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마취에서 깨어나는 것.
둘째, 피가 멈추는 것.
셋째, 인공호흡기를 잘 떼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술은 5시간에서 6시간 정도입니다. 큰 수술이지만 우리 의료팀은 거의 매일 하다시피 하는 수술이니까 큰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수술 후 이 세 가지 문제가 잘 해결되어야만 수술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여기 이 란에 두 분 다 사인해주시기를 바랍니다."
30대 중반이나 40대 초로 보이는 여의사는 또박또박 설명을 하면서 수술 동의서를 내민다. 남편과 나는 서너 군데의 사인란에 이름을 적었다. 이 사인은 별 탈없이 수술이 끝나면 아무런 영향력이 없겠지만, 혹시나 무슨 일이 발생된다면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질 수 있는 사인이다.
"심장 관상동맥 우회술"이란 생소한 단어가 남편의 수술명이다.
남편은 '심장 CT와 관상동맥 조형술'을 받은 뒤 '병원에서 입원하라고 한다'는 말을 나에게 전한다.
"아니 왜요? 밥 잘 드시고 멀쩡하게 잘 다니는 사람을 입원하라니? 그 유명한 대학병원이 당신에게 입원시킬 자리가 있나 보네요?"
"나도 잘 모르겠어. 일단 화요일 입원하라고 하니 입원해야지. 한 번 미루어지면 언제 다시 진료예약이 잡힐지 알 수가 없으니까"
" 당신, 온 사지 다 잘 움직이니, 혼자 입원하면 되겠지요?"
나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라는 확신의 미소를 머금고, 미안함을 감춘 채, 이번 주에 잡혀있는 아이들의 '말하기 수행평가' 스케줄을 남편의 입원보다 더 위에 놓으며 말한다.
"알겠어. 일단 오늘 내가 먼저 입원하고 오후에 의사 선생님이 보호자를 만나야 된다고 하니 오후 3시 40분에 심혈관센터로 와."
"그럴게요. 뭐, 검사 결과가 안 좋다면 스탠 하나 정도 박겠죠. 그건 간단한 수술이라고 하니 큰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벌써 내 마음은 학교에 제출할 조퇴에 대한 관리자의 승인 여부에 대한 염려로 무겁게 기울어지고 있다.
"스탠 단계는 지났습니다. 수술해야 합니다. 그래야 됩니다."
"아니, 웬 수술인가요? 갑자기?"
"CT 촬영이 생각보다 좋지 않게 나왔습니다."
" 스탠 박으면 되지 않나요?"
의사는 답답한 듯 몸을 한번 뒤틀고는
"내가 스탠 전문의사인데 내가 할 수 있음 하지 왜 수술하라고 하겠습니까?"
" 그래요? 그렇게 심각한 건가요?"
의사는 심장에 대해 전혀 문외안인 이 보호자를 난감하게 쳐다보며, 가능하면 빨리 수술 날짜를 잡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 당신, 수술해야 된다고 해."
의사와의 면담을 끝낸 후 입원실 앞 복도에서 만난 남편에게 내가 말했다
" 아니 멀쩡한데 무슨 수술을. 여기,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 맞아?"
"몰라. 수술하래."
남편도 멀쩡한 자기가 입원해 있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데, 수술을 하라니 생사람 잡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 의사인 처남에게 전화를 했나 보다.
"당신 오빠가 수술 안 하면 죽는다고 한다. 빨리 수술 하래."
조금 있다가 곧 새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응, 언니야."
"아가씨, 지금 웃음이 나오나? 지금, 웃을 때가 아니다."
(그럼 울 때인가?)
이 모든 되어지는 상황이 너무 급격하고 생경해서 나도, 남편도 지금이 어떤 상태인지,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에 대한 현실인식이 전혀 되지 않았다.
화요일 면담 후 금요일로 수술 날짜가 잡혔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몇 달간 기다려야 수술이 가능하다는 많은 사람들의 말이 정말일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급속히 진행되었다.
한 두 달 정도 전, 퇴근하고 있는 내게 남편이 전화를 했다.
"나 지금 OO병원 응급실이야. 나 좀 데리러 와 줘."
"아니, 응급실이라니? 무슨 일이에요?"
"응, 가다가 넘어졌는데 많이 다쳤어."
"팔이나 다리 하나 부러졌나요?"
