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삶의 방식을 바꿔놓은 뒤
그렇다, 일터가 가정으로 옮겨오고 온라인 매체를 활용한 소통과 관계유지가 늘어났다.
얼굴을 보고 해야만 했던 당연시했던 여러 일들은 이제 여러 소통의 방법중 하나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코로나는 인간의 잘못된 이기심에 의한 결과더라도 그로 인한 변화는 코로나 이전에 예상된 미래 사회의 특징이다.
코로나는 직접적으로 인간의 몸에 침투해 고통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전염병이었지만, 유달리 극심했던 기후 재앙도 두렵기는 매 마찬가지이다.
좋든 싫든 인간은 지구에서 적응해야 되는 고로, 그 특유한 적응 기재로 이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을 고안한다. 위험을 감지한 공동체는 정책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미국의 국민은 트럼프 대신 바이든을 선출했고, 바이든이 친환경과 국민안전에 관한 정책을 선언하게 되면서 미국내 산업과 대외정책도 판도가 바뀔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곡된 자본주의, 시스템의 변화를 부른다
코로나시대 한국에서는 먹고사는 일이 가장 큰 이슈다.
40대가 경제의 허리라니, 어색하지만내가 마주한 현실이 제법 무거워 보인다.
코로나로 인해 힘들어진 자영업자와 달리 대기업의 선전이 오히려 돋보인다. 핑크빛 주가 전망이 이러한 현상을 반영했다. 현 정부의 주택정책에 실망한 사람들은 글로벌 유동성에 따라서 주식시장에 너도나도 참여하게 됐다.
정책과 임금 인상률이 그들의 최소한의 주거 안정성을 보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생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시장의 빵부스러기라도 먹어야겠다는 심리이다.
변화와 위기에서 자본의 흐름은 자본을 가진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나눠버린다. 얼마전에는 지난해 사업성과를 낸 대기업들의 성과 잔치에 대비된 소외된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문제시 됐다.
일각에서는 공평의 가치가 중요한 밀레니얼 세대가 예전과 달리 못참고 권리를 주장한다고 하지만, 살펴 보기에 그것은 최소한의 형평성을 요구하는 저항이다.
나또한 2006년 직장생활을 초기에 지급받은 몇 백의 성과급이 기억난다. 지금이는 적은 금액이었지만, 전 직원에게 동일하게 이익을 공유하는 느낌이어서 그런지 오히려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임원급들이 받는 성과급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대에서 받는 소외감과 허탈감은 유리천장에서 좌죌됐기 때문이다.
유럽의 근대화 시기에서도 노동자 계층의 동요는 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이는 산업화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결국 개인이 환경적 경제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한 정치적인 장치라는 점에서, 지금의 자본주의 왜곡 현상은 문제가 적지 않아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기존의 시스템의 붕괴 내지는 전환을 어떻게 불러올지 궁금하다.
미래의 안식에 대한 개인의 준비
과학기술의 역동성, 그리고 환경변화가 주는 경고와 그에 대응한 기술적 혁신과 정책의 변화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은 어떠한 선택권을 갖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코로나 19는 우리의 삶을 바꿔놓았고, 이제 과거로 돌아갈 정도의 관성도 약해지고 있다. 백신이 상용화되고 안정화되면 질병에 대응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돌아갈 과거의 환경이 이미 많이 변했고 적응되기 시작했단 뜻이다. 아울러 우리의 일터와 직장의 의미도 예전과 같지 않고 이미 우리의 시각이 바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코로나와 같은 촉매제는 미래사회로 가는 변화를 매우 빠른 속도로 가속화시켜갈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개인은 작은 존재인 것 같지 않지만,
우리 자신에게 개인은 세상이다.
그리고 세상은 개인들이 모여 이뤄진 공동체일 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은 각자의 인생에 대한 선택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건전한 가치에 추구하며 각자의 일로서 헌신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일은 지금보다 가치적인 형태를 띨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선순환이 공동체에서 개인들의 건강한 모습이자, 개인의 행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현실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그와 동시에 기존의 시스템에서 한 발 나와 어떻게 세상이 변해가고 있는지, 기존의 직장과 기존의 가정과 그곳에서 나의 역할이 유효할 것인지에 대해서 냉철한 분석과 성찰에 따른 그 시기가 온 것은 아닐까. 세상의 변화에 순응하기보다 적응하고, 그 안에서 보다 확실한 결정들을 해가면서 내 삶을 지켜가는 것, 그것이 이 시대의 인간존엄일 것이다.
그 정도의 건강한 자존심으로 내일의 페달을 밟을 수 있을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