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배경은 결정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갈 지는 결정할 수 있다.
평소에 텔레비전을 안 보기 때문에 유명했던 드라마를 뒤늦게서야 여행 중에 보는 습관이 있다.
최근에는 호사스럽게도 집에서 넷플릭스를 이용해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를 정주행 하게 됐다.
극 중 동백이는 어릴 때 부모로부터 보육원에 버려져 한 번의 파양을 거쳐 20대 미혼모가 된다. 그는 아이의 친부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한 지방에 머무르고, '카멜리아'라는 술이 나오는 소위 '일반 휴게 음식점'을 운영하며 아이를 키운다.
이 드라마는 인간이 선택하지 못한 출생적 배경을 결정받은 동백이가 미혼모라는 사회적 배경을 결정하게 되면서 겪는 사람들의 시선과 소시오패스로부터 생명을 위협받게 되는 상황을 모티브로, 동백이 주위에 내 사람이 모이게 되면서 그들을 위해 스스로 강해지는 변모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혼전에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은 동백이가 선택한 일이지만, 이는 사회적으로는 어쨌거나 핸디캡이 되고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도 경제적으로 힘에 겨운 일이다. 동백이는 이러한 다소 불리한 인생의 결정을 하고, 늘 사람들에게 맞서지 않으면서 적당히 무시당한 채로 산다. 그는 왜 사람들이 자기르 불쌍하게 보느냐, 굴절된 렌즈로 보느냐, 하는 억울함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엄마에게 버려진 것은 자기 선택이 아니지만, 아이를 혼자 기르는 것은 자신이 선택한 돌밭길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선택과 삶에 동백이가 떳떳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팍팍해 보이는 동백이의 30대 인생 어느 날, 자기를 조건 없이 좋아해 주는 시골 청년과 뒤늦게 엄마라는 존재가 나타났다. 거기에 어릴 적 보육원에서 같이 자라 술집을 떠돌다 동백이네 가게로 들어온 친구까지 등장하면서, 그녀는 스스로 힘을 얻으면서 결국 그들을 위해 모든 편견과 위협에 스스로 맞설만큼 용감해진다.
세상은 어느 정도는 불공평하고
어느 정도는 공평하다.
모든 것 중에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여지는 있다.
예를 들어 더 행복하기와 덜 행복하기
더 불행하기와 덜 불행하기 정도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좋은 조건에서 더 행복해지는 일과 덜 행복해지는 차이는 당장에 할 일과 염려에 밀려서
지금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누리지 못할 때이다.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온 다고 해서 그 행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행복은 우리의 인생에서 잠깐 드는 맑은 날 햇볕과 같은 것, 봄날 잠깐 피는 벚꽃과 같은 것이다.
@ 벚꽃 눈길에 동백이
비 오는 날은 꽃잎과 나뭇잎을 더 진하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