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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엘린 Aug 27. 2024

배민과 순댓국

-결론은 책을 읽자


배민에서 뿌린 할인쿠폰을 외면하지 못하고 지금 당장 살 필요는 없으나 쟁여두면 두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또' 주문하고 말았다. 처음 보았지만 할인을 해서 가격이 좋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과 요리하기 귀찮을 때 간단히 끓여 먹을 수 있는 순댓국, 국거리용 양지와 김밥 만들 때 사용할(언제 만들진 모른다) 맛살과 어묵, 할인쿠폰을 쓰려니 아직도 모자라 한참을 뒤져 45% 할인율을 자랑하는 통등심 수제 돈가스까지 담았다. 불과 얼마 전에 사놓은 돈가스가 냉동실에 누워계신데... 하지만 냉동실에 쟁여두면 언제고 먹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합리화를 하며 잠시의 망설임(예의상) 끝에 결제 버튼을 꾸욱 눌러주었다.

몇천 원을 할인받으려고 몇만 원을 쓴다. 



코로나 이후로 비대면으로 배송받을 수 있어서 좋다. 그전에도 비대면 배송이 일반적이었던가? 생각해 보지만 기억이 안 난다.

배송 물품들이 담겨 오는 배민 비닐봉지는 너무 얇지 않고 크기가 넉넉해서 분리수거용 비닐봉지로 재활용해 쓰고 싶은데 항상 너무 단단히 여며져 있어 한참을 씨름하다 결국엔 가위로 잘라내버리게 된다.(나만 이런 건지?) 

냉장 고기를 사서 바로 냉동실에 다 얼려버리긴 아까운데.. 오래간만에 미역국을 끓여서 밥 말아 먹어야지! 

잘 익은 김치를 얹어서 후후 불면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정리를 하다 보니 순댓국이 하나가 더 들어있었다. 내가 하나를 더 주문했던가? 영수증을 다시 보고 휴대폰 앱에서도 주문내역을 확인해 봤지만 분명히 내가 주문한 것이 아니었다. 



과거에도 가끔 이렇게 잘못 배송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때면 고객센터에 연락을 해서 오배송된 물품을 가져가도록 처리해왔었는데, 재밌는 건 오배송의 경우 주문한 물품이 누락된 경우보다 주문하지 않은 물품이 딸려 온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는 것이다.

귀찮다는 생각을 하며 고객센터로 전화를 하려는데 언젠가 남편이 무심하게 툭 던진 말이 문득 떠올라 나를 고민에 빠지게 했다. 내가 오배송 건을 접수하면 그 물건을 오포장한 담당자나 매장이나 누가 되었든 부주의한 처리를 한 관계자에게 불이익이 생길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라고... 그런 생각은 못 해봤는데... 남편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 갑자기 찜찜해졌다.

 

그렇다고 자기들이 잘못 보낸 거니깐 나도 몰라 하면서 그냥 먹을 수도 없다.

내가 산 것도 아닌 순댓국을 그냥 먹는다면... 도둑질을 한 기분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다가 누군가 나로 인해 곤란함을 겪게 될까 봐 전화를 하는 것도 망설여졌다.

사소하지만 그 순간에는 진퇴양난의 기분이 되어 나는 고뇌에 빠져버렸다.








결국 평소처럼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서 회수처리를 했던 것 같다. 이 경우에 현명한 대처는 어떤 것이었을까? 가치와 이해의 차이들을 잘 조율하면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은 중요한데 어렵다. 

갑자기 스마트폰을 손에 쥐게 된 이후 알레르기라도 생겨버린 듯 멀리하고 있는 책들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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