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mgreen & Dragset <<Spaces>>,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속 메인 캐릭터 중 한 명인 샬롯이 일하는 갤러리에 한 배우가 방문한다. 샬롯의 안내를 받으며 전시를 관람하던 중 배우는 갤러리에 설치된 소화전 앞에 멈춰 서서 묻는다. “이 작품은 얼마인가요?”
현대미술은 일상 속 사물을, 심지어 더럽고 추한 존재도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모든 것을 예술이라 부르진 않는다. 현대미술에서 어떤 존재가 예술이 되느냐 못되냐를 가르는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그 사물이 놓인 장소적 맥락이다. 갤러리나 미술관, 또는 비엔날레 등 미술계에서 인정하는 전시장에 놓여있느냐, 우리 집 식탁 위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포크, 접시, 와인잔은 그 운명이 갈린다.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의 이번 전시는 집, 레스토랑, 실험실, 수영장 등을 실제 같이 재현했지만 사용감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 탓에 관람객은 이것들을 분명하게 ‘가짜’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혼란스러웠다. 미술관 전체를 점유한 작품 덕에 어떤 사물이 실제 미술관의 자산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전시실을 구성하는 기둥이, 소화전이, 엘리베이터가, 또 화장실 사인물과 벤치가 마치 작품과 같이 미니멀하게 디자인되어 있기에 <섹스 앤 더 시티> 속 우스운 질문을 던졌던 배우처럼 나도 전시장 스태프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이 기둥은 원래 미술관 구조물인가요?”라고. 가끔 현대미술이 관람객을 바보로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현대미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식으로 바보가 되는 경험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현대미술을 보고 이해 안 되는 작품 앞에서 스스로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두려워하지 말기 바란다. 작가의 의도에 꼭 맞지 않더라도 어떤 경험이든 나의 사고를 확장시켜 줄 단서 하나는 몸에 새겨진 채로 전시장을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