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고 있는 약을 모조리 다 털어서 먹어버렸다.
한달치쯤 되려나, 아침약-저녁약-자기전 할 것 없이 모두 다 탈탈탈.
죽고 싶다는 아니었다.
너무 진절머리가 났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사소한 일에도 높다란 파도를 타듯 널뛰기 하는 내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도무지 모른체
울고 불고 소리를 지르고 던지고 부수고 그러다 다치고 그렇게 자책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나는 대체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 걸까.
또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서 시작되는구나 싶을 즈음, 되려 차분해졌다.
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고리- 내가 끊어버리면 그만이야
하루치 약을 먹으면 하룻밤 편하게 잠들 수 있으니
대략 한달치면 한달 내내는 아니어도 며칠 정도는 죽은 듯이 다 잊고 잘 수 있겠지
그냥 그런 생각이었다.
잠시 전원을 끄고 싶었다.
약을 먹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생각했지.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나오는 타노스의 핑거스냅이 필요하다.
고통없이 자연스럽게 원래 없던 것처럼 흔적없이 슥 사라지고 싶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뜬 건 이틀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