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도 공부하는 이유는

인생의 꽃을 피우는 시기를 묻지 않는다

인생의 꽃을 피우려나


지도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인생의 꽃은 40대라고.

내가 지켜보아온 교수님의 40대는 '인생의 꽃'이 맞으셨습니다.

그런데 교수님, 어쩐지 탈탈 털리는 기분입니다?


나도 모르게 어쩌다가 인생의 고속도로에 나와버린 느낌이다.

웬일인지 이제는 좋은 곳에 가도, 따라간 사람들은 편하고 즐겁다고 하는데,

내 머릿속엔 알고리즘이 열일하고 있다.

뭐랄까. 자체적인 워케이션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조금씩, 나를 격려했던 사건들이나 연구자로 격려받는 일들에도 차츰 둔감해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던 풍경의 감흥도 그때만큼 진하지 않다.

그래도 확실한 점은, 내가 다니는 직장의 명찰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를 대변하지 않고,

나의 정체성에 큰 요소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문제는 있다. 계속해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보니, 다시금 깊은 연구가 되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 느껴질 때면 답답함을 느낀다. 올해는 특히 이런 감정이 자주 든다.

겸손하지 않다거나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실력이 미천하여 그럴 상황에 있지도 않다. 연구하는 것과 별도로 생업이 따로 있다는 점은 절대적인 시간과 심리적 에너지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나의 시간적, 정신적 에너지는 여전히 한정적이다. 마음속으로는 "더 성장해야 하는데..." 하면서 변화가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가는데 나는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지, 시시때때로 단지 그 점이 아쉬운 것이다.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생업과 본업을 각각 두는 것은 충분히 피곤한 일이다. 나이는 숫자가 불과하다지만, 아무래도 생업이 있는 40대는 체력을 좀 아껴야겠다.


나의 철없는 해맑은 웃음은

아무래도 당분간은 지구 뒤편으로 가야만 가능할 것 같다.


학위를 마치고 나서는 진짜 셀프 매니저가 되어야 한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없지만, 스스로에게 부여된 학자로서의 배움을 계속하고 연구를 해나가야 한다. 과거에 논문을 썼다고 해서 그것으로 계속 우려먹을 수는 없다. 나는 지금의 시대에 필요한 연구를 시도해야 하고, 그것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

누가 시키거나 재촉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볼 때 아직 열정은 있지만, 욕심은 많지 않은 사람이다. 가까이서 나를 보는 사람들은 아마 알 것이다. 대강 뚝딱! 할 뿐이지 모든 것을 챙기지는 못한다.


대학원에 다녔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여전히 한 해를 방학과 학기로 나누어 생각한다.

그리고 각 텀에 논문을 준비한다. 사실 얼마 전까지도 금요일 밤에

글을 쓰면서 불금이 되는 것과 주말 오전과 일요일 저녁에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만, 점점 숨이 가쁘게 느껴지는 것은, 나는 젊은 체력을 잃어가고

기술은 너무 빠르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진다.

다행인 점은 결국 글이 있어 생각을 정리해 주고

바쁜 일정에 주어 담았던 일정들에 책갈피가 돼주어

돌이켜 느끼고 돌이켜 감사할 수 있는 것 같다.


성장 중독 v. 문자 중독


또 이런 생각도 든다. 수많은 정보들에 둘러싸인 현대인이라면 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특히 무언가에 빠져서 골똘해지다가 내려야 할 정차역을 지나치기 일쑤다.

인간에게 문자란 무엇일까. 아니, 나에게 문자란 무엇일까?

가끔은 진지하게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는 문자에 중독된 게 아닐까?

아니면 생각에 중독된 게 아닐까?

이제는 그 선후를 모르겠다.

그래도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은 마땅히 글을 써야 한다고 고개를 끄덕여본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작동했고, 이제 기계의 권리를 진심으로 논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어쨌거나 인공지능이 한 시대의 문명으로서 진화하는 이 순간에

살아있는 주체로서의 인간이어서 감사하다.

자,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으니 힘내서 공부하자.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들과 좋아하는 공부! 취향에 가까운 인테리어
해안뷰마저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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