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팠을 때 동화를 써봤어
사계절 내내 무지개가 떠 있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작은 마을의 이름은 무지개마을이었습니다.
무지개는 늘 하늘에 나무에 지붕 위에 걸려있어서 이 마을 사람들에게 무지개는 전혀 신기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냥 우리가 매일 보는 해와 달처럼 그들과 함께 하고 있을 뿐이었지요.
무지개마을 사람들은 무지개처럼 각양각색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생긴 것도, 옷차림도, 성격도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알록달록한 무지개처럼 사람들도 알록달록 다양한 무지개 마을.
사계절 내내 무지개가 떠 있다는 것과 함께 무지개마을에는 다른 마을과는 다른 한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지개마을 사람들은 모자를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햇볕이 아무리 쨍하게 내리쬐도 무지개마을 사람들은 모자를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무지개마을 사람들은 햇살이 눈부실 때면 모자 대신에 예쁜 색깔의 선글라스로 멋을 내곤 했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모자를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요. 간혹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무지개마을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자를 쓰지 않기 때문에 모자를 쓴 사람을 우연히라도 마주칠 때면 사람들은 깜짝 놀라곤 했답니다.
하지만 무지개마을에서도 모자를 쓰는 것이 불법이거나 잘못인 것은 아니랍니다.
어쩌면 무지개 나라 사람들은 사계절 내내 무지개가 떠 있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모자를 쓰지 않는 버릇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무지개마을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어느 때에도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다고 하니 정말 아름다울 것 같지 않나요?
빵집과 옷 가게, 꽃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에서 아주 조금 떨어진 맑은 샘 옆에 조그맣지만 튼튼한 나무로 만든 집이 있었습니다. 그 나무집에는 한 소년이 살고 있었는데 그 소년은 특이하게도 모자를 좋아하여 자주 모자를 쓰고 다녔답니다.
소년이 언제부터 왜 모자를 좋아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냥 모자를 좋아하게 태어난 것은 아닐까요?
마을을 사이에 두고 소년의 집 반대편에는 초록색 지붕에 뾰족한 굴뚝이 있는 작은 집과 노란색 울타리에 작은 마당이 있는 집이 있었습니다.
초록색 지붕집에는 머리를 기른 소녀가 살고 있고 노란색 울타리 집에는 동그란 이마를 가진 소년이 살고 있
었는데 둘은 사이가 좋았답니다.
초록색 지붕집 소녀와 동그란 이마의 소년과 모자를 좋아하는 소년은 모두 마을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초록색 지붕집 소녀는 모자를 좋아하는 소년과도 친구였고 동그란 이마의 소년과도 친구였지만 동그란 이마의 소년은 모자를 쓴 소년이 너무 튄다고 생각하여 그 둘은 친하게 지내지 못하였습니다.
동그란 이마의 소년은 초록색 지붕집 소녀와 가까이에 살기 때문에 둘은 자주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가곤 했지만 모자를 좋아하는 소년은 초록색 지붕집 소녀와 가까이 살지 않기 때문에 자주 함께 놀 수 없어 속상했답니다.
초록색 지붕집 소녀는 모자를 좋아하는 소년의 모자를 좋아하여 언젠가 자기도 모자를 하나 갖고 싶다고 종종 말하곤 했지만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깜짝 놀랄까 봐 물고기를 잡으러 갈 때나 외출을 할 때에는 선글라스를 쓰곤 했습니다.
/
무지개마을에서는 일 년에 딱 한 번 해가 뜨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그날은 온 세상이 깜깜하여 왠지 무서웠고 일 년에 한 번뿐인 날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을 피우고 축제를 열어 함께 춤도 추고 맛있는 음식들도 나누어 먹으며 즐겁게 보내곤 했지요. 그러니까 일 년에 한 번 해가 뜨지 않는 그날은 무지개마을 사람들에게는 무서우면서도 몹시 신나는 특별한 기념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느덧 올해도 무지개마을의 축제가 돌아왔습니다.
