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튀스, <캐시의 몸단장>, 1933
처음 이 작품에 눈길을 주었을 때 그녀는 당연히 이름 없는 마네킹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제목을 보곤 뜨악했다. 캐시라는 이름의 그녀가 몸단장을 받고 있는 장면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 같지 않은 창백한 캐시, 그녀를 돕고 있는 무표정한 아주머니, 그리고 이미 준비를 다 끝내고 심각하게 앉아있는 남자까지. 셋은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시간과 차원에 존재하는 듯하다.
우리는 관심 없는 상대의 말에 무성의하게 대꾸하면 ‘영혼 없다’는 핀잔을 듣곤 한다. 관심이 없어지면 영혼도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관심 잃은 대상이 점점 많아져 세상만사 모든 일에 무관심할 경우 캐시처럼 얼굴에 생기마저 잃는다. 살아있지만 죽은 마네킹 상태.
어린이는 평상시 ‘왜요?’라는 질문을 달고 살며 부모를 피곤하게 만들 만큼 세상사에 호기심이 많다. 산책 나온 강아지 역시 모든 냄새를 다 맡고 귀가하겠다는 전투태세를 갖춘 듯 온 세상을 궁금해한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 수록 나를 사로잡았던 그 많던 관심사는 줄어들고, 어느 순간 나 자신에 대한 관심마저 잃어가기도 한다. 거기다 캐시 주변 인물처럼 타인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게 되면 결국 우리는 모두 마네킹이 되고 말 것이다. 새해에는 내가 탐구해 보고 싶은 분야를 더 늘려보기로 했다. 아직은 소중한 영혼을 지키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