"아니, 그건 다 멀쩡한데 얼굴이 많이 다쳤어."
"다 큰 사람이 넘어지다니. 정신을 어디 두고. 알겠어요. 곧장 갈게요."
코로나 때문에 응급실 앞 대기실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전광판에 나와있는 남편의 이름 옆에 '진료대기 중'이란 글자가 몇 시간째 번쩍이고 있다. 응급실이란 곳은 다급한 환자를 먼저 치료하는 곳이니까 아마 남편은 위급한 환자에 속하지 않나 보다고 생각하면서 기다림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았다. 그날따라 날씨의 변화가 얼마나 심했던지 따스한 봄날로 인한 나의 가벼운 옷차림은 밤이 되자 변덕스러운 봄이 내뿜는 차가운 기운을 도저히 막아내지 못했다. 떨면서 너 다섯 시간을 보낸 후에야 왼쪽 얼굴 거의 전체가 시퍼렇게 멍들고 눈 밑에는 몇 방울을 궤 매어 하얀 붕대를 널찍하게 붙인, 퍼런 멍과 하얀 붕대의 이상한 조화를 얼굴에 담고 남편이 나타났다. 얼마나 심하게 넘어졌던지 남편의 양복 뒷자락은 찢어져 펄럭거려 마치 패잔병의 깃발 같이 나부꼈고, 나는 그 뒤를 추위 때문에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볼품없는 대장 뒤를 졸졸 따르는 졸병처럼, 함께 응급실 문을 나섰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2시 30분.
남편의 그 넘어짐이 돌부리 때문이 아니라, 지금 돌아보니 심장질환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심장이 좋지 않다는 전조현상이 벌써 나타났지만 무지한 남편과 나는 전혀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관상 동맥이 세 개가 있어요. 그중 두 개는 꽉 막혔고 한 개는 75%가 막혀 있습니다. 핏줄들이 다른 곳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피를 공급받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군요. 그러다가 갑자기 객사하는 거지요. 이번 수술은 이 두 개의 관상을 다리에 있는 혈관을 떼어내어 다시 뚫고 잇는 수술을 할 겁니다."
CT 사진을 보여주며 조목조목 설명하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남편과 나는 사태의 심각성과 위험성을 그나마 조금 알게 되었다. 남편과 나, 두 사람 다 지금까지 수술 경험이 전혀 없다. 그러나 5시간 내지 6시간이라는 수술시간이 나에게는 더 크게 다가와 '이것이 간단한 수술이 아니네. 이게 대 수술이네'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남편의 이름 옆 "수술 중"이란 꼬리표가 계속 나타났다, 사라지다를 5시간 30분 동안 반복하더니만, 드디어 "수술 완료"란 글자가 자리를 차지했다. 그날, 남편과 거의 같은 시간을 사용한 환자 서너 명 외에는 대부분이 두세 시간짜리의 수술이었다.
중환자실에 들어간 지 하루 만에 연락이 왔다.
"환자의 상태가 좋아서 오늘 집중치료실로 옮깁니다. 보호자님, 빨리 병원으로 오세요."
마취, 지혈, 인공호흡기의 삼종 장애물 경기를 무사히 통과한 남편이 온몸에 5개의 줄을 주렁주렁 달고 집중치료실로 이동했다. 3명의 간호사가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며, 4명의 환자가 한 방에 있다. 간호사가 근무하는 쪽에는 항상 불이 켜져 있기 때문에 환자든 보호자든 어느 정도의 불빛 조명에 익숙해져야 수면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환자들은 수술의 후유증 때문에 대부분 진통제를 먹는다. 그래서 수면에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문제는 보호자이다. 환자들은 아직 자유롭게 대소변을 하지 못 하기 때문에 수시로 깨어서 일처리를 도와주어야 한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는 하룻밤이 지나갔다.
다음날 이웃들과 인사를 했다. 72세 할머니가 수술을 하셔서 역시 70대의 남편 할아버지가 병간호를 하신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힘들어하시지 않으시고, 두런두런 이야기까지 하시면서, 아내를 열심히 보살피신다.
"아이고 할아버지, 힘드시지 않으세요?"
나는 눈인사를 건넬 때마다 안부인사를 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죠."
다리를 약간 저시면서 할아버지는 나에게 웃어주는 여유까지 보이셨다. 참으로 아름다운 노부부이셨다.
