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친구들이나 전 직장 동료들은 모두 내 동태눈을 기억할 듯싶다.전 직장동료 왈 "언니 진짜 출근할 때마다 좀비가 걸어오는 것 같았어..."
학교 다닐 때도, 회사에 다닐 때도 늘 아침엔 정신을 못 차렸고, 점심밥을 먹으며 좀 사람 같아졌다. 오후에는 노곤노곤하다가 저녁이 되면 기운이 나고 밤이 되면 행복해졌다. 전형적인 올빼미 체질인 것 같다. 지금도 아무리 일찍 자도 다음날 일찍 일어나면 종일 피곤하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을 때 가장 상쾌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다행히(?) 남편은 나보다 더 심한 올빼미형 인간이다. 신혼 때는 딱히 우리의 생활패턴에 문제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우리의 생활이 남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다른 것을 넘어 고쳐야 할 문제임을 깨닫게 됐다.새벽 3시쯤 잠들고 주말에는 오후 2시가 되어 일어나는 생활.
아이를 10시 전에는 재워야 성장호르몬이 분비돼 키가 큰다는 이야기는 귀가 아프게 들었지만, 과학적 근거를 따져가며 끝까지 한 귀로 흘린 나였다. 하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며 어쩔 수 없이 일찍 재우고 일찍 깨워야 하는 이 사회의 패턴을 억지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노력해서 12시쯤 다 같이 잠자리에 눕고 아이는 1시쯤 잠들어 10시에 일어나 비몽사몽 어린이집에 간다. 다른 아이들이 점심을 먹을 때 아침을 먹는 거다.
아이를 먼저 재우려는 노력도 해봤지만, 아이는 잘 때 누군가 옆에 없으면 금방 깨서 울고, 패턴이 더 엉망이 되기 일쑤였다.
이런 올빼미 부부에게는밤낮 조절만 어려운 게 아니었다. 올빼미라는 단서가 주는 성향들이 꽤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때 자지 않는다는 건 사회의 암묵적 규칙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했다. 남편은 직장에서 자율출근제를 가장 용기 있게 활용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상사보다도 느지막이 출근할 수 있는 용기. 그만큼 야근을 많이 하긴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성향 때문인지 아이에 대한 통제도 무척 느슨하다.
세돌이 지나고 한 달이 더 지났지만 아이는 기저귀를 떼지 않았다. 또래 친구들은 뗐다고 하지만, 아이가 변기를 거부하지 않을 때를 기다리며 조급해하지 않는다.
공갈젖꼭지도 아이가 쿨하게 이별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고 두 돌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뗐다.
영상도 분별해서 보여줄 뿐 과하게 통제하지 않는다.
집안에서 모래놀이, 물놀이를 자유롭게 시켜주고, 먹고 싶어 하는 간식도 과하게 제지하지 않는다.
가장 최소한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안전, 위생,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에 대해서만 통제하고 혼을 낸다.
육아는 경험해본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주변의 말들도 참 많다. 공갈젖꼭지는 치아를 망가뜨리고, 영상을 많이 보여주면 아이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저귀는 몇 개월 전엔 떼야하고... 그런 말들을 들으면 근거가 없는 말들임을 알면서도 내가 불량 엄마인가 싶어 마음이 답답해진다.
참고로 PD를 잠시 꿈꿨던 사람으로서 한 편의 영상을 만드는 것이 얼마큼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지. 노력으로만 보면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정성보다도 더 큰 노력인데(비교할 대상은 아니지만) 너무 해악으로 여기는 것은 가끔 좀 불편하게 들리기도 한다. 물론 과하게 보여주지 않도록 노력하고, 내용도 잘 선별해서 보여줘야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