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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수연 Oct 19. 2020

자아, 뮤지션, 엄마

자아, 뮤지션, 엄마. 세 가지 타이틀을 균형 있게 잘 갖추는 게 가능한 일일까?


'사실 그건 처음부터 무리였어...'라고 말하고 싶은 한주의 마지막 날이다.




내 계획으로는 이번 주 안에 신곡 녹음을 마쳐야 했다. 그래서 다음 주 중에는 편곡자에게 넘기고 싶었는데 예정보다 빨라진 생리, 그에 따르는 괴로운 두통과 무기력함, 그리고 시부모님의 방문으로 녹음은 다음 주로 미뤄졌다. 그리고 찾아온  늘 그렇듯 모든 시공간이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다. 


하루하루는 힘들었고 최선을 다한 듯했지만, 현실은 매정하다. 아픔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 엄마로서, 며느리로서도 부족했고, 음악 작업은 며칠째 그 자리에 멈춰져 있다.


음부터 무리였다고 말은 하면서도 어딘가 내 노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나라는 자책감든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최선을 다하고서도 늘 아이에게 미안한 것처럼 나도 아이에게 그렇고, 음악에 그렇고, 나에게도 그렇다.




이번 글의 제목은 최근에 읽은 책 제목 '자아, 예술가, 엄마(selfhood, artisthood, motherhood)' 응용해봤다. 책 속의 예술가들은 '엄마됨'으로 달라진 일상과 결코 쉽지 않은 엄마이자 예술가로서의 길을 나름의 방식으로 잘 헤쳐나가는 모습이었다.


책 '자아, 예술가, 엄마(selfhood, artisthood, motherhood)'


직장 다니는 엄마들은 예술가 엄마들과 다를까. 직장맘들은 매달 주어지는 물질적 보상과 채워야 하는 근로시간 덕분에(?) 엄마와 일 사이의 균형 혹은 규칙성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변에서 보아온 직장맘들의 삶에 나를 대입해본다면 시간에 쫓기고 육아에 허덕이다 자아가 망가질 게 너무도 자명해 보인다. ('자아' 타이틀 획 실패의 예)


그리고 프리랜서 술가에게 예술가라는 타이틀은 굳이 엄마가 아니더라도 얻기 힘들어 보인다. 직업의식을 뒷받침해주는 듯한 꾸준한 수입과 뚜렷한 근로 시간, 장소가 없고, 여기에다 주된 돈벌이마저 다른 일이라면 스스로 예술가라고 말하는 게 더 쉽지 않을 것 같다. 


 또한 수입 남편으로부터 나오는데 내 직업이 주부, 엄마 쪽이 더욱 당연해 보이는 것 아닌가. 내가 쓰고 있는 근로시간도 물론 그쪽으로 더 치우쳐져 있다. ('예술가' 혹은 '뮤지션' 타이틀 획득 실패의 예)


지금은 자아실현마저 아이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세상에 태어나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존재의 손발이 되어주고 보호자가 되어주면서 삶의 의미를 게 됐다. 한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가 됨으로써 이 세상에 무의미한 존재는 아니게 된 느낌랄까.


정말 처음부터 무리인 여정은 아니었을까. 워킹맘은 죽도록 어렵고, 그냥 엄마로만 살아도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은 정말 힘든 일 아닌가. ('엄마' 타이틀 획득 실패의 예)




이렇게 글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내가 생각한 '타이틀 갖추기'가 너무 이상적이었던  아닌가 싶다. 하나라도 제대로 갖추기 이렇게 . 그리고 매번 아플 때마다 깨닫지만 몸이 아프면 밥을 차리기는커녕 차려준 밥마저도 맛있게 한술 떠먹는 수 없는 그저 미약한 존재... 


그저 엄마로서 아이를 챙겨줄 수 있는 정도의 건강, 나이가 들어서도 끊임없이 열정이 샘솟는 음악,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가족. 이 모든 것이 내 노력 아닌 선물과 같음을 깨닫는다. 아픔이 타인에게는 도움이 못 돼도 내 깨달음에는 도움을 주는구나.


아, 뮤지션, 엄마, 타이틀들을 잘 해내야 하는 의무감이 아닌 내게 주어진 선물로 바라보려 노력 때 더욱 행복해질 수 있을 되새긴다.


더 당당해지자. 하루하루 아주 더디게 나아가여러모로 부족한 나지만, 동시에 나는 그 모든 타이틀을 이미 지니고 있는 멋진 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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