74세의 친정엄마를 돌보는 40대 중반의 시집간 딸이 우리의 옆자리이다. 엄마가 심장이 좋지 않아서 벌써 몇 차례 입원을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도 본인의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여서(대학생과 고등학생) 병간호를 할 수가 있는데, 앞으로 계속되는 엄마의 병간호를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특히 이 따님 되시는 분은 멋쟁이셨는데, 머리 감고 샤워를 자주 하지 못해 아주 불편해했다.
73세의 할아버지가 수술을 하셨다. 간병인 아줌마가 그를 보살피신다. 할아버지도 수술 직후여서 우리 남편과 같이 대소변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신다. 그런데 생판 알지 못하는 60대 후반의 아줌마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이 쉽지 않으신 것 같았다. 또 할아버지가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품위 있게 사셨던 분이신 것 같아서 더 힘들어하시는 것 같았다. 아내 되시는 분과 자녀들은 간혹 전화로 할아버지를 위로하고 격려하지만, 육신적으로도 고통스럽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어하시는 할아버지를 다 이해하지는 못 하는 것 같았다.
집중치료실에 온 지 이틀 만에 5인이 사용하는 일반 병실로 옮기게 되었다. 담당의사는 남편의 치료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고 놀라워했다. 집중치료실에 온 지 하루 만에 의사는 일반병실로 옮겨도 되겠다고 말했지만, 일반병실의 자리가 나기까지 하루를 더 기다려서 옮기게 된 것이다. 우리가 떠난 그 자리에 바로 중환자실에서 수술 환자가 옮겨왔다. 그런데 50대 중반의 남자분이 인공심장 이식 수술을 했는데, 몸에 줄을 거의 20개 정도 달고 왔다. 이동시 줄이 움직이는 것인지 사람이 움직이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많은 줄을 달고 왔다. 그분은 온 간호사들이 다 알고 있는 분이셨다. 즉 이번이 두 번째 수술인데, 저번 수술에서 인공 심장 박동기가 몸에 잘 적응이 되지 않아서, 살을 거의 6kg 정도 빼고 다시 수술하게 되었다고 그 부인이 설명해주었다. 숨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분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아무 탈없이 자연스럽게 숨 쉬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남편의 가슴에서 배까지 칼로 자른 흉터가 이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일반병실에 온 지 4일 만에 퇴원을 했다. 즉 수술한 지 꼭 일주일 만에 집으로 온 것이다(2021년 5월 28일 ~6월 3일). 일반병실에서 남편과 바로 맞은편에 계셨던 분은 남편보다 먼저 수술하고 일반병실에 온지도 벌써 일주일째인데 아직 퇴원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리를 부러워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배가 올챙이 배여서 수술하고 기운 곳이 다시 터져 또다시 꿰매었고, 담배를 피운 것이 지금 치료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생각지도 않은 일을 당할 때 또 생각지도 않은 기적을 경험하기도 한다.
"전신마취의 후유증이 가래야. 그런데 난 거의 가래가 없었잖아. 한두 번 뱉어내고 거의 가래가 없었어. 당신이 집중치료실에서 힘들어한 것 중의 하나가 사람들이 끊임없이 가래 뱉는 소리라고 했잖아. 분명 수술 시 전신마취를 했는데 난 정신이 또렸했어. 의사들의 말이 좀 들리기도 했는데, 전혀 아프지는 않았어. 그런데 그때 이런 음성이 들렸어. '내가 너의 십일조를 다 기억한다. 그래서 너의 고통을 십 분의 일로 줄여주겠다' 깜짝 놀랐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해서 말이야. 그리고 곧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더라고. 그래서 내가 말했지. '주님, 왜 이렇게 허리가 아픕니까?' 그러자 이런 음성이 들렸어. '겸손으로 네 허리를 동이라.' 조금 있다가 갑자기 피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어. 의사들이 당황하여 관을 하나 박는 것 같았어.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어. '주님 갑자기 피가 솟구치는데 이건 왜 이렇습니까?' '예수님의 보혈의 피, 십자가와 구원만을 증거 해라' 그러시면서 '내 종들에게 잘해줘서 고맙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내가 울었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보고 나를 칭찬하시나 싶어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어. 그분이 나를 찾아오셨어."
남편은 아주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다. 남은 인생을 더욱 건강하게, 그분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면서.
P.s. 저희들을 위하여 중보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