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게 아니라 시작

대학원에나 가볼까

“논문을 또 써?”

“ 아 그래도 집에 박사 배출하면 좋잖아요?!”

종종 만나는 직장 동료분이 동생이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도 갔더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예전에도 그렇지만, 멀리는 신경정신과 이시형 박사님을 비롯해 오은영 박사님 등, 멋진 박사님들이 많으셔서 그런지, 집안에 박사 하나쯤 있으면 좋다는 뜻으로 들린다.


“ 논문을 또 써? 이제 끝난 거 아냐?”

이런 말들도 많이 하신다. 박사학위라는 것은 한 분야에서 이제 학자로서 진중하게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절차를 통과했다는 출입증(pass) 같은 것이라고 들었다. 특히 법학 분야에서는 변호사나 판, 검사 등 실무 그 분야에서 10년 이상의 근무 경험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박사학위가 없는 상태에서는 학술지와 같은 학계에서 검증된 게재지나 저널에 쉽사리 논문을 쓰거나 게재해주지는 않는다.


먼저 밝힌 대로 나의 경우는 정말 볼품없는 수준의 글이었지만, 석사 때부터 학술지에 논문을 실을 수 있게 된 것은 주변에 논문을 쓰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자 서게 된 어느 날, 논문을 쓰는 일은 내가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는 최소한의 증명이자 혼자만의 즐거움이 되었다.


따라서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도 논문을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다만 코스웍 때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수업이 계속되는 가운데 과제를 위한 소논문 수준의 발표를 준비하면서 별개로 개인적으로 소논문을 하나둘씩, 마치 알밤 까먹듯이 만들어가는 작업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한결 마음 편하게 쓰는 기분으로 임할 수 있었다.


학위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한참 뒤에 깨달았다. 나처럼 연구자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얻게 되는 선물인 경우가 있다. 한편으로 학위 자체로 명함에 넣을 ‘자격’의 의미로서 필요한 경우도 많이 보았다. 이 같은 학위, 졸업장으로 필요가 있는 분들의 상황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다만 나의 경우는 연구자로서 시작하다 보니 얻게 된 최소한의 신분 증명 같은 것이자, 방향키 같은 것이다. 그래서 박사학위를 갖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그저 공부를 했어야만 했다. 물론 지금도 분명한 것은 나의 연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늘 속으로만 하는 생각이지만, 시간이 따로 생긴다면, 기본기부터 다시 꼼꼼히 다져보고 싶다는 생각도 굴뚝같다. 내가 어렸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교과서와 판례집에 밑줄을 쳐 가며 정독했던 그때를 종종 생각한다.

@ 아침의 스타벅스는 글쟁이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아무튼, 어쨌든, 쓰자”

“자네였어?”

석사 과정에서는 지도 교수님과의 상의 없이 논문을 쓰는 것이 어쩌면 당돌해 보일 수 있고, 스스로의 실력에도 부끄러웠기 때문에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고 있는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번째 논문이자, 단독 저자로 이름을 올린 두 번째 논문이었던 것 같다. “ 개인정보자기결정권?!, 그게 자네였어?”, 모처럼 지도교수님을 찾아갔던 날 나는 수줍게도 라이팅을 혼자 하게 되었다는 말을 꺼냈고, 얼마 전 게재된 논문의 심사위원이 지도교수님인 것을 알게 되었다.

1638528483772.jpg @ 박사 후 일상

교수님 역시도 처음부터 내 논문이 실린 학술지의 정기적인 심사를 맡고 계시지는 않았고, 모 교수님이 당신의 일을 부탁하신 것이라고 하셨다. 글을 보고, 아무래도 판사나 교수 글은 아니고, 실무 쪽에 있는 사람일 것 같아 내가 생각났지만, 석사 1기를 겨우 마친 내가 학술지에 논문을 낼 것은 아니어서 그럴 리가 없지!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나 역시도 당시 논문 심사 평가서를 보고 왜인지 지도교수님이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아직 교수님의 수업을 들어가기도 전인데, 참으로 신기했다. 누군가가 들으면 에이~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내가 공부의 길로 들어선 것에 대해서 뭔가 운명처럼, 신이 내게 내어 준 작지만 확실한 선물로 느꼈던 계기들이 몇 번 있었다.

(물론 공부가 재밌다는 둥, 이런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따분할지 과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대학원을 졸업한 지금에서는 직장인이라 특별히 방학이랄 게 없지만, 혼자서는 마음속으로 학기와 방학 기간을 나눠서 움직인다. 하지만 무리하지는 않는다. 학술지 논문은 한 학기에 한 편이면 충분하다. 그 이상 쓸 재간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라서 편 수 늘리기에는 관심도 없다. 얼마 전에 로스쿨 교수가 된 친구가 일러준 것은 이런 나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것이긴 하지만, 역시 나는 별수 없는 답답이 과이다. 비즈니스 세상에 있지만, 그럼에도 이상적인 무언가를 꿈꾸는 답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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