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하 Nov 03. 2022

세상의 모든 슬픔을 치유하려면

우주 만한 세월이 필요하다고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 너무나도 애통하고 화가 나서 며칠 전 새벽에 자판을 두드렸었습니다. 

사고로 인해 힘들어하고 계실 분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글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만 했는지에 대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짧은 글이었어요.

독자를 고려해서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반말체로 되어 있었고

결국 이런 세상을 만든 우리 모두를 자책하는 내용이었기에  

글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글이 주는 영향력과 책임감을 항상 생각하며 글을 써야 하는데

정제되지 못한 저의 마음을 함부로 올려버린 것 같아 갑자기 부끄러워지더라고요. 


그런데 글을 삭제하고 나니 또 다른 부끄러움이 몰려들었습니다.  

화나는 마음을 나 스스로가 검열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인격을 모독하는 타인에 대해서는 마땅히 화를 내는 것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라고 합니다. 

자신의 존엄을 해치는 사람에게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굴종적으로 굴면

그 화는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로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젊은 청춘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국민 애도기간'이라고 마냥 슬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분노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그다음 단계로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 소지자를 밝혀내어 처벌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이태원 참사 사건에 대해 분노하지 않으니 마냥 슬프고 무기력해지더군요.

그냥 또 이런 사고가 났구나, 안타깝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체념하는 수밖에 없지.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무감각해질까 봐 겁도 났습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어떻게 화를 내야 하는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화나는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것쯤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글을 다시 올려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조금 더 희망찬 이야기를 덧붙여 보았습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압사(壓死). 사람이 사람에게 깔려 죽었어. 사람을 죽이는 건 결국 사람이지. 

한 사람의 무게로 모두를 죽일 수가 있어. 그 한 사람이, 모두를 죽였어. 너는 왜? 네가 무슨 권리로? 

그리고 나는 왜? 나는 왜 살아남을 수 있었나를 생각하면, 나는 그저 세상의 모든 슬픔이 나에게로 왔으면 싶다가도, 나는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아 져서,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그 누군가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슬퍼지더라. 

나도 죽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네가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니야. 그런데 왜 우리는 죽어야만 하는 거야? 

죽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 거 아닌가? 그래, 그 누구도 죽어야만 하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야. 

그런데, 왜 이 모든 죽음에 대해 책임지려는 사람은 없는 거지? 책임이라는 건, 가진 자들이 지녀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우리는 왜, 없는 사람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미안해해야 해? 


책임질 능력도 없고 책임질 생각도 없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올라가 있어. 

그건 누가 만들었어? 침묵. 우리 모두가 그런 세상에 기여했어. 

그래서 그 누구도 진심으로 슬퍼할 자격은 없는 거 같아. 침묵. 미안해. 그냥 이해해줘. 

세상의 모든 슬픔을, 우리는 나눠 가질 힘이 없어서라고. 그래서 힘을 키우면 좋을 텐데, 

우리는 힘을 키울 시간이 없어. 살아남으려면 그런 거 돌아볼 시간이 없거든. 

그래서 세상은 지옥(持獄)이야. 지옥(地獄)이 끝도 없이 지속(持續)되는 곳. 

인생은 苦(go)지. 견디자. 우리 모두 죽자. 그리고 다시 태어나자. 

세대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이야기가 지속되는 한, 조금씩 더 좋은 세상이 올 거라고, 

그렇게 믿으며 살아가는 수밖에는. 


세상의 모든 슬픔을 치유하려면 우주 만한 세월이 필요하다고. 

그러니 그저 옆사람의 손을 꼭 잡고 시간을 건너가는 수밖에는 없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