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하 Feb 03. 2024

자기 계발형 소설가

하루하루 생존합니다

 소설가 중에 나만큼 자기 계발서를 많이 읽은 사람이 있을까? 대학교 교양시간에 어떤 교수님이 이민규의 <1%만 바꿔도 인생이 달라진다>를 추천한 후로, 나는 자기 계발서 효용론자가 되었다. 그 책에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부분은 미국 가수 포르티아 넬슨의 다섯 장으로 된 짧은 자서전이다.

 그때의 나도 같은 구덩이의 함정에 자꾸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 책 덕분에 더 이상 이대로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좋아하는 일을 해도 시간은 흐르고 싫어하는 일을 해도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는 문장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는데, 아마 그때부터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삶이 의미 있다는 생각이 싹튼 것 같다.


 찌질했던 대학 졸업반 시절에는 스타 영어강사 유수연의 <20대 나만의 무대를 세워라>의 독설과도 같은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으며 나도 절치부심해서 언젠간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살리라 결심했고, 수험생 시절에는 전효진 변호사의 <독하게 합격하는 방법>을 읽고 아침 7시에 일어나 세수만 하고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책상에 앉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면 공부를 안 해도 되는 여러 핑곗거리들이 생각나므로 전효진 강사는 그런 시간까지 단축하기 위해 양말까지 신고 잠들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몰입의 즐거움>, <혼자 있는 시간의 힘>, <토요일 4시간>, <원씽>부터 최근 유행하는 <타이탄의 도구들>, <부의 추월차선>, <클루지>, <아주 작은 습관의 힘> 까지 탐독했다. (물론 아침에 일어나 침대 시트는 정리하지 않는다) 내 알고리즘은 동기부여 영상으로 가득하고, 심지어 나중에는 <가장 효율적으로 소설가가 되는 법>이란 자기 계발서를 써낼지도 모르겠다. 책을 쓴다는 말은 물론 농담이지만, 사실 그 비슷한 것을 써본 적은 있다.


 임용 준비생들끼리 시험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넷 카페에는 매년 최종합격한 사람들의 합격수기가 쏟아지는데, 나도 합격 후에 간단하게나마 적어 올렸던 것 같다. 합격 수기의 메인 플롯은 물론, ‘저는 이렇게 공부해서 합격했지만, 여러분은 각자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세요’이다.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좋은 말을 해줘야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나도 언젠간 저렇게 당당하게 합격수기를 쓰리라, 그런 생각으로 수험생활을 버티기도 했다. (역시 내게 있어 쓰기란 복수의 한 방식인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합격 수기를 쓰며 가장 놀라웠던 점은, 내가 정말로 합격 수기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자기 계발서들 덕분에 겉으로는 긍정적인 척을 했지만, 부정적인 환경에 계속 노출되었던 사람 특유의 체념과 불신, 무력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나였다. 나도 저렇게 합격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과,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좌절을 수시로 오가며 수험생활 4년을 버텼다. 사실 어쩌면 그때 나는 버틴 게 아니라 그만둔다는 선택조차 하지 못한 채, 수험생이란 신분으로 현실도피를 했던 건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근무를 하면서도 원서접수 시즌인 겨울만 되면 이상하게 눈물부터 차오르곤 했으니까.

 하지만 깊은 불신과는 별개로 성공 가능성에 대한 적극적인 몽상을 펼친 적도 있었다. 자기 계발서의 메시지가 진짜라면 그것을 한 번 검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원하는 것을 말로 하고 글로 적으면 이루어진다고? 그러면 나는 미리  쓰는 합격수기를 써볼까?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마음속에 그리고(아는 사람은 다 아는 R=VD !) 그것을 이미 이룬 사람의 주파수에 맞춰(오- 밥 프록터 선생님!) 그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해 볼까? 해서 나쁠 건 없어 보이고, 정말 이루어지면 나만 좋은 일이니까. 하지만 왠지 정말로 그러고 있으려니 손발이 오그라들고 스스로 미쳤다는 생각이 들어 제대로 시도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막상 실제로 합격수기를 쓰는 순간이 오니, 그때 내가 미리 쓰는 합격 수기를 썼다면 나는 지금쯤 ‘임용판 시크릿’을 내고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 계발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소설가가 된 지금도 나는 자기 계발서의 효용을 믿는다. ‘이 모양 이 꼴인 나’를 적극적으로 계발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더 절망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 분명하고, 또 내가 말하는 자기 계발서엔 ‘심리학’ 서적도 포함되어 있어서 나의 고질적인 불안증이나 공포회피형 인간으로서의 부정적인 면모들을 잘 다스리며 살고 있다.(물론 여전히 같은 구덩이에 빠지고 있다. 하지만 회복 탄력성이란 마법의 단어가 있지 않던가!) 소설가로서의 삶과 생활인으로서의 삶의 균형점을 잘 찾기 위해 요즘엔 시간관리 방법에 대해서도 많이 연구하고 시도하고 있다. 등단 전에는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전혀 없어 (여전히 소설가가 예술가인가에 대의심 중이다.)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를 읽으며 매일 창조성 훈련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수기를 미리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망한 소설가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결심을 매주 확인하는 자기 계발의 일환이다. 이번 주의 나도 역시 글로 먹고살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있는지, 그것을 확인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래서 이번 주엔 어떤 글을 쓸지, 미리 구상하지 않고 그냥 3시에 퇴근해 카페에 앉아 무의식을 풀어헤치다가, 현재의 나와 가장 가까운 마음을 붙잡아 글로 풀어내고 있다. 오늘은 정말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또 이렇게 무사히 한 주를 채워 넣는다.  



[*토요일 퇴근 후 카페에 가서  3시에서 7시 30분 사이에 써서 올리는 실시간 연재입니다. 그래서 모든 글이 초고입니다. 사실 인생도 그렇지 않나요?]


이전 02화 소설가의 성과지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