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하 Jan 31. 2022

설날에 혼자 있어도 괜찮아요

명절 우울증에 대한 고백

연말연시를 어수선하게 보내고, 1월 1일이 되어 새해를 힘차게 맞이해 보아도 한 달 후면 나는 또다시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바로 민족 대 명절인 '설날' 때문이다.

나는 설날이 되면 항상 우울해진다. 코흘리개 초등학생 때부터도 명절은 내게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어린아이였을 때도, 20대 수험생일 때도, 결혼 안 하고 있는 30대인 지금도 설날은 나에게 한결같이 우울한 날이다.  


우리 아빠는 장남이었다. 그래서 명절 차례와 제사는 항상 우리 집에서 지냈다.

하지만 우리는 10평도 안 되는 임대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친척들이 오기엔 비좁았고 위생 상태도 매우 좋지 않았다. 그래서 명절 전날에는 항상 가족들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손님맞이를 하기 위한 청소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딸만 셋이었는데, 딸들은 안 쓰는 물건을 좀 '버리자'라고 악을 썼고 엄마는 나중에 쓸지도 모르니 '절대 버리면 안 된다'라고 핏대를 세웠다.

집에는 엄마가 아파트 청소부를 하시며 얻어 온 옷가지며 가전제품이며 플라스틱 그릇 등이 한가득 쌓여있었고, 아픈 몸으로 자식들 키우겠다고 청소일까지 하셨던 엄마는 정작 우리 집 살림은 알뜰하게 하지 못해 집에는 늘 바퀴벌레가 기어 다녔다.


작고 초라한, 지지리도 궁상맞은 집에 친척들을 초대하기 위해 대청소를 하는 것은 언제나 고역이었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에도 가난이 주는 수치심에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TV를 보면 다른 집들은 하하호호 웃으며 명절을 화목하게 보내는 것 같은데 '우리 집은 왜 늘 이모양일까?' 하는 생각을 매번 했다.

청소를 하며 싸우고, 전을 부치며 싸우고, 상을 차리면서 싸웠다.

'이렇게 싸우면서 준비하는 차례상이 참 맛도 있으시겠다' 하고 생각하며 나는 얼굴 한 번도 보지 못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머쓱해했다. 나중에는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돌아가셔 놓고 왜 우리를 힘들게 요?'

 

설 당일날도 싸움판인 건 마찬가지이다.

우리 아빠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는 만났다 하면 자기주장을 늘어놓으며 싸우기에 바빴는데

차례상에 올렸던 정종을 마시며 정치 얘기, 경제 얘기 등을 하셨고 모두 각자의 의견이 옳다고 우기기만 했다.

정치 얘기가 동이 나면 서로의 옛날이야기를 들먹이며 니 탓이니 내 탓이니 했다.


그러다 나중에 결혼하지 않은 큰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말 한마디 없이 자취를 감추어 버리셨고

작은 아버지는 장남 노릇을 못한 우리 아버지를 못마땅해하셨다.

당신네 자식들(아들 둘)과 아빠의 자식들, 그러니까 큰언니와 작은언니와 나의 학업 성취도 같은 것들을 비교하며 각자 자존심을 세우기도 했다. 자식들 앞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부터는 누가 먼저 좋은 곳에 '취직'하냐의 문제가 명절 차례상의 메인 메뉴로 올라왔다.

법무사 시험에서 계속 미끄러졌던 큰언니 대신 작은언니가 역사교사가 되어 출발 테이프를 끊었고,

그 뒤에 사촌 동생이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진로에 방황하던 나는 그보다 2년 늦게 국어교사가 되었다.

(이제 내가 퇴사했으니 무승부라고 봐야 할까? 아직까지 비밀이지만...)


그다음엔 '결혼' 문제가 차례상에 올랐다.

역시 작은언니가 먼저 테이프를 끊었고, 그다음에 큰언니, 그다음 사촌 동생이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나는 37살에 아직 결혼하지 않고 있다.

분들은 매년 언제 결혼하느냐며 넌지시 압박을 주었고 남자 친구는 뭐 하는 사람인지 매번 캐물었다.