어둠이 깔리자 사람들은 불을 피우고 성대하게 파티를 시작하였습니다. 모두들 들떠가고 깜깜한 하늘 아래 활활 타오르는 불빛이 세상을 밝혔습니다.
초록지붕 집 소녀도 축제에 가기 위해 동그란 이마의 소년과 손을 잡고 마을로 가는 길을 조심조심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 마을에서는 환하게 불빛이 아른거리고 있었지만 작은 오솔길은 주변이 모두 깜깜하여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답니다. 간혹 들짐승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풀벌레 소리가 엄청 크게 느껴지는 깜깜한 오솔길을 내려가자니 맞잡은 소년소녀의 손에 땀이 나고 겁에 질린 두 꼬마의 심장소리가 쿵쾅쿵쾅 빨라졌습니다.
마을의 불빛이 조금씩 커져오며 긴장이 풀리려는 찰나, 갑자기 검은 하늘을 가르며 번개가 내리쳤습니다.
순간 온 세상이 하얗게 밝아졌고 초록색 지붕 집 소녀의 눈에 겁에 질린 동그란 이마 소년의 두 눈동자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깜깜해졌고 한 번 더 번개가 치며 세상이 밝아졌을 때 소녀의 눈앞에 있던 소년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놀란 소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고 주변을 두리번거려보았지만 세상은 다시 완전히 깜깜해진 채 소녀는 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답니다.
우르릉 쾅 우르릉 쾅 갑자기 빗방울이 거세게 쏟아지며 마을의 불빛도 꺼져버리자 소녀는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채 마을로도 집으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비를 맞으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때 소녀의 머리 위에 무언가가 씌워졌습니다.
덜덜 떨며 고개를 든 소녀의 눈에 건너편 나무집에 사는 모자를 쓴 소년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모자를 쓴 소년도 길을 잃고 겁에 질린 채 헤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소녀의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온 것이지요.
모자를 쓴 소년은 축제를 맞이하여 초록지붕 집의 소녀에게 모자를 선물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다 번개가 치고 빗방울이 거세어져 길을 잃고 헤매었던 것이었습니다.
초록지붕집 소녀와 모자를 쓴 소년은 무섭고 추웠지만 깜깜한 어둠 속에 이렇게 만나게 되어 몹시 반가웠고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이 너무 어둡고 비바람이 거세어 두 사람은 그렇게 비를 맞은 채 오들오들 떨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끔 휘리릭 주변에서 알 수 없는 인기척이 들릴 때면 들짐승이 아닐까 겁이 났지만 그럴 때면 소년과 소녀는 어깨를 맞대고 앉아 눈을 질끈 감고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인기척이 사라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덧 비가 그치고 저 멀리 마을 사람들이 다시 불을 피웠는지 아른아른 멀리서 빛이 피어올랐습니다. 초록지붕 집 소녀와 모자를 쓴 소년은 몸이 식고 지쳐버려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저 멀리에서 불빛이 보이자 기뻐하며 부둥켜안고 엉엉 울고 말았답니다.
/
모자를 쓴 소년이 초록지붕 집 소녀의 머리에 씌워준 모자에서는 아직도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이제 비는 그치고 다시금 축제는 시작되었습니다.
오래전 마음이 실연의 아픔 속에 있을 때 썼던 동화인데... 다시 읽어보니 백마 탄 왕자님을 그려놓았다.
지금 다시 쓴다면, 동화 속 소녀는 주저앉아 울고 있지 말고 씩씩하게 마을을 찾아가거나 잎이 무성한 나무를 찾아 비를 피하거나 큰 소리로 살려달라고 외칠 수 있다.
소녀의 연약하고 의존적인 모습이 나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걸 보면 나는 아직도 오롯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나를 알고 있고 나의 자립을 꿈꾸는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