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와 우리 집 대표는 한참을 이야기했다. 한국의 펜션에 체크인을 할 때를 생각해 보면 1. 키를 전달한다.(물론 한국은 현관 비밀번호 정도일 수도) 2.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듣는다.로 끝날 것 같은데, 캐너디언 호스트는 대체 무슨 전달할 게 더 있을까. 당장 볼맨소리가 나올 것 같았지만, '하긴 집이 크고 프라이빗 비치도 있으니 알려줄 게 많을 거야' 하면서 이해 모드로 전환한다. 그럼에도 잘하면 30분을 채울 것 같은 기세로 이어지자 차 안에 남은 우리는 두 사람의 대화가 지금까지 끝나지 않는 것을 신기해했다. "그들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길래?' 그렇다고 나가서 그 흐름을 끊기에도 역부족인 게 나는 뒷좌석에 큰(?) 개와 타고 있다. 문을 열자마자 포틀랜드십독과 함께 바닥으로 굴러 떨어질 정도로 조바심이 난다.
사실, 동생네 강아지는 겁쟁이라 몸집이 작지 않은데도 지레 겁을 먹곤 낯선 개나 강아지를 발견하면 곧잘 짖는다. 서울 태생인 녀석이 토론토에 와서도 여전히 용맹 없음에 아쉬워,"어서 너도 점잖은 중견의 위엄을 보여봐!'며 말을 건네지만 돌아오는 것은 꼬리짓! 일 뿐이다.
@이 집 고양이는 개냥이인지 처음 만난 방문객 앞에서도 한바탕 애교를 피운다.
사실 이 녀석도 참 안쓰러운 점이 많다. 오른쪽 다리가 썩 신통치 않고, 장모종이라 그만큼 멋지지만 같이 놀다간 온통 털로 뒤덮일 수 있어 여간해선 맘껏 안아 줄 수가 없다. 어쨌든 강아지 포도와 사이좋게 4시간을 보내면서도착한 토버모리의 숙소에는 생각지 않은 호스트 리스크를 마주했고, 하차 시각이 대폭 지체될 판이다. 동생은 수다를 좋아하는 캐너디언들과 인사를 했다가는 다시 대화가 원점으로 가 다시 시작될 것이라며 나서기를 마다한다. 이런!
포드차가 세워진 영화 속에 나올법한 집
생각보다 오랜 뒤에야 우리 모두 자유를 찾게 됐는데, 그녀는 얼마 전 남편과 사별 후 이 큰 집을 이렇게 여행자들에게 내어주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큰 창고 옆의 차고와 한쪽 뜰에는 남편이 탔던 차가 그대로 주차돼 있어 왠지모를 쓸쓸함이 느껴진다. "이렇게 크고 멋진 집을 어느 날 남편 없이 혼자서 감당하는 기분은 어떨까?" 여러 가지로 어려울 것 같았다. 청소도 관리도, 남편과의 지난 시간들도 말이다. 아마도 이 여행을 혼자 떠나온 나였기에 더 그녀의 과거와 지금이 담긴 이 큰 집이 상상이 됐다.어쨌거나 그녀는 집이 너무 커서 혼자서 힘들다며 2층의 발코니는 아예 청소를 포기했다고 했고 그 덕분에 나는 머무는 동안 빗자루를 들고 거미줄 제거에 나섰다.첨엔 어설펐는데 하다 보니, 나도 더 이상 삼식이는 아닌 것도 같다.
@ 웰컴, 토버모리의 코티지야!
숙소의 앞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드넓은 자갈밭과 호수가 펼쳐진다. 토론토에 와서 여러 번 '호수'를 마주했는데, 그때마다 그것들은 "바다"를 방불케 했다. 내가 알고 있는 호수의 개념과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실제 한국의 웬만한 바닷가의 해변보다는 넓어 보이는데 그것이 오대호의 위엄인가! 이런 생각들로부터 타협해 그냥 "beach"로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토버모리의 숙소의 비치는, 정말이지 상상 속의 호수였다. 딱 미국 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그 호수! 나는 이곳에서 수영을 하게 될 것인가? 바로 눈앞에 놓인 야생의 천국에서의 수영을 잠시 상상해 보게 된다. 그러고 나서 지금의 나(ego)는 어떤지, 정말 괜찮은지 시간의 테이프를 감아본다.
작은 세상의 통제자(Controller), 그저 자연을 대하다.
저 지구 반대쪽의 나는, 문젯거리가 있는 경우 내 영역에서 더 할 것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해결해야 하는 당위가 있다면, 그것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 대체로 나에게서 '잊어버려' 할 일은,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일이나 절대로 못 만날 사람들과 있는 사고 같은 일뿐이어서, 누군가 "잊고 주말을 즐겨!" 하면 와닿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때 즘 돼서야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전쟁 같은 일들을 외면할 수 있었다. 아니 외면해야만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눈앞에 두고 나는 무엇을 고민하는가?
@ 숙소의 프라이빗 해변
호수 안쪽으로 한참을 가도 바닥의 자갈과 돌들이 물속을 따라 보인다. 둘째 날 데크에는 뱀이 나타났다. '그렇지 한 번은 마주할 줄 알았다.' 뱀은 마치 딱 그 자리가 자기 자리였단 듯이 햇볕을 즐기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쫓아내야 할 것만 같았다. 역시 용감한 우리 집 대표가 나뭇가지를 구해와 툭툭 몇 번 두드리니 뱀 녀석은 미적대다가 자리를 피해 주었다. 며칠이 지나 혼자서 데크 끝에서 놀고 있는데 다시 입구에서 몸을 말리는 녀석을 또 마주해 난처했다. 집안에서 바쁠 대표를 부르기도 애매하다. 하는 수없이 물에 뛰어들어 데크를 돌아 나왔다. (뱀은,, 물 안에서 더 빠를 것 같았지만, 설마 나를 공격하진 않겠지) 어느 날에는 겁쟁이인 나는 조카의 운전으로 카약을 타고 저 멀리 무인도까지도 욕심을 내볼까 하는 허세도 부린다.
구명조끼씩이나 껴입고 있는데도, "너무 멀지 않은가? 하물며 호수라는데 파도도 치네!" 하면서 이토록 아름다운, 외딴곳의 여행지는 신기하고 낯설었다. 캐나다의 주택들이 바로 외부와 맞닿아 있긴 하지만, 이곳은 더더욱 그랬다. '음,, 울타리가 없는데?', '비가 많이 오네. 괜찮겠지?' 불안한 생각들이 이따금씩 솟구치기도 했지만, 안 될 일이다.
지금 토론토에서 한참 북쪽인 이곳은 내 인생의 딱 한 번일지도 모른다. 나는 로키의 lake louise를 여태 20간 다시 찾지를 못했으니 말이다. 결심했다.
저 비치 건너의 사람들처럼 야생에서의 여행을 오롯이 즐거워하기로 하자. 고!
이렇게 또 하루, 이틀이 지나가고 있지만 시간의 지남이 마냥 아쉽지만은 않다.지금의 순간이 추억이 되겠지만, 나는 사랑하는 이들과 현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와 남겨진 이 이쁜 코티지(cottage)에 시간의 흔적을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