 가고 싶다.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질 리 만무했다.
그리고 올해, 다시 돌아온 라인업 9. 대회 장소가 넓어진 것 같기는 하나 락킹 사이드가 추가되었으니 댄서들의 참여는 더 많아질 것이고, 관람객 수는 또 줄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작년처럼 버벅대지 않고 반드시 티켓팅에 성공하리라! 그런데 웬일. 올해 관람객은 이벤트 추첨으로만 뽑는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라인업 계정을 팔로우하고, 응원하는 댄서에게 응원 메시지를 적는 전형적인 댓글 이벤트. 내가 이래 봬도 기업 SNS 담당자였다고. 경력을 살려 꼭 당첨되고 말리라.
우선 인스타그램 계정부터 공개 계정으로 변경한다. 보통 비공개 계정은 댓글 이벤트 당첨자로 선정하지 않는다. 광고 계정인지 일상 계정인지 확인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댄스 계정으로 참여할 수도 있으나 이건 팔로우 수가 너무 적으니 차라리 본 계정이 낫겠다 싶었다. 본 계정에도 춤 영상은 많으니까 나의 진심을 알아줄 거야! 공개 계정으로 전환한 탓에 그간 팔로우 신청을 받지 않고 있던 사람들이 우수수 팔로워 목록에 추가되는 낭패를 보았으나 라인업에 갈 수만 있다면 이쯤이야!
다음은 응원할 댄서를 골라야 한다. 어떤 댄서를 응원할까, 나와 연관 있는 댄서가 낫겠지? 빛고을댄서스의 멤버인 키키쌤으로 할까 고민하였으나 키키쌤은 빛고을댄서스에서 영상 촬영 담당이시고, 보깅 볼도 주최하시니 배틀에는 참여하지 않으실 것 같다. 그러면 우리 힙합쌤들 중 한 분으로 할까. 하지만 쌤들이 라인업에 참여하시는지를 확실히 모르니, 일단 킵. 그날 밤 왁킹 수업이 끝나고 리버(IG @likealeever) 쌤에게 라인업에 나가시는지 조심스레 물어본다.
“당연하죠. 저 왁킹, 오픈 스타일, 퍼포먼스 세 개 나가요. 이번에는 관람객을 이벤트로 뽑는다던데. 아 저로 쓰신다고요? 좋죠, 작년에도 못 가셨으니 할 수 있는 것 다 하세요!”
리버쌤에게 참여 정보와 허락도 받았으니 이제 응원 댓글을 작성한다. 포인트는 두 가지! 일단 내가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어필한다. 그리고 리버쌤과 나의 관계를 피력한다. 좀 더 구구절절하게 쓸 수도 있지만 어차피 담당자는 몇 백 개의 댓글을 읽어야 하기에 깊이 있는 내용까지 보지는 않을 것이다. 적당한 길이로 담백하게 적어야 한다.
- 저의 왁킹 쌤 리버쌤을 응원합니다! 라인업에 왁킹, 오픈 스타일, 퍼포먼스까지 나가시는 리버쌤! 원래도 잘하셨지만 요즘 배틀에 물오르셨는데, 라인업에서도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쌤 배틀하시는 모습 꼭 현장에서 보고 싶어요!
이제 남은 건 당첨을 기다리는 일. 머릿속에서는 미리 숙소를 구해놔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이친다. 수많은 댄서들이 그 기간에 광주에 가는 거면 숙소를 구하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몇 명 모아서 에어비앤비라도 구해야 할까. 함께 신청한 크루 멤버들과 서로 댓글에 하트 및 답 댓글을 달아주며 김칫국을 마신다. 되겠지? 될 거야.
그리고 대망의 결과 발표날. 전멸했다. 당첨자 명단 어디에도 나를 포함한 크루 멤버들의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보이지 않았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다시 비공개 계정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받아진 팔로워 중 몇 명을 삭제했다. 관람은 영원히 불가능한 것일까. 혹자는 관람이 아닌 배틀 참가자로 신청하라고 한다. 어차피 예선에서 떨어질 거 춤 한 번 추고 맘 편히 관람하면 되지 않느냐는. 직장인 배틀이면 그렇게 하겠지만 이건 전문 댄서들이 참여하는 배틀 아닌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라인업에 배틀로 참여한다는 직장인 댄서가 몇 보인다. 짜증 나니 이른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