나는 그와의 미래를 약속한 상태이지만 그 시기가 언제가 좋을지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나도 준비가 덜 되어있고, 그도 아직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함께 살고 있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이기에 명절은 각자의 집에서 지내고 온다.


하지만 올해 나는 명절에 집에 가지 않기로 했다.

언니들은 이미 다 결혼을 했으므로 각자의 시댁에서 명절을 보낼 것이고, 아들이 없는 우리 집은 여전히 노쇠하신 부모님만이 차례를 지내신다.

숙모는 제사를 물려받아야 자식들 일이 잘 풀린다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에게 제사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제사를 물려주면 아빠가 죽는다는 미신을 어디서 듣고 와서는 절대로 제사를 내어주지 않는다.


'엄마, 그렇다고 언제까지 우리가 제사를 지내야 해? 어차피 그 집에 물려줘야 하잖아.'


'느이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지낼 거야! 그런 소리 하지도 마!'


나는 여자로 태어나 남 집 귀신들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천명처럼 알고 살아가는 45년생 서수자 씨를 볼 때마다 마음이 슬프고 화가 난다.

무능력한 남편을 만나 평생을 고되게 살아온 그녀는

이번 설에도 아픈 무릎을 끌고 시장에 나가 양손 가득 차례상에 올라갈 재료를 사 가지고 왔다.


하지만 올 해도 힘들게 차례를 준비하는 엄마를 나는 도와드리지 않다.

예전엔 그나마 언니들과 함께 차례를 지냈기에, 지지고 볶고는 해도 외로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은 나만의 몫이 되어버렸다.  

언니들 없이 그 속 터지는 전쟁을 혼자서 하고 있자니 억울하고 속상하기만 하다.

(그나마 요즘은 작은 집도 오지 않는다)


엄마는 그러니까 너도 빨리 시집가라고 내게 재촉하지만,

엄마는 알고 있을까? 나도 결혼을 하면 남의 집 귀신을 위해 평생 제사를 모셔야 한다는 것을.


해마다 명절이 되면 딸만 셋인 우리 집, 결혼도 안 한 막내딸은 항상 쓸쓸하고 서러운 마음에 잠긴다.



그래서 나는 이기적이게도 명절이렇게 혼자 지내고 있다. 

여성들의 노동과 희생을 강요하는 명절 따위에 의미를 두고 싶지가 않아서-는 핑계이고

정말로 그냥 혼자이고 싶다.

우울해진 마음으로 집에 가봤자 엄마랑 싸우기만 할 테고

제사를 넘겨주지 않겠다는 엄마의 고집도 꺾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동안 남자 친구 부모님께 명절 인사를 드리러 가서 몇 번 자고 오기도 했지만

명절에 내 집에도 안 가는데 남자 친구 부모님 댁에 가는 것은 더더욱 내키지가 않는다.


그래서 그냥 나를 위해 혼자 있기로 했다. 오랜만에 혼자 생각 정리를 하면서 일기도 쓰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쓰고 있다. 아까 낮에는 개천을 따라 산책도 다녀왔는데 나처럼 혼자서 산책하는 사람도 많더라.


연휴 초에는 괜히 외롭고 궁상맞고 결혼도 못한 내 처지가 처량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냥 무던하다.


지금도 누군가는 각자의 사정으로 명절을 혼자 보내고 있 텐데, 우리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주눅 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실, 농경 시대에나 의미 있었던 '설날'과 '추석'을 기리기 위해 이런 마음고생, 몸 고생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구시대적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요즘엔 명절 기간에 차례를 지내지 않고 가족들끼리 여행을 간다거나, 차례상 대신 가족끼리 외식을 한 번 하는 식으로 문화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다.

한쪽의 집안이 기준이 되어, 한쪽의 성별만 주로 노동을 해야 하는 이런 문화가 어서 빨리 희미해졌으면 한다. '단오', '한식' 등의 명절이 지금은 자연스레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명절 풍습 바뀌어도…10가구 중 6가구는 설 쇤다 : 전국일반 : 전국 : 뉴스 : 한겨레 (hani.co.kr)


오늘도 당신만의 하루를 사시길 :)

새해 복도 많이 받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