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전공은 어떻게 결정할까

대학원에나 가볼까

마음의 소리는 크고 분명하게


"과장님은 그 전공을 좋아하지 않으신 것 않은 것 같아요"

일본 규슈의 바닷가, 어디서 무엇을 공부할지에 관한 오랜 기도의 답을 뜻밖의 장소에서 얻었다.

전문가 연수 과정에서 친해진 변호사 친구가 건넨 말에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그는 법철학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당시 내가 고민하던 선택지가 오답이라고 확인해 준 셈이다.

국내 대학원 진학하기로는 했지만, 목표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공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일까?

미래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보다 사회가 인정해 주는 라이선스가 중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유학의 차선책으로 국내에서 미국 변호사 라이선스를 취득할 수 있는 도곡동의 K 대학원의 지식재산권 관련 학과를 생각했던 것이다.


주변에서는 대학원 전공이나 법률 아닌 법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법철학 전공에 있던 그 친구와는 이야기가 제법 잘 통했다.


후련했다.

어떤 선택지를 선뜻 선택하지 못할 때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특히 나처럼 실행력이 있는 성향의 사람이 선뜻 저지르지 못하는 마음이 들 때는 스스로 오답임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 뭘 공부해야 하나

- 쓸모와 본성의 갈림길에서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대체로 직장인들은 자신이 처한 업무나 환경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상법, MBA 과정은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의 커리어나 인맥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끄덕일 수 있지만, 전문성을 높이려고 할 때는 좋은 선택이 아닌 경우가 많다. 물론 이 경우 상사나 회사법 쪽으로 심화하려는 변호사인 경우는 제외이다.

나도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만을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다. 나는 직장에서는 당시에는 상표법, 지식재산권법, 저작권법 등의 업무가 일부가 있었고, 공정거래법의 경우도 업무 관련도가 높았다. 그래서 먼저는 그 부분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적성이나 흥미는 그 분야에 없었다. 현상, 테크닉, 첨예한 권리와 분쟁의 끄트머리의 쟁점에 흥미가 높지 못했다.

그럼에도 대게는 당장 처한 업무 환경에서는 그것만을 생각하기 쉽다. 돌이켜보면 나는 금융, 보험 쪽에서 경력이 있었고 회사를 다니는 이상, 어떤 법을 다룰지는 그때그때마다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좀 태평한 소리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늦었다고 생각들 때, 바로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 때,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런 공부를 하는 게 필요했다.


본질적인 것, 인간이 본연의 문제에 가까운 것!내 마음이 동하는 분야는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학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그래 법철학이나 기초법, 헌법 이런 것들은 어떨까?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그런 전공으로 뭐 먹고살래?" 하는 생각이 들었어야 했다.


실천적 학문의 가능성

- 응 이걸로도 먹고 살 수 있어!


일본에서 오답을 찾은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런데 무엇을 해야 할까? 당시 바닷가에서 친구와의 낭만적인 생각으로 법철학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너무 고차원적인 학문으로 유학을 다녀오거나 제2외국어에 정통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실행불가능", "가성비 낮음"이라는 당연한 판단을 마주했다.

당시 나는 법대로는 최고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한 학부를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런 경우 대부분은 신림동에 있는 그 학교를 가거나 아님 그냥 모교를 가거나 둘 중에 선택하게 된다.

대학원의 경우 자기가 나온 학교를 갈 경우에 여러 가지로 편의가 있다. 일단 교수님들이 친절하고, 캠퍼스와 사람들, 심지어 새로 만난 사람들도 인정해 주는 알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

나는 졸업 후에도 모교에 연결고리가 없지 않았다. 학교 동아리가 있는 종교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그런 형태의 결정이 내겐 너무 인위적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모교든, S 대이든지 간에 중대한 결정이니 만큼 좀 더 자연스럽고, 운명적인 사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국내 최대 포털회사에도 회사인지라 지면 신문을 본다. 각 부서마다 신청을 할 수는 있지만, 사실 지면 신문을 사무실에 들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그날은 탁자에 누군가가 신문을 두었던지라 살펴보게 됐다.

A 대학교, 헌법전공 교수의 칼럼이었다.

헌법이라고 하면 법률 중의 상위법이다. 그런데 칼럼의 글은 헌법 이론에 근거해 현실, 특히 당시 핫한 기술인 인터넷과 플랫폼을 논하고 있었다. 순간 눈이 밝아진 느낌이었다.

"와, 어떻게 헌법학으로 이런 현실적인 글을 쓸 수가 있지?"라는 생각에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그분께 연락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들었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학부를 나온 대학의 교수님인 것을 발견했다.

국내 대학원, 그리고 학교, 전공. 지도교수님을 정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결과적으로 기도의 응답은 매우 선명했다.

나이가 들수록, 손에 든 것이 많을 수록 되려 선택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쓸모와 관심. 두 가지 갈래길에서 방황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알 수 없다. 요새 더 그렇다. 30대만 돼도 좋은 대학으로의 입학이 예전만큼 나의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 알 수 없는 세상이라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때부터 나의 20대 중반부터의 진로에 대한 나침반이 정확히 한 반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도교수님 컨택하기


대개는 자신이 갈 학교를 정해놓고 대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둘러보게 된다고 들었다. 각 대학마다 전공 교수님의 약력, 논문 등이 잘 소개되어 있다. 그래서 그렇게 가늠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나의 경우엔 우연찮은 기회로 학교, 전공, 지도교수를 정할 수 있었다. 쉬워 보이지만 지난한 고민의 시간들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가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다.

때문에 어떤 방법이 최고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만약 내가 당시 지식재산권 영역을 국내에서 전공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모교에서 해당 분야의 저명한 교수님으로 정해 연락해 봤다면 어땠을까? 물론 어느 정도 지금과 같은 모습에 도달해있을 수도 있겠지만, 괜한 것들에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았을 것 같다. 마치 회사의 나처럼 말이다.

실제 그럴 생각도 없지 않았다. 뒤늦게 알게 됐지만, 그 분야의 전공과 연구실 사람들의 분위기는 나와는 너무 다르고, 막상 그렇게 진학했었더라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석사에서 공부를 마쳤거나 아니면 학위를 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이력에 석, 박사 타이틀을 한 줄 넣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정해진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칼럼의 글의 주인공인 교수님께 장문의 메일을 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의 끄트머리 즈음 답장이 올 것을 기대하면서. 하지만 행여라도 여행 중에 전화라도 오면 어떡하지? 시차가 다른데? 공부한다는 학생이 해외여행 간 것을 알면 교수님께서 언짢아하시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조금 들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들어가서 배우고 싶은 교수님이 있다면, 입학원서를 내기 전 한 학기 전에 '이메일' 연락을 하기를 바란다.

교수님들은 대체로 이메일을 신속히 확인하시고, 잊거나 하시는 경우가 없다. 불쑥 전화, 문자, SNS(카톡)을 보내기에는 수업이나 연구 등 일정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처음엔 이메일이 적정하다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연락드리는 입장에서도 자기소개라나 할 말을 빠짐없이 하게 될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연락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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