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기 위해 퇴사를 한 지 어느덧 2년 반이 지났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한동안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나날들 속에 몸을 맡기고, 그 어떤 당위도 없이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한 달에 20일 넘게 술을 마셨고, 퇴직금은 놀고먹는데 펑펑 썼다. 나를 옭아매던 책임감과 의무는 벗어던지고, 철저히 이기적인 딸로 살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소설 수업은 열심히 들었는데 내 생에 남은 운을 다 썼는지 두 번째로 쓴 소설로 등단을 했다. 그걸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줄 알았지만, 내 미래는 더 알 수 없어졌다.
나는 아직 소설이 뭔지도 모르는 애송이였고, 등단이란 타이틀만 얻었을 뿐 내 일상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등단만 하면 바로 원고 청탁이 들어와 마감 압박을 받고, 2~3년 안에 단행본을 내고, 작가와의 만남 같은 행사를 다니며 부수입을 얻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내 이름 하나 믿고 수업을 들으러 오시는 수강생 분들과 하하호호 하며 함께 소설을 읽고 쓰는 그런 삶... 되게 소박하다고 생각했던 그런 삶조차, 주목받지 못하는 소설가에게는 다 허황된 꿈이라는 것을, 소설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삶은 엄청나게 원대한 꿈이었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지금에 와서야 나는 돌이킬 수 없는 퇴사를 후회했다.
그동안에는 안정적 월급이 보장된 교직을 그만둔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현실 문제에 부딪힌 요즘에는 절반 정도 후회 중이다. 어느 쪽이 49%고 어느 쪽이 51%로 기운 마음인지는 모르겠다. 1%라도 소설 쪽으로 기울었으니 최근까지는 주 3~4일 파트타임으로만 근무했겠지? 하지만 나머지를 차지하는 49%의 마음은 수시로 나를 짓눌렀다. 소설도 쓰지 못하고 돈도 잘 벌지 못하는 이런 삶이 계속 유지될 거라면 차라리 하나라도 확실하게 얻는 게 있는 국어교사에 만족하며 살 걸 그랬다는 후회가 몰려들었다. 아파트 대출금과 부모님 병원비, 사회생활 하며 드는 경조사비 같은 필수 비용을 충당하기에 지금의 벌이로는 빠듯하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알바몬을 기웃거리며 보수가 더 많은 전일제 근무지를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38살의 미혼 여성이 일해주기를 원하는 곳은 별로 없었다. 관심도 있고 잠깐의 경력도 있는 와인판매 쪽을 알아보았으나, 나이 제한도 있었고 무거운 와인 박스를 나를 수 있는 힘센 남자를 선호하는 곳이 많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두드려본 국어학원에서는 부리기 쉬운 저경력자를 선호하는 듯했다. 이제 곧 결혼과 출산을 할지도 모르고 경험이 쌓여 이것저것 까다롭게 따지고 드는 30대 후반의 여자는 어디에 가도 섞여 들기가 힘들구나…그런 생각에 이르자 2년 6개월 전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던 나의 미래가 검은 몸집을 부풀려 현재로 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설로 승부를 보지 못하면 나는 정말 실패한 인생이 되겠구나, 그런 생각에 압도되었다. 며칠 동안 잠도 자지 못하고 계속해서 고민했다. 그런데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티베트 속담처럼, 해답 없는 고민만 계속하는 것도 어느 순간 지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민하고 불안해하며 보낸 등단 후 1년 반 동안의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든 노선을 정해 행동을 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뭇거리며 보낸 지금 이 순간들이 2~3년 후의 나를 공격해 올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지금 당장은 소설만 써서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소설가들에게는 '투잡살(twojob煞)'이 꼈다는 것을 받아들이자! 일단 남들처럼 평범하게 돈을 벌고, 문득문득 차오르는 울분은(내 소설은 울분의 모습을 하고 있는가?) 밤에 혼자 조용히 복수하듯 종이에 써내려 가자. 소설가는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또 막상 소설 쓴다고 집에만 처박혀 있어도 상념에 잡아먹혀 효율도 나지 않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철저하게 생활인으로서의 나와 작가로서의 나를 분리하기로 결심했다. 쓰레기를 버릴 때도 분리해서 버리지 않던가? 작가로서의 나와 생활인으로서의 나 중에 과연 어떤 쪽이 쓰레기가 될지는 모르지만(쓸모가 없다고 다 쓰레기는 아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서로를 위해 그러는 게 좋겠다고, *'거울 속의 나'와 현실의 나는 서로 악수를 했다. 그래서 둘이 합의 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소설가는 내 정체성 중의 하나일 뿐이고 또 다른 직업일 뿐이다. 소설에 목숨 걸지 말고 철저히 직업인의 태도로서 소설을 쓰자. 설령 소설가로 망한다고 해도 내 인생 자체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
2. 소설을 쓰는 시공간과 생활을 위한 시공간을 철저히 분리하고 하루에 최소한의 시간을 정해 책상에 앉아 소설을 쓴다. 소설이 잘 써지지 않더라도 직장인이 출근해서 자기 자리에 복무하듯 나는 종이와 노트와 깜박이는 커서 앞에 복무한다. (출근하는 날에도 한 시간 소설 쓰기, 한 시간 책 읽기를 ‘대충-꼭’ 지키자.)
3. 수필가로서의 이름과 소설가로서의 이름을 분리한다. 사실 ‘가하‘라는 필명으로 에세이를 썼을 때는 거리낄 것 없이 편하게 글을 썼는데, 등단 이후로는 왠지 소설가의 에세이는 더 멋지고 감각적이어야 할 것 같다는 부담감에 편하게 쓰지를 못했다. 하지만 문학하는 사람에 대한 쓸데없는 신비주의는 벗어던지고, 글 써서 먹고살고 싶은 생활인으로서의 솔직한 속내를 편하게 드러내기로 한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합의 내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런 것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철저히 분리하기로 한다.'
사실 내가 지나쳐 온 과거는 오히려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과거는 다시 불러올 수도 없고 이미 심하게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실재는 오히려 미래이며, 미래의 본명은 사실 현재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보다 더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살아 볼' 것인가인데, (‘어떻게 살 것인가’가 궁극적인 존재의 의미를 규정해 내려는 무거운 명제라면, ‘어떻게 살아보지'는 조금 더 허용적이고 다양한 기회가 남아 있음을 암시하는 명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한 번 새롭게 살아 보는 것,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는 자세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의 판은 내리 깨졌지만 아직은 다음 판이 남아있다. 게임은 몇 판이고 져도 언제든 새로 시작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계속할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나 스스로를 '반 생활자'로 부르고 새 게임을 시작하기로 했다.
절반의 생활자이면서 나머지 절반은 비루한 현실에 철저히 반대하는,
半생활자이자 反생활자로서 말이다.
*안녕하세요 반 생활자 가하입니다!
3주 연속 실시간 연재에 성공했는데
오늘 글은 더 엉망진창이네요. 하지만 이제 집에 갈 시간이 되어서 일단 초고는 마무리 짓습니다.
그리고 아예 연재 매거진이 따로 있더라구요~지난 두 번의 연재는 되살릴 수 없어서 아쉽지만 어쨌든 토요일 연재 매거진(?)을 새로 팠으니 관심 부탁드립니다 :)
오늘도 당신만의 하루를 사시길:)
[*토요일 퇴근 후 카페에 가서 3시에서 7시 30분 사이에 써서 올리는 실시간 연재입니다. 그래서 모든 글이 초고입니다. 사실 인생도 그렇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