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선교편지1(2024년 10월 1일)
"엄마, 저 항공 마일리지가 많이 남아 있어요. 올해 안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되어요. 엄마, 아빠, 두 분 어디 다녀오세요."
"그래? 내 마일리지도 올해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된다고 문자가 왔네. 너의 마일리지와 합하면 어디에 갔다 올 수 있을까?"
"한 번 찾아보세요!"
남편과 나는 남은 마일리지로 어디에 갈 수 있을까를 찾다가 '삿포로'를 찾게 되었고, 5월에 이곳을 방문해 달라던 이선교사님의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남편과 나의 선교여행은 이렇게 우연히 시작되었지만, 되돌아보면 하나님이 계획해 놓으신 시간표 안에 짜인 시간이었음을 알고, 나는 놀랐다.
"선교사님! 그 선교지를 방문하려는데 무엇이 가장 필요하세요?"
"일본은 밑반찬이 없어요. 밑반찬이 필요해요."
"그래요? 알겠어요."
며칠간 열심히 밑반찬을 만들었다. 검은콩, 메주콩, 땅콩의 콩반찬과 진미채 무침, 어묵볶음, 멸치볶음, 한우 불고기 양념하기, 그리고 배추김치, 무김치, 김, 호박죽, 누룽지, 나중에 반찬 할 수 있는 진미채와 멸치, 진공포장된 족발, 오곡햇반, 고추장, 떡국, 사골국물, 냉동감자떡, 쌈장, 우동 다시 간장, 멸치육수, 조선간장, 만능조리간장, 삼계탕 만들 때 넣을 한약재, 명태포, 다른 종류의 컵라면 4개를 구입해서 준비했다. 요리한 반찬은 그냥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진공포장 하기 위해, 아시는 분에게 진공포장기도 빌렸다. 그런데 이 진공포장기가 첫 3번째 반찬까지는 아주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더니만, 그다음부터는 밀폐는 되는데 공기를 빼내지 못했다. 진땀을 빼면서 이렇게 저렇게 해 보았지만 도무지 작동을 하지 않아, 나머지 반찬은 그냥 밀봉만 하기로 했다.
항공수하물 규칙을 찾아보니 기내수하물은 10KG, 위탁수하물은 15KG으로 되어있다. 부칠 짐으로 2개의 여행용 가방에 준비한 물건을 다 넣고 달아보니 두 가방 다 15KG을 초과한다. 어쩔 수 없이 떡국, 사골국물, 감자떡, 쌈장을 제외하고, 양쪽을 잘 분배해서 달아보니, 두 가방의 무게는 15.4KG과 15.6KG로 얼추 맞춰졌다.
홋카이도가 얼마나 추운 지역인가! 오래전, 첫째 딸이 호주로 공부하러 가기 전, 몽골에서 3년간 NGO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몽골의 겨울제품을 많이 한국으로 보내준 것이 있었다. 털모자, 털장갑, 털목도리, 양모로 된 옷등이다. 이 모든 것과 털코트, 겨울코트를 기내수하물에 집어넣고 보니 10.3KG. 다른 한 가방에는 남편과 내가 필요한 것을 좀 넣고, 역시 선교사님에게 필요한 기모스타킹, 양산 겸 우산등의 물건들로 채우니 10.5KG가 되었다.
10월 1일이 출발일인데 9월 27일, 남편이 등산을 갔다가 넘어져서 앞이빨 하나를 부러뜨려서 왔다. 앞이빨 하나가 없는데, 사람의 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아빠, 맹구 같아! 어쩌면 좋아!"
두 딸들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9월 30일 치과에서 의치를 끼웠다.
10월 1일 출발일, 아침 일찍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8시 25분 비행기가 9시 30분으로 연기되어 있다.(태풍으로 일본의 몇몇 지역의 운항이 지연되었다.) 참 오래간만에 여유 있게 출발하겠다 싶어 내심 좋아했었는데, 출발 30분 전에 카톡을 보니 게이트 60에서 게이트 30으로 변경되어 있었다. 이는 인천공항의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으로 변경된 것으로, 걸어가면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어찌 우리 부부는 이 메시지를 보지 못했는지, 잘못하면 비행기를 놓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남편과 나는 거의 미친 듯이 달리다시피 해서 겨우 제시간에 티켓팅을 할 수 있었다. 진공포장기 때문에 진땀을 빼게 하더니만, 여기서도 땀을 비 오듯이 쏫아냈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입국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자리에 앉으니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입국수속 절차를 다 마치고 수하물을 찾으려는데, 공항직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또 무슨 일인가? 한 개의 가방에 일본어로 무엇이라고 적힌 큰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한국인 직원이 우리를 부른다.
제복을 입은 일본 직원의 말,
"(일본말로) 이 가방을 열어 보세요!"
가방을 여니 그 가방에 진공포장된 족발이 있다.
"(일본어로) 이게 무슨 고기입니까?"
"돼지고기입니다"
"반입금지입니다."
마침 그 가방에 불고기에 넣을 채소, 즉 양파와 당근을 진공포장한 것(유일하게 진공포장된 3개 중 2개)이 들어 있었다.
"채소도 반입금지입니다."
이 직원이 의심스러운 눈길로 다른 가방을 쳐다보더니만 그 가방도 열어보라고 말한다.
이리저리 뒤적이더니만 불고기를 양념해 놓은 비닐봉지를 들고 무엇이냐고 묻는다.
"쇠고기입니다."
"역시 안 됩니다."
그리고는 이 용지를 준다.
양념불고기를 빼앗기고 나니, 가방이 갑자기 얼마나 가벼워졌는지! 그 비싼 한우 1등급을 양념한 것인데!! 마음이 쓰라렸지만,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한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누구를 탓할 수 있단 말인가?
같이 탑승한 모든 여행객이 다 떠나고 난 뒤, 남편과 나만 가장 늦게 출국장을 나왔다. 이선교사님 부부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나는 약간 눈물이 났다. 험한 여정을 거쳐 만난 그들이었기에 너무나 반가웠고, 또한 입국에서부터 일본에 홀대를 당한 기분이 들어 약간 서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