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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하 Jan 27. 2024

소설가의 성과지표

수험생처럼 써보겠어요

 생활에 조금 더 충실하기 위해 주 3일 아르바이트에서 주 5일 전일제로 근무지를 옮기기로 했다. 수시로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리고, 면접을 보러 다니느라 일주일 동안 거의 아무 일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글 쓰는 일과 병행할 수 있을 정도로 하루 근무 시간이 적고, 체력적 부담은 덜하면서 보수도 괜찮은 곳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고등학교 근무 경력도 있고, 글 쓰는 작가라고 하니까 지원 한 국어학원에서는 대부분 나를 고용하고 싶어 했다. 이런 나의 쓸모가 소설 쪽에서 있었으면 좋겠지만, 역시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혹은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는지도 모다. 그래도 오랜만에 자존감도 올라가고 수입이 늘어날 예정이라 기분이 썩 괜찮았다.


 이제 문제는, 반생활자로 살겠다는 나의 결심을 확고히 지켜내는 일이다.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고, 소설을 써야 한다. 그런데 사실 주 3일로 일하는 동안에도 바로 그 간단해 보이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좌절하기 일쑤였다. 책 읽는 일에는 게을렀고, 소설은 진척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근무일까지 늘어나면, 소설에는 아예 손을 놓아버리는 게 아닐까, 그런 걱정이 앞섰다. 어느 정도로 해야 내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까?  어떻게 해야 소설가로서 잘하고 있는 것이 될까. 사람에 따라 대답이 다를 것이고,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잘하고 싶어서 소설을 쓰기보다는, 무엇도 잘할 수 없어서 소설을 쓰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 하지만 많은 것을 포기하고 선택한 길이라, 나는 어느 정도 이름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어디까지나 나는 읽히기 위해 쓰고, 자기만족을 위해 쓰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반 예술가인지도…)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국어교사로서의 삶과, 이상적이고 모험적인 소설가로서의 삶 모두에서 실패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든다. 나는 항상 고민을 하느라 시간을 흘려보내고, 무언가를 결정해도 곧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종종 조지 버나드 쇼의 유명한 묘비명-이라고 오해받는 문장을 떠올리곤 한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사실 원문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고, 적절한 번역 "살만큼 살았더니 올 것이 오고 말았네", 혹은 "오래 살다 보니 결국 이런 일이 생기는구먼"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왠지 자조적이고 풍자적인 오역이 더 마음에 남는다. 내 묘비명도 그렇게 될 것 같아서.


 하지만 그는 이미 죽었고, 내겐 아직 기회가 있다. 내 묘비명은 유령처럼 램 메모리를 떠돌 뿐, 아직 음각으로 새겨지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신화를 가져야 하는 법인데, 나는 오래 걸리더라도 끝짱을 보는 타입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 영리하지도 못하고 독한 편도 아니지만, 결국엔 하고 싶은 것을 해내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이왕 시작했으니 ‘좋은 소설가가 되자’는 성과 목표를 세우기로 한다. 좋은 작품을 쓰는, 좋은 사람이 되자. 그리고 그것을 측정할 수 있는 성과 지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범위와 분량을 정하고, 하루하루 달성도를 체크하는 수험생처럼 읽고 쓰자는 것.


사실 최근까지는, 취업이라는 목표 하나만 바라보고 사느라 많은 것들을 놓쳤던 이십 대처럼 더 이상은 빡빡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고 싶어도 그럴 힘 없었을뿐더러  자유롭고 느슨한 생활 가운데, 어떤 영감님이 찾아오길 기대하며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건 그냥 게으른 삶이었고, 불안과 혼돈 속에 나를 방치하는 일이었다. 이제 나는 루틴 속에 창조성이 깃든다고 믿는다. 빡빡한 계획을 세우고 절반도 달성하지 못한 날이 많겠지만, 적어도 그렇게 성실하게 무언가를 하다 보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에 다다를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게 될 거라 믿는다. 성실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도 나만의 스타일이고, 생겨먹은 대로 살아야 묘비명이라도 나답게 새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를테면 내 묘비명은 이런 것이었으면 좋겠다.


"힘들다고 그만할 것도 아니잖아?"


 


**안녕하세요 가하입니다. 다들 어떤 일주일을 보내셨나요?

오늘 글은 좀 짧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또 마무리지었네요.

매주 글을 쓰는 게 사실 저를 위한 일인데, 공감하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매주 '대충 열심히', 던진 말들에 책임을 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가끔 이불킥도 합니다)

그래도 앞으로도 대충 열심히 계속해보겠습니다.

다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오늘도 당신만의 하루를 사시길.



[*토요일 퇴근 후 카페에 가서  3시에서 7시 30분 사이에 써서 올리는 실시간 연재입니다. 그래서 모든 글이 초고입니다. 사실 인생도 그렇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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