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팀, 법무실, 건축 추진실의 법무담당, 그리고 다시 법무실... 회사란 곳에10년을 근무했을까?
재취업 한 곳은 국내 대규모 플랫폼 기업이었다. 지금은 이 회사가 없는 대한민국에서의 삶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 당시에는 조금은 가벼운 느낌, 그러니까 지금의 스타트업과 같운 스피릿이 묻어나는 것들이 있었다. 위계없는 사무실의 배치도, 공간, 면접비를 안 주는 문화(?), 출퇴근 시 상사에게 인사를 한다거나 인사팀이 각 조직에 딱히 통제함이 없거나 의례 필요한 업무상의 기안이 없었다.
이런 점은 업무를 보는 관점에서도 나타났다.
금융업에서는 직접 수행을 포한한 소송 업무라든지,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 체계 안에서 의사결정 과정을 보고하고, 법규에 부합하는지 컨트롤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IT 업계는 일정한 체계가 있지 않았고, 어떤 것이든 일이 되게끔 하는 것이 중요했다. 답변이 나가는 속도도 빠르며 사안에 따라 법무담당자에게 PPT로 보고 하는 것을 요구하는 일도 때로 있어서 그때는 잠시 황당해하기도 했다. 플랫폼 안에서는 세상의 별별(잡)법들을 다 봐야 했고, 사내 부서에서 묻는 것에만 자문을 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즉 법무 업무가 '묻는 것, 쟁점과 그 주변에 한해 답변'하거나. '권리를 주장하는 자를 보호한다'는 법의 대원칙에서 한참 벗어난 것으로 여겨졌다. '아, 이러다가 이 업계에서 넋 놓고 있는 거 아냐?'당시에는 IT업의 기술력이 국가의 경쟁력이다고망 할 정도는 아니어서 늦기전에 어서 원래 위치로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숱하게 들었다.
특히 내가 있던 곳은 또래 동료들이 많았음에도 개인적인 문화가 강했다. 이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직원들 간 연대의식은 전통적인 기업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노동자(근로자라는 표현이 더 좋은 표현으로 알고 있지만, 법상 노동자라는 명칭이 더 피용자로서 업무를 하고 급여를 받는 지위로서는 더 좋은 표현이다) 스스로도 자신들의 권리 의식이 높지 않았다. 지금은 IT 업종에도 노동조합이 생겼지만, 불과 한 뼘 차이의 이전 시기만 해도 이 곳의 노동조합의 등장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마치 관련 업계의 노동자의 인권의 먼 미래상 같으로 여겨졌다.
어디서나 마찬가지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렇듯 제도적인 시스템이 받쳐주진 않기 때문에 어쨌거나 이전과 달리 년차가 쌓인다고 직급이 올라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라인이 없으면 좋은 직책이나 일을 맡기는 어려워보였다. 여기서 좋은 일이란,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다. 좋은 성과를 못 받으면 당장에 개인의 존재감이나 정체감은 흐릿해졌다. 정규직의 메리트를 이곳에서는 체감할 수 없었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나는 3년이 지나고서야 흥미를 갖고 집중할 만한 일을 찾게 됐다.
그때도 나를 알아봐 준 한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나는 사실 군더더기가 없이 딱 떨어지고 새로운 일들을 좋아하는 편인 사람이었다. 명쾌하게 일하는 것의 즐거움이배가된 시절, 나의 열정에 점점 더 워커홀릭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직장에서의 존재감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이전 직장에서 간접경험하며 알고 있었다. 당시 선배도 나와 같은 때가 있을을테니까. 앞으로 내가 처한 혹은 처할 환경의 한계와 나의 가치, 만족도는 달라질 것인데 좋든 싫든 나는 그것들에 매이고 싶지 않았다. 결국 다시금 진로를 고민하게 됐다.
당시 출근하기 전 어학원을 등록해 다니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효용이 덜하지만 미국변호사 라이선스라도 취득해 오는 것이 나에게 좋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는 직장 생활로 채워지지 않는 갈증, 어딘가에 몰입하고 최선을 다하고 싶은 지독한 목마름이 있었다.
"국내 대학원을 가보는 것은 어때요?"
미국 유학과정을 준비하고 입학을 알아보는 시기였다.
유학을 알아보던 나에게 동료 변호사는 국내 대학원을 권했다.
