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무엇이 사람의 영혼을 겸손하게 하겠느냐? 나의 영으로 충만할 때만 성령이 사람으로 하여금 겸손을 가능하게 하느니라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방법: 나를 사랑하는 나드 향유를 싸고 있는 옥합 같은 마음이 있을 때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된다. 가장 귀한 그 향료를 속사람에 담은 자가 나를 위해 스스로 깨어지는 순간이 아름답다. 나를 많이 사랑하는 자는 더욱 많이 깨어진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 내게 한 발자국씩 더 가까이 다가오게 된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순간: 너의 무능을 깨닫고 나의 앞에 나아올 때 내가 일을 시작할 것이다. 일단 내가 시작한 일은 반드시 성취할 것이다. 네가 가장 강할 때는 네가 가장 연약함을 깨달을 때이다.
강건: 네 영이 잘 되어야 네 혼과 육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할 것이다. 마귀에게 조금도 틈을 주지 마라. 늘 기도로 깨어있어야 한다. 기도가 네 생명줄이다.
하루: 하루하루 내가 네게 준 축복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감사함으로 누리거라. 그것이 네 복이다.
하나님의 의: 선한 일을 할 때 그냥 하지 말고 내 이름으로 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행할 때 내게 행하듯이 해라. 그렇지 않으면 자칫 네 의가 되기 쉽다. 모든 믿음의 행위는 동기가 중요하다. 일의 동기가 문의 출입함이니 너의 출입이 겸손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환란: 각 인생에는 각자의 아픔 총량이 정해져 있다. 이 모든 환란이 그대에게 덮칠 때 기이한 일을 당하는 것처럼 여기지 마라. 이 길을 통과하지 않으면 여호와의 저울에 미달이 될 것이다. 원수의 영이 욥을 참소하듯 평안한 신부의 삶은 참소를 받느니라. 그러니 그대는 환란이 오거든 기뻐하거라. 이 모든 고통이 그대에게 상이 될 것이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환란 중에 네 행위를 옳게 하거라. 그리하면 내가 아버지의 구원을 보이며 그대를 건지리니, 그대가 나를 영화롭게 할 것이다. 그런즉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느니라.
축복과 저주: 사람이 평생을 살아온 가치관을 바꾸고 내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인생을 돌아본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축복이 얼마나 가치 없는 허망한 것들이고, 그들이 저주라 여기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들이었는지를 깨달을 것이다. 세상과 나는 정반대이다.
영의 세계: 영의 세계는 역동하는 세계이다. 영의 세계는 전진하든지 아니면 후퇴이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이 세상은 다 불에 타 없어질 허상이고, 진정한 세계는 영의 세계이다. 이 영의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교회에 다닌다는 믿음의 사람도 실상은 내 계명을 지키지도 않은 죽은 믿음을 간직하고 자신의 의에 빠진 착각의 옷을 걸친 채 스스로 속고 살고 있다.
너는 먼저 은혜의 깊은 강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촘촘하게 짠 씨실과 날실의 말씀의 그물을 내려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이루어진 후에야 영혼의 고기들이 잡힐 것이다.
훈련: 너는 네게 가장 알맞은 강도의 적합한 좁은 길의 훈련을 받고 있다. 내가 허락한 그 길과 방법이 네게 최고로 좋은 길인 것을 믿어라. 남과 비교하지 마라.
거듭남: 영혼의 깊은 회개가 없으면 거듭남의 경험이 없는 자이다. 거듭나 천국을 침노하는 자가 되거라. 많이 애쓰고 많이 심은 자가 많이 거둘 것이다.
설교: 거룩한 말씀을 선포하는 자리에 떨림이 없다면 그 설교는 가짜이다. 진짜 목자의 가르침은 희귀하다. 그들의 복음 선포는 생명을 잉태한다. 진짜 목자에게는 같은 종류인 진짜 성도가 꿀벌처럼 송이꿀 같은 말씀을 사모하며 붙어 있다. 육이 하는 설교는 교인이 청중이고, 혼이 하는 설교는 종교인이 청중이고, 내 신부가 하는 설교는 내가 청중이다. 그대의 청중은 사람이 아니라 나다. 씨를 떨어뜨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씨를 떨어드리는지가 중요하다. 또한 씨는 예배 때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에서 떨어진다. 사람의 삶 자체가 예배이다.
생각: 육신으로 이해하는 생각을 떠나 영으로 이해하는 생각을 해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나는 각 사람의 중심을 달아본다. 내 저울에 미달된 자를 장수로 세우지 않는다. 또한 내 저울에 합격한 자를 졸병으로 두지 않는다.
교인: 내가 숫자에 연연하지 말라고 당부하지 않았느냐. 내게는 알곡 한 알이 수백 개의 쭉정이보다 더욱 중요하다. 그대는 한 명 앞에서 말씀을 선포할 때나 천 명 앞에서 말씀을 선포할 때나 마음을 한결같이 하거라. 말씀은 누구 앞에서 선포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누구의 영으로 선포하는지가 중요하다.
기름진 삶: 기름지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다 보면 영은 잠들게 된다. 사람은 무언가에 대해 대가를 어떻게 치르는지가 참으로 중요하다. 육으로 심는 자는 육으로 썩어질 것을 거두고 영으로 심는 자는 영으로 영원한 생명을 거두느니라.
성품: 육신의 사람이 깨닫는 자아는 실상 떠있는 빙산의 작은 봉우리에 지나지 않는다. 자아파쇄는 사람이 평생 해야 할 작업이다. 썩지 않으면 결코 진주문 안에서 새로 소성하지 못한다. 많은 목양, 훌륭한 목회, 위대한 사역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네가 모두을 섬길 성품으로 빚어지는 것이다. 성화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한 사람, 거룩하신 분으로 채워지기 위해 자신을 버린 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알고 사모하는 자이다. 그들의 머리 위 면류관을 주님께 도로 돌려드린 자들이다. 그들은 매일 회개하며 세마포 옷을 빠는 자이고, 자신의 빛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청렴하신 푸른빛을 반사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역동하는 산 믿음으로 살아있기에 완전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영이다.
인간: 많은 피조물이 말씀을 귓등으로 흘린다. 마치 자신은 죽음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 존재로 착각한다, 결국 마귀의 박장대소하는 소리에 놀라서 질겁하고 벌떡 깨면 모든 삶의 게임은 끝이 나고 무대의 막은 내려진 상태이다. 인간은 얼마나 무지하고 미련한지 모른다. 그들은 부끄러울 정도로 자신의 멸망을 염두에 두지 않는 삶을 사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