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겪는 첫 발표를 축제처럼

대학원에나 가볼까

내가 원해서 하는 공부니까


학부 때로 거슬러가면,

정말 생각하기 싫은 교수님이 계셨다. 그가 맡은 전공 수업은 신세계이며, 지금도 ESG측면에서도 훌륭하다.

하지만 졸업 무렵 내 주변 학부생 중에 그와 좋은 기억을 남긴 사람은 몇 안 됐다.뻔뻔하게도(?)학부 때는 공부가 뭔지 몰랐었고, 시험 무렵 밤새워 열심히 하다 보면 B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 역시 시험을 보고 종강 후 받아본 성적에 당황해 찾아갔지만, 교수님은 정말 같은 말이라도 못됐게 하시는 재주가 있으셨다.

'그래, 내가 부족하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당신은 무례하고 배려심이 없다' 라고 돌아섰지만, 내심 작은 상처 입었다. 수님은 졸업 무렵 조금이라도 성적을 올려보려고 찾아간 취준생을 향해 모욕과 무안을 줬던 분으로 기억에 남았다. 덕분에 나는 그 과목을 두 번 다시는 보지 않게 됐다. 개인적 관심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십년도 더 지나 대학원 시절 캠퍼스에서 이제는 머리가 새하얘진 그를 본 적이 있다.

당시의 앙금보다는, 얄미운 새침쟁이 교수님이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모습이 짠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교수님의 권위에 눌린 쭈구리 학생...은

아주 오래전 법과 대학의 모습일 뿐이다.

요새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오히려 무서워한다고 하지 않는가!(교수님들 고생이 많으십니다)

대학원 때는 조금 달랐다. 일단 수업에 참여하는 나의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직장과 대학원을 병행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예의를 갖추고 나에게도 교수님에게도 다른 학생들에게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제자와 선생님은, 어떤 캠퍼스이건 간에 서로 인격적인 관계어야 한다. 그리고 우선적으로 그것에 대한 시작은 나에게 있었다.


수강신청하기


첫 학기 수업은 설레는 마음으로 수강신청을 했다. 과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전공-인접 과목-교양과목 순으로 서너 과목을 신청했다. 전공은 다른 법과목과 달리 학생들이 빡빡하게 느끼고, 제2외국어 수업도 있어서 소수 정예로 이뤄지게 됐다. 주간 수업은 어떻게 하냐고? 예를 들어 수요일 2시 수업의 경우라도 휴가를 몇 번 내서라도 필수적으로 들었다. 주중 수업을 매주 참여를 못할 경우 두어번 온전히 성의껏 주제 발표를 해도 좋다. 부분은 정중히 메일을 드렸다.

코스웍을 마치고 논문 심사를 받고 싶은 교수님이 있다면, 반드시 해당 교수님의 수업을 수강을 고려하는 것이 모범적이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고, 나중에 가서야 수업 한번 안 들어본 교수님께 심사를 청하는 분들도 있는데, 교수님과의 호흡과 티칭에 서로 고생할 수 있다. 석, 박사 후 연구활동을 계속할 것이라면 원칙적인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보통 석,박사 각각 4학기이기 때문에 그동안 지도 교수님 수업, 전공 심사위원 교수님 수업을 생각하면, 결국 학기마다 자기 전공의 심사위원이 되실 교수님의 수업을 듣게 된다.

그리고, 한 번씩 들어갔다고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학원 수업의 경우 잘 이수할 경우 교수님께서 다음 학기에도 수업에 들어오라고 권하시거나 하면 안 들어갈 수가 없다.


물론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핑계를 대거나 이유를 대지 않고 그냥 들어갔다. 어렵고 힘든 전공 과목의 대학원 수업은 자주 폐강이 되기 때문에 교수님 입장에서도 학생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진지한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면, 그런 상황에 있어서도 자기 전공의 생존과 연속성을 위해서 지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결론은, 전공 수업을 성의껏 이수한다고 했지만, 이토록 성실하게 하기는 전업학생이 아니고서야 쉽지가 않다는 점이다. 물론 그만큼 더 배우고, 교수님과 다른 전업학생이나 연구자의 길을 가려는 분들을 만날 기회를 얻기에는 좋았다.


