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큰맘 먹고 나름대로 강남 한 복판에서 야심 차게 운전면허를 땄지만, 남편과의 연수 후 내가 절대 하지 못할 일로서 운전을 포기했다. (원래 가족에게 연수 받는 것은 아니란다)그렇게 십 년이란 시간이 흘러 면허 갱신 기간이 됐다.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니고, 운전을 꼭 해야 한다거나 하는 상황은 없었다. 운전을 하게 되면 편리한 유익도 크지만, 무엇보다 차를 가진 사람에게 의지하거나 부탁하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섬길 기회가 생기게 된다.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다르다"라는 생각들,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하기 보다 섬기는 사람이면 더 좋은 인생일 것 같다. 한편 조금더 현실적으로 내 몸을 깨울 이유도 필요했다.
올해 장롱면허 중 운전면허 갱신이라는 비굴한 상황은 받아들이지 말자!라고 생각하며 사내 게시판을 뒤져 언젠가 봤던 개인 운전연수 선생님 리스트를 찾게 됐다. 두어 분 정도로 좁혀졌는데 한 분은 남한산성을 꼭 훈련 코스로 넣는다길래, 다른 한 분께 연락을 드렸다.
“자, 이제 주차장을 빠져나가 볼까요?”
“네? 제가요?”
꿈인지 생신지 모를 대화를 나누자마자 차는 주차장을 빠져나가 고속도로를 지나 심지어 회사 앞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고 있었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가 아바타가 된 것일까? 분명히 나는 운전석에 앉아 있었지만 내가 운전하는 것 같은 기분은 아니었다. 내 인생에 운전은 절. 대. 못. 할 것만 같은 일이었다. 마음은 긴장됐지만, 차분히 잘한다며 선생님이 칭찬해 주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집에 무사히 돌아온 운전 연수 첫날, 선생님은 절대 믿기 어려운 말을 하셨다.
“내일은 남한산성에 가볼 거예요”
나중에 알게 되었다. 몇 분 연수 선생님을 골라두고, 남한산성 코스가 연수 코스에 없는 분께 한다면서 다른 번호로 연락한 것이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변호사 동료는 자기야말로 평생 운전을 못할 줄 알았다며 “남한산성 운전해 가봤어요? 저는 거기서도 연수를 받았거든요”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속으로 절대 가지 말아야지 했던 게 기억이 난다.
“ 남한산성은 나중에 가야 하지 않을까요?”
유해 보이는 선생님은 나의 몇 번의 물러섬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그다음 날 나는 결국, 운전 선생님의 보호 아래 편안히 남한산성을 다녀왔고, 커피도 한 잔 마시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주변에 똑똑하고 운동신경이 좋아 보이는 분들도 의외로 운전을 안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서울 시내에서 운전을 하면 길이 많이 막혀 무릎에 안 좋다는 말들도 많이 한다. 하지만, 운전을 할 줄 알면 나를 찾아온 손님들을 태워드리기도 좋고, 여러모로 섬길 일에서 내가 나설 수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 운전을 하는 편이 좋을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못해서 못하는 것과 할 줄 아는 데 안 하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이 있었고, 두려움이라는 한계를 꼭 뛰어넘고 싶어서 운전을 배워가고 있다. 아직까지 초보운전으로 뒷차에게 "빵!"을 당하는 일은 없이 무사히 고속도로와 시내도로를 조심히 다니고 있으니 감사할 노릇이다.
첫 번째 학술지 논문
돌이켜보니, 등재지에 소논문을 내는 것도 운전만큼 두려운 일이었다. 일단 시작 자체가 너무 큰 두려움이 드는 일인 것이다. 운전할 때 신호체계를 알고 핸들 조작법을 알아야 하는 것 이외에도 교통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도로 상황에서 다른 차와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을 생각해야 하는데, 논문을 작성할 때는 논문작성법을 먼저 알고 암기하고 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면서 주제를 정하고, 무엇을 어떠한 흐름대로 작성할지 체계를 생각하며 사유의 과정을 논증해야 하는데 초보자는 역시나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익숙하지 않다.
·한글 프로그램은 필수
학교나 학술지에서 서식이라도 좀 짜서 주면 안 될까? 하는 원망 어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나에게 한글에서 문서 정보를 보는 법이라든지, 목차를 자동으로 불러와 제목 뒤 화면에 나열하는 방법을 알려달라며 어렵게 전화하시거나 점심을 사러 오시는 분들도 있었다. 공공기관이 아닌 경우 워드 프로그램을 많이 쓰기 때문에 한글 프로그램, 문서도 없을뿐더러 쓰는 법도 모르거나 배워서 익혀도 상당히 어색할 수 있다. 한글 프로그램이 없다면, 유료라도 구매를 하는 것이 좋다. 학술지 논문을 안 쓰더라도 학위논문에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한글 프로그램이다. 물론 학교에서는 논문작성과 제출은 워드 파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 글을 교정해 주시고, 조언 주실 분들은 한글을 쓰시는 교수님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교수님들께 수정을 받을 때는 메일로 파일을 드리고 나서 파일을 출력해 하드파일로 가져다 드리는 것이 예의라도 배웠다. 다만 교수님의 성향에 따라서 파일만으로 받아도 충분한 경우도 있다. 한글의 몇 가지 기능에 대해서는 블로거들이 상세히 이미지와 함께 설명도 해주니 꼭 먼저 찾아보고, 그래도 힘들다면 지인이나 후배들에게 부탁하는 방법도 있다.
