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아치워거, <책>, 1987
아치 워거는 책의 물성이 지닌 아름다움을 책의 태생인 종이, 종이의 태생인 나무를 가지고 구현했다. 아이콘처럼 간결한 곡선과 직선의 조화, 종이 결을 상징하는 듯한 나뭇결과 묵직해 보이는 덩어리감까지, 애서가의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실제로 작품을 봤다면 나무 특유의 은은한 향까지 더해졌을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모두 공감할 텐데, ‘책’이라는 매체에 빠지면 단지 독서행위나 책의 내용만 좋아하게 되진 않는다. 애서가란 무릇 책 표지 디자인부터 두께와 무게, 그리고 책장을 넘길 때 맡을 수 있는 서로 다른 종이와 잉크 냄새까지도 사랑하게 돼버린다. 이렇게 책이 지닌 물리적인 성질에까지 사랑이 가닿게 되면 책을 수집하고, 또 수집하고, 그러느라 무거운 이사 비용과 부동산비를 감당한다. 많은 이들이 곡소리를 내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집착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책만큼은 집착해도 좋을 대상이 아닐까? 책이야말로 꽤 합리적인 가격으로 얻을 수 있는 겉과 속이 모두 알찬 대상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또 조심스레 합리화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