인접과목은 자기 전공의 이웃 전공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나는 관심분야의 저명한 교수님의 중요한 수업을 듣기로 했다. 논문을 쓴다고 했을 때 유사한 학문과 융합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게 된다. 바로 그때 그 과목을 유념해서 코스웍 중에 수강해서 공부해 두면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나머지 교양은, 학부 때랑 달리 타과 교양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학과 내에서의 다른 전공을 뜻한다. 이 역시 인접과목 사촌 정도로는 생각을 하고 접근하는 것이 좋다. 단지 점수나 듣기 좋은 시간대여서 수강을 하게 된다면, 남는 것이 없다.


그리고 매번 발표는 소논문을 쓰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성실하게 주제를 고르고, 자료를 리서치하고, 나의 문장으로 쓰기를 권한다. 나의 경우는 석, 박사 모든 코스 동안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렇게 해나갔던 것 같다. 그리고 듣는 수업에서 절대 중복되지 않게끔 각각 다른 소논문을 준비했다.

비슷한 주제를 쓰거나 한 번 썼던 발표문을 재탕하게 되면 교수님들은 단박에 알아차리셨다. 어느 날 수업에서 알던 후배가 호되게 꾸지람을 받았다. 바로 그런 이유였다. 학생들은 몰라고 교수님은 아셨던 것이다. 나도 박사과정을 거쳐보니 글만 봐도 대략 눈치를 채는데 교수님들은 더 그렇다. 어쨌거나 이런 과오는 학생 스스로에게 손해가 되는 일이다. 학위만이 목적이더라고 최소한 수업시간을 훈련으로 받아야지 그렇지않으면 너무 아쉽다.

누군가 그랬다. 박사생까지가 실수가 용납되는 시기라고ㅡ


첫 발표


행정법 가까운 과목으로, 나의 전공인 헌법과 이웃지간에 있는 학문의 사촌쯤 되는 과목이었다.

담당 교수님은 업계에서는 유명한 분이셨는데, 그의 수업에는 역시 많은 사회인 대학원생들이 참여했다.

특히 그 수업에 참여한 후배 변호사, 국가기관의 좋은 분들은 아직까지도 연락을 할 만큼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내게 대학원을 권한 회사 동료의 권유로 첫 수업 발표 주제를 정했고, 어쨌거나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데 웬걸? 발표 중에 교수님은 어느 한 부분에서 굉장히 언짢아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게 당신이 연구한 것의 주장이 아니지 않소?' 하면서 인용 부분을 문제 삼았다.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내게 필요한 지적을 해주시는 것으로 받았다. 그런데 사실 업계에서는 업무 중에 굉장히 보편화된 하나의 이론 같은 것이라서 지나친 반응였다. 뭐랄까. 고작 대학원 발표에서 이렇게 민감하실 이유가 있으실까? 하는 느낌였다. 다만 공직 사회에서 있던 그 역시 처음부터 교수는 아니었다. 듣기로 굉장히 유연하게 대응하실 수 있는 분이 이런 예민한 반응을 한 것은 나에게 진정한 논문 작성법을 일러주기 위해서인가? 고작 석사 1기 생에게? 수업이 끝나고 나서 그 교수님의 연구실 사람들과 식사를 하게 됐고, 교수님이 좀 까탈스러운 분이란 것을 알게 됐다.


이 과목의 두번째 발표는 잘 마쳤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서는 아마도 나의 회사 동료가 조언을 준 부분에서 교수님의 연구결과가 침해된 것처럼 느껴진 부분이 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교수님께서는 종강 자리에서 내 동료에 대해서 물어왔기 때문이다. '끄덕끄덕, 그러실 수 있지!'


그런 일들이 딱히 선을 넘게 불쾌하거나 마음에 기억되거나 할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내가 딱히 잘못한 것이 아니고, 열심히 공부하다 선의로 그의 감정을 건드렸다고 생각됐기 때문인지, 마음의 불편함은 내가 아닌 교수님께 있을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내 마음에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공부했느냐이고, 얼마만큼 준비하고 어떤 태도였냐. 이 세 가지만 중요했다. 하지만 회사 동료가 준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내 목소리나 생각이 아니면 버렸어야 했다. 이것은 나중에서야 나도 좀 더 훈련이 되고서 깨달은 부분이다.


발표도, 교수님의 코멘트를 통해 알게 된 복합 미묘한 상황들도,

그리고 그 유명한 교수님의 연구실 사람들도

모두 다 내게는 재산이 되었다.

@ 나도 알고 보니 오리가 아닌 백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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