·학술지에 이름 싣기
학술지 논문에 소논문을 쓰는 일은 초보 때 남한산성에 한 번 다녀와보는 일과 비슷했다. 초보인데 어려운 과제를 남의 도움을 받아서든, 심사위원님들의 혹독한 심사평을 통해서든, 어떻게든 해보고 나면 고생한 만큼 실력이 확 늘어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 공동 저자로 학술지에 도전하게 됐다. 학술지 논문의 저자에는 단독이 있고 공동 저자가 있다. 특히 교신 저자(corresponding author)는 해당 논문에 대한 심사에 필요한 과정에서 학술지 편집자와 책임을 지고 연락을 하고 교정 여부를 담당하게 된다. 대부분의 학술지는 교신 저자를 지정해 규정하는데, 논문에 대한 질문이나 문제점에 대해서 빠르게 조치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 전공이나 학술지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대부분 교신 저자와 공동 저자는 논문의 주저자로 인정받는다.
첫 번째 논문의 나의 기여도는 크지 않았다. 분량으로 말한다면 4분의 1 정도 일까.
먼저 비교적 실체가 있는 주제를 정했고 서로의 전공이 달랐기에 각각의 시각으로 주제를 분석하게 되었다. 즉 한 장 정도를 담당하고, 서론이나 결론에 있어서 다시 분량을 정해 공동 작업을 하게 됐다. 당시 나는 대학원 석사 과정의 1기를 마치는 단계였기 때문에 혼자서 단독으로 학술지에 투고할 자격은 없었다. 법학에서는 법조인이거나 전문분야에서 경력이 있는 등의 학술지 회원 자격을 요구하며, 실무에서 경험을 논문으로 작성하시는 분들 이외에는 대부분 박사과정 이상의 단계에서 학술지 논문을 쓰게 된다. 당시 나는 법무 분야에서 일을 해오긴 했지만, 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의 경험과 학업적 성과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훈련 삼아서라도 소논문에 참여하는 것을 권유받았고 경험 많읔 동료 덕분에 어렵지 않게 시도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논문의 일부를 작성하는 일은 막막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다행히 학술지에서 제공한 파일이 있었고, 나는 그 안을 채워가야 했다. 공동저자인 친구는 내게 “교수님들도 다 이렇게 써” 라며, 먼저 리서치한 참조 논문의 내용들을 각 단락마다 미리 표시해 뒀고 그것을 자기 언어로 다시 쓸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하면 내용적인 체계도 유지돼, 생각의 흐름대로 주제에서 엇나가는 경우도 없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내편에서는 그러한 방식이 재미를 주지는 못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사람마다 논문을 작성하는 스타일이 다르다. 동료는 아이디어와 체계가 머릿속에 먼저 가려진 경우였다. 아직은 머릿속이 정리가 안 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글을 일단 내 생각을 갖고 써 내려가면서 참조 논문들을 리서치하는 방식에 가까운 사람였다.
두려움도 잠시, 막상 줄기를 정하고 쓸 말을 편하게 써 내려가보니 못할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글자 한 자, 문장 한 문단이 써지기 시작하니 왠지 모를 즐거움이 생겼다. 뭔가 할 말이 막 생기는 기분이었다. ‘아, 이렇게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게 할당받은 논문의 한 귀퉁이를 주말 동안 채워가기 시작했다. 이후 2주 정도가 지나자 학술지 편집자로부터 연락이 왔고 심사평을 보고 부족한 점들을 동료와 함께 각자 보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동저자이긴 하지만, 최초의 논문이 나왔다. A 대학의 학술지에 소논문이 나왔고 꽤 흥미로운 주제였기 때문에(무엇보다 다른 공동저자가 주제를 잘 골랐다) 이후에 인용도 꽤 됐던 것 같다.
어쨌거나 남한산성을 가본 것이라, 이제 큰 두려움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정말 얼마 되지 않아, 단독저자로 학술지 논문을 싣게 됐다. 나의 두려움의 싹을 잘라버리기 위해 바로 시작으로 연결해놓고 싶었다. 여기까지 일을 통해 앞으로의 머난 길을 떠날 것에 안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