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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아름다움을 더해서

11월 일상

@ 플라자호텔 앞 시청                        

오후 5시, 느지막한 오후다.  회장을 벗어나 잠시 나온 발걸음에 눈앞에 펼쳐진 시청역 앞 광장을 마주했다. 

금빛 노을로 물들인 빌딩과 노릇해진 도심의 단풍, 시청 앞 빈백 위 쉬어가는 시민들 감탄한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것은 도시에서도 동일하다.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들녘이 아니라, 황금이 돼가는 도시의 모습 같기도 하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같은 것을 주는데, 사람들은 저마다의 상황이 달라서 동일하게 받지는 못하나 보다.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다 보면, 서로의 보고 싶지 않은 모습들도 보게 되고, 애써 외면하고 한편으로는 나 역시 부족한 모습이어서 어디서든 관계란 쉽지가 않다.

특히 생계전선에서의 이해에 따른 관계란, 더 그렇지 않을까.


반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칼날을 갈고닦은 연구자를 만나게 되는 날에는,  그분들의 만들어온 내심의 향기와 숙련된 칼날에 감탄하면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


오랜만에 도곡동에 프랑스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게 되니, 옛 생각이 난다.

풍성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가벼운 맘으로 학회로 움직이게 되었다.

열띤 토론을 이끄는 분도 계시고, 청산유수와 같은 말솜씨로 발표를 이끌어 가지만, 이렇다 할  인상을 못 남기는 경우도 있다. 메인 세션을 마치고 몇 가지 인사이트를 얻은 것으로 만족일찍 나왔다. 조용히 덕수궁을 걸으리라!

언젠가, 한 콘퍼런스에서 나를 사로잡은 글귀가 있다. 밤에는 왜 비판이 됐을까? 출처를 결국 찾지 못했지만, 이 글귀는 내 마음을 강렬히 터치하고 말았고, 그 이후에도 계속 이러한 삶을 원했다.


하루키도, 허밍웨이도 정작 중요한 글쓰기는 아침 이른 시간을 통해서 마치고, 오후에는 운동을 했다. 글 쓰는 작업은, 이렇게 명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후 3시에 타이핑을 한다거나 새로운 생각을 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제발 아침에는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

차라리, 오후 3시 이후에는 발표가 나으려나?

그마저도 왠지 피로감이 오는 것은, 역시 나는 체력이 좋지 않아서 일수도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일을 해내고 있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정말 체력이 대단하다"라고 하는 전혀 나와 매칭이 안 되는 이야기도 듣곤 한다. - 우쭐-


옆에 박사님은, 늘 지각을 잘하는 것으로 더러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옆에서 보니, 평소의 내 생각이 맞았다. 그는, 일단 성실하고, 완벽주의가 있고, 기준이 높다. 그는 어떤 글도 허투루 쓰지 않아 보인다.


태도의 창피함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어떤 부류에서나 동일하다. 그래서인지 더 똑똑하고 부단히 노력하는 이런 실력자들이 도리어 더 애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잠도 못 자고 많은 일들을 해내나 보다.


나는 논문의 몸통의 초안이 아니고서야 마흔을 넘긴 이후엔 절대 11시 넘어서는 작업하지 않는다. 더러 실수를 직감하지만, 그냥 그렇게 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내 몸에 작은 종기라도 있다면, 금세 온 기운을 상실하고, 육신의 덧없음을 탓할 정도로, 힘들어지는 사람이라서, 이렇게라도 쉬어야 하기 때문에!

                                 @  덕수궁 돌담길                                                

방식은 다르지만, 나 역시 워커홀릭이 맞다.

언젠가는, 편안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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