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에서 선생으로

대학원에나 가볼까

박사, 진행중인 자격


'박사님!'

이제는 친숙하지만, 나는 이 호칭 마음에 든다. 어릴적 미국판 영화에 나오는 박사님들는 꼭, '닥터 00 입니다"라고 한다. 직업도 아닌 정체성 같은 것일까?

박사라는 호칭은, 나의 사회적 위치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동일하다.

승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바래지거나 나이에 따라 안 얼울리고 어울리고 하지 않는다. 또한 나를 있어 보이게 하는 감투나 수사도 아니다. 도리어 잘 배우고, 연구하고, 그것을 세상에 풀어놓아야 할 책임이 있는 연구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공부하지 않고 연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박사라는 표현이 참 어울리지 않는다. 이 바랜 박사는 힘이 없다.


누군가는 박사라는 타이틀을 위해 대학원에 가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차곡차곡 모아가던 논문들과 발표, 밤 깊은 2호선에서 몸을 가누며 귀가했던 날들, 그리고 호된 학위 심사 과정을 거치고 나서 덤덤히 받은 메달 같은 것!

혹은

"당신도 이제 우리와 함께 해요"라는, 교수님들과 학자들이 주는 '집단지성'의 공론장의 출입증이라고 들었다.

여의도의 마천루 중 하나가 내 직장였으면! 하다가 사원증을 목에 건 날의 뿌듯함과는 달리,

박사 학위는 그 자격에 합당하게 내가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는지 살펴보는 이정표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대학원 공부를 하면 자기 만족이나 학위 콜렉터이지 않냐고?

그렇지 않았다. 대학원을 입학할 때 내게는 '기술시대 인간 결정'이라는 명확한 주제가 있었지만, 무엇이 될지에 관한 직업적 목표는 없었다. 그냥 공부 자체가 목표였다. 그러나 공부는 나의 정체성에 활로를 열어주었고 쉽게 말하면, 특정 분야에서 전문가로서의 대우를 받고, 그만큼 더 노력하게 된다. 글을 쓰면 보상을 받고, 나의 영역과 지경을 넓히게 된다. 학술지에 논문을 쓰면, 평가도 받지만 국가연구자 번호를 받게 되고 관리 된다.

학교에서는 교수님 호칭도 생기고, 수업을 하거나 공식적인 곳에서 초청을 받아 발표를 하고, 패널로 참석할 수도 있고, 정부가 개최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 생각"을 발언할 기회를 얻는다. 나의 자문을 원하는 기관과 사람들도 생긴다.


자신의 과업에 몰입하는 사람들은 학위가 주는 감투, 직함을 얻기 위한 방법을 찾지 않는다.

그저 자기가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수집되는 스탬프를 얻곤 한다.

반대로 직함이나 감투, 출신학교를 끝없이 갈망하고 세탁하는 사람들은 늘 자기가 선망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헐뜯기 바쁘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과 같은 패스를 갖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것도 매우 짧은 시간에! 박사라는 것을 책임이나 성실하고 무관한 것으로 여긴다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커리어나 뭐 어떤 배경에서든지 학위가 필요해서 대학원에 오는 분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경우와는 구별됐으면 좋겠다.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으로


어느덧 시간이 지나 대학에서 학생들을 마주할 기회가 생기고, 그 시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연구는 혼자해도 그만이지만, - 물론 선행 연구자들의 수고에 기대어 하는 것이지만 작업 자체는 혼자하게 된다- 가르치는 일은 대상이 있다.

누구보다 대학 입학을 준비하고, 대학에와서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 대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원래부터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은 내게 특별히 보통일이 아닌게 맞다.

대학의 수업은 보통 3시간 이며, 일주일에 두번 정도 1시간 30분으로 나눠서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3시간 스트레이트로 하는 강의를 주로 한다.

어쩌다 수업시간에 나를 쳐다보고 있다 잠이 드는 학생도 있었다. 오후 시간 식사후 춘곤증도 있겠지만, 그때 즈음 " 아 내가 영혼의 강의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고, 내 강의의 목표와 질을 점검한다.

단순한 지식은 어디든 있는 세상이다. 아이들이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강의를 해야겠다고 나 역시 정신을 차려본다.


배우려하면 선생은 어디에든 있다


연구소가 아닌 직장에서도 내게 깍듯하게 박사라는 호칭을 불러주시는 분들이 있다.

나는 안다. 내가 어떤 고수이거나, 잘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분들이 나에게 진심을 담아서 인격적인 대화를 청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분들에게 오늘 하나 배웠다.

인생의 오랜 지혜와 노하우와 경험을! 그러니 그들도 내게는 인생사 선배요. 박사님들이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바퀴 한쪽이 진흙탕에 빠졌을 때 혼자서도 지혜롭게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그와 같은 지혜로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또한 본인도 충분히 지식인이시면서, 상대방을 깍듯이 예우해 주시고 존중해 주시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께는 겸손의 태도를 마음에 새겨본다.

한 발을 떼어야 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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