그 친구는 회사를 다니면서 국내에서 공부를 할 수 있으니 좋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흠. 그런데 라이선스는 어떡하지?' 나는 국내 대학원 과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어떻게 가는 것인지, 가면 무엇을 공부하는지, 그래서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인지... 그 이후의 삶은 어떠한지..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대학 졸업 후 대학원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졸업 무렵 취업은 낙타가 바늘귀를 뚫고 지나는 것과 다름없었다.
집에 여유가 있거나 부모님께 기댈 수 있는 친구들은 백수 대신에 대학원을 들어가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나는 취업란으로 학교에 몸을 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그런 종류의 후퇴를 택하는 성향은 못됐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대학원은 비겁한 자들이 하는 선택일 뿐, 그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인생의 목표를 갖고 진학하는 곳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이제와서 대.학.원.이라니!
30대 중반에 중요한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의 길을 선택할 때 그 길이 적합한지를 전망해 보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 같다.
누구는 인생의 선배를 찾기도 하고,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다. 혹은 용하다는 점집에 가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는 인생에 사활을 걸 총알이 남은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신중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됐다. 이제는 기회비용을 따지기보다 내 삶에 진지한, 기쁜 모험이 되기를 바라며 그때부터 하나씩 필요한 것들을 체크해 나가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나침반이 정확한 북쪽을 가리키기까지
첫째, 대학교 정하기
둘째, 전공과 코스 정하기
먼저 이 두 가지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일단 "국내"에서 "가족과의 시간"과 "직장"을 병행할 수 있는 길을 가겠다는 선택을 했으니 그것으로 감사했다. 어떤 목표도 마찬가지이듯, 미국으로 유학가지 않고 국내에서의 길을 찾았다는 것과 그것으로 인해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만족감을 갖는 것이 중요했다.
물론 그다음 스텝은 있다.
실행을 전제로 하는 인생의 선택에 있어서는 그 실행을 통해서 성취도를 보고 자신감을 얻고 그다음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그래서 저 두 가지를 생각하기 전에 일단은 6개월의 예행연습에 들어가기로 했다.
선택의 폭을 좁히기 이전에 "할 수 있는 것인지"가 중요했다.
대학원 예행연습
직장인들이라면, 정부와 연계된 기관이나 각 대학교 특수대학원 등에서 직장인들의 인맥과 교류를 목적으로 만든 코스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모르더라도 지금부터 찾아보면 된다. 예를 들어 나는 법무 분야에서 일했기 때문에 사단법인 공정거래연합회라는 곳에서 수강료를 지급하는 코스를 회사 업무 강화 겸 등록하게 됐다. 대형 로펌의 변호사, 경쟁당국의 고위 공무원, 굴지의 대기업의 선후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코스가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학원 진학 후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알게 되는 일에 도움이 된다. 또한 낯선 사람들이지만, 내 분야에서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분들을 향해서 일종의 노하우를 얻거나 연대감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물론 나는 저런 것들보다 다른 목적이 있었다.
바로 "밤늦게 수업을 듣고", "밤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머릿속에 정리된 것들과 학습된 것을 "말로 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 싶었다.
그렇다. 어찌 보면 집중력과 체력을 테스트하는 기간이었다.
이 과정은 보통 금요일 저녁에 회사 업무를 마치고 여의도에서 이뤄졌다. 밖은 춥고 오는 길도 길다. 퇴근 시간 지하철을 타야 했고, 식사는 대충 때우고 자리에 앉아서 2시간이 넘는 강의를 듣고 토의도 해야 한다. 그리고 마치면 놀랍게도 가벼운 맥주를 하면서 서로 교류하는 자리가 있었다.
딱히 공부 그 자체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시도는 이 같은 훈련을 6개월간 해보는 것이었다. 나중서야 겪고나서 알았지만, 대학원은 이런 시간보다 훨씬 힘들다. 물론 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그래도 위 과정을 예행으로 거쳐봤기 때문에 힘이 들고,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스스로 만든 예행연습 때문인지 실전에서는 뒤를 안보고 해낼 수 있었고 고생이 당연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렇게 나의 예행연습은 진행됐으며, 불금의 밤은 생각만큼 녹초가 되는 시간들 이기는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때 아니면 언제 했을까 싶을 정도로 좋은 선택으로 기억된다. 이 기간 느낀 점들은 다음에도 이어서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