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이번 역은 환승역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이 불공평하다는데

신은 인간에게 모두 주었다고 하니

뭐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내게 없는 것을 불평하지는 않았다.

부자나 권세 있는 부모라든지

더 뛰어난 능력이라든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사춘기에 접어드자마자 멈춰버린 키에 대해서는 불평했지만, 그 정도 불만은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대체로 딱히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불평하지는 않은 편이다.

그냥 뭐 주어진 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하면서 사회시스템 내에서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흔들지 않은 흙탕물 같은 마음밭일지 모르겠다. 누가 "좀 더 해보지?"라고 했다간, 당장에 "당신이나 더 하시오!"라고 할 것이다. 누군가 마음통을 흔들면 언제라도 밑바닥에 깔린 부유물이 일어날 기세니까.


인생에서 부족함을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신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고 한다. 이미 받은 것을 알아보는 일은 나의 몫이라니!


그럼, 일이 안 풀고 헛헛할 때에는 마음만 고쳐먹으면 될것인가?

마음을 돌이키는 것은 각만큼 쉽지않으며 나혼자 애쓴다고 모두가 협조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 변화가 필요할 때를 위한 세 가지 옵션이 있다.


첫째, 지금과는 다른 곳에 시간을 써본다.

시간투자의 결과는 생각만큼이나 정직하다. 특히 그것이 뭔가를 배우거나 익히거나 단력시키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공부, 운동, 관계 등등


둘째, 사는 곳, 일과를 보내는 곳을 달리해본다.

교통의 요지에 사느냐, 자연가까이 사느냐에 따라 효율성이 높아지거나 마음의 여유가 달라지기도 한다. 직장이나 교회에 가까운 곳에 사느냐에 따라서 각각의 곳에서의 나의 역할과 보람이 달라진다.


셋째, 만나는 사람들을 달리해본다.

요새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면 학원들이 몰린 대치동에 가는게 부모들의 상식이다. 대치동이 아니어도 학군에 따라 집값이 오르기도 한다니, 공부잘하려면 공부잘하는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는 것이다. 내가 즐기기 원하거나 잘하고 싶거나 가까워지고 싶거나, 끼고 싶은 그룹의 무리와 시간을 더 보내면 인생은 그곳에서 부터 시작된다.

인간이 존엄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두터운 믿음의 뿌리를 보자. 오래전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자기를 돌아보고 더 나은 존재가 되려는 철학적인 자기 반성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오늘날 딱히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근대에도 사람들은 인간의 고유한 합리적인 이성에 깃대어 인간, 그 격이 다른 훌륭함, 즉 '인격'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인간은 존엄하고 개인으로서 우리 각자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다. 세상에 하나 뿐인 나를 누가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가? 결국 자기 자신, 혼자 뿐일수도 있는데, 때문에 나의 인생을 의미있게 보내는 것은 각자의 책임이 되는 것 같다.

삶은 단순한데, 왠일인지 세상은 단순해보이지 않는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다르다는데 어떻게 마음을 먹는지, 그 방법을 알고 싶은 사람들도 더러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 어울리는 인생을 경험하기 위해서 내가 나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좋은 친구도 찾아주고, 건강한 먹거리를 준다면 어떨까?


나는 계속해서 나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들을 주고 싶다.

일기와 같은 이 글에서 대학원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곳인지는 많이 담지는 못했다.

하지만, 배우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단순히 학위를 받기 위해서 대학원에 진학하기보다는 더 많이 생각하고 읽고 교류하면서 대학원에 몸담는 시간들을 누렸으면 좋겠다.

나는 어쩌면 촌스러운 사람이다. 결과만 달랑 있으면 웬지 시시하고 별 흥미가 안생긴다. 손목시계와 같이 어떤 누군가의 소지품은 때로는 왠지모를 멋있음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주인에게 손목시계와 관련한 깨알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나에게는 나만의 멋진 명품 손목시계가 있다. 다른 사람이 같은 품명의 제품을 백화점에서 산단들, 그것은 내가 갖고 있는 시계와는 다른 그냥 시시한 그런것일 뿐이다.

keyword
이전 15화마흔에도 공부하는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