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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Oct 05. 2020

가방 없이 출근하는 여자

쇼퍼백 → 미니백 → 無

그 시작은 '미니멀리즘'이었다.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내 생활에 하나씩 적용해보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게 가방이었다. 당시 나는 커다란 쇼퍼백을 가지고 다녔다. 가방이 크다 보니 자연스레 안에 넣는 물건의 가짓수도 많았다. 지갑, 차키, 책 한 권, 노트와 펜, 화장품 파우치, 물티슈, 휴대폰, 휴대폰 충전기, 이어폰, 그리고 각종 영수증들.

일단은 크기를 줄여야 덜 넣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작은 가방을 집어 들었다. 커다란 장지갑에서 꼭 써야 하는 몇 장의 카드만 뽑아서 얇은 카드지갑을 채웠다. 무게만 차지하고 잘 보지 않는 책은 빼버리고 노트와 펜은 휴대폰 메모장을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화장품 파우치에서도 쿠션 팩트와 립 제품 하나만 골라냈다. 휴대폰 충전기, 이어폰 등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다 비웠다. 이마저도 미니백에 다 넣으려니 마치 테트리스를 하듯 이리 넣었다가 저리 넣었다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 미니멀리즘에 한 발 다가간 것 같은 뿌듯함에 미니백을 잘 들고 다녔더랬다.


얼마 안 가 가방을 더 줄여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휴대폰을 삼성 갤럭시로 바꾸게 되면서 삼성 페이를 이용하게 된 덕분이었다.(삼성 페이는 혁명!) 삼성 페이 안에 카드를 등록하고 나니 카드지갑이 필요 없어졌다. 그리고 남은 건 화장품. 쿠션 팩트가 은근히 자리 차지를 많이 했다. 수정 화장을 포기하자는 생각까지 다다르자, 내 손에 들린 건 휴대폰과 차키뿐이었다.

아니 이렇게 되면 가방이 필요 없잖아?????

휴대폰과 차키만 넣자고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이 더 이상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자 그때부터 빈 손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도대체 가방이 없어서 좋은 점이 뭔데?',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 하는 의문이 생길 것 같다.

처음에는 미니멀리즘의 일환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 장점에 제대로 맛 들렸기 때문인데,

첫째, '가볍다' 내 어깨를 짓누르는 짐, 혹은 손에 들린 무엇이 없으니 기동력이 좋다.

둘째, '편안하다' 첫 번째 장점과 이어지는 부분이다. 몸이 가벼우니 항상 편안하고 좋다.

셋째, '내가 언제 출근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건 구두를 안 신고 다녀야 확실히 보장되는 장점이다. 가방 없이 다니기 때문에 언제 출근한 건지 다들 모른다.(자리에 자연스럽게 착석하는 스킬이 필요하다.)

실제로 아침 출근길에 만난 사람들이 '네가 지금 출근을 하는 건지 화장실을 다녀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며 가방 좀 들고 다니면 안 되냐고 했었다.


뭐든지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하지만 가방 없는 자의 단점은 소소하다.

첫째, 앞서 언급했듯이 자꾸 물어본다는 것. '지금 출근하냐?', '퇴근하는 거냐?', '어디 다녀오는 거냐?'

좀 지나니 다들 적응이 되었는지 나중에는 쟤는 원래 가방 없다며 그러려니들 하셨다.

둘째, 가끔 짐이 있으면 불편하다. 가방이 없기 때문에 손에 들어야 하는데 그럼 손이 아주 불편해진다. 그러나 이전에 들고 다니던 미니백도 마찬가지다. 이미 테트리스로 꽉 찬 내부는 더 이상 남은 자리가 없다.

셋째, 휴대폰과 차키는 들고 다녀야 하니까 주머니 있는 옷이 필수다. 여성복의 경우 바지 주머니가 없거나, 있어도 깊이가 너무 짧아 물건이 들어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옷이 많다. 날씨가 추워져 겉옷을 하나 더 챙기는 경우에는 주머니 걱정이 없지만 여름에는 주머니 있는 바지가 아니면 입기가 곤란하다.(그래서 치마를 못 입는다. 하지만 원래 치마를 안 입으니 상관없다.)

넷째, 휴대폰마저 가지고 다니기 귀찮을 때가 있다. 물건이라고 들고 다니는 것이 휴대폰이 유일하니, 이마저도 무겁게 느껴진다.  앞으로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있다.


가방 없이 출근한 지 이제 1년 정도 되었다. 이 변화를 계기로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는데, 난 정말 나를 많이 아낀다는 것이다. 내 몸이 편한 게 정말 중요하더라.(가방이 없는 장점 중 가장 큰 것이 '편안함'인데, 이건 직접 겪어봐야 안다.)

아무리 가벼운 가방이라도 가방 자체가 있느냐 없느냐는 아주 큰 차이다. 난 그 차이를 이미 느껴버렸고, 항상 비어있는 두 손이 너무도 만족스럽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가방 없이 출근하는 일'은 더 만족스럽다.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게 화장품이었는데, 항상 마스크를 쓰게 되면서 이제 화장은 아예 하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미니멀리즘을 접하면서 가방 없앤 걸 시작으로 이제는 나의 다른 부분에도 하나씩 적용하고 있다.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또 나에게 득이 된다.

헤어, 옷 스타일부터 사무실 책상, 집 정리 등 내 생활 전반을 꿰뚫는 하나의 큰 기준이 된 미니멀리즘.

생활이 간결하고 단순해질수록 내 인생에 더 집중할 수 있음을 몸소 느끼고 있다.

가방 하나 없는 덕으로 벌써 내 몸에 집중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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