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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엘린 Aug 27. 2024

이상한 완벽주의자

-긴장을 풀면 생기는 일


프리랜서라는 이름표도 없고 양육에 몸 바치고 있는 엄마도 아닌 나는 그저 모아둔 돈을 야금야금 까먹으며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을 규모 없이 꾸려가며 놀고먹으며 지내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거의 모든 부분에서 소비자로서만 살아가고 있는 나의 삶이 마냥 평온하고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직장에 매여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못하고 사는 줄 알았건만. 이렇게 많은 시간들이 내게 뭉치로 던져져 있는데도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그렇게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그 삶이란 것이 얼마나 편안하고 평온하며 자유롭냐는 말이다.라고 한다면, 그러니까. 그게 그렇게 보이는지는 모르겠으나 꼭 그렇지만은 않더란 말이다.라고 말해야겠다.


머릿속으로는 이것과 저것과 그것까지 다 해야지.라고 매일 다짐하건만, 나의 몸은 게으름에 구속되어 하루하루에 걸쳐 뒹굴고만 있다. 

나도 한때는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하루 만에 몇 가지씩 갑작스러운 상황들에 대처하며 수십 명의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서둘러 퇴근하지만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이제 다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정신없는 생활을 했었다. 몸은 바쁘고 생각은 미뤄둬야 하던 나날. 이젠 생각이 바쁘고 몸이 미루는 나날로 하루를 꿰어간다.




고작 몇 번이지만. 예전 직장의 팀장님으로부터 강의 의뢰가 들어올 때면 나는 사회생활에 대한 감을 잃지 않기 위해 혹은 거절하기 어려워서, 아니면 거절할 이유가 딱히 없어서 수락을 한다. 그리고 매우 고통스러워한다. 남들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 특히 다수의 사람 앞에 서는 입장이란 것이 나에겐 큰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피하고 싶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자.라고 오늘도 작은 도전을 했다.

잘 하고 싶다! 잘할 수 있을까? 욕심과 두려움. 

압박감을 느끼면 회피하는 성격인 건지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는다.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다.


하여 나는 아침에 샤워를 하며 마음을 달리 먹었다. 오늘의 최악의 상황은, 내가 강의를 죽 쑤어버리는 것이고 그것으로 참여자들에게는 시간 낭비를 선물하는 것이며 관계자들에게 굉장히 쪽팔린 것이자 이 물의로 말미암아 예전 직장의 팀장님은 이제 나에게 강의 의뢰를 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최악의 상황은 앞으로 내가 강의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 것이다. 체면이 깎이는 것과 남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것은 애석하고 죄송하지만. 어쨌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거나 나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어떤 사건까지는 일어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그토록 스트레스받아 하는 남들 앞에 설 일 역시 더 이상 없다는 말이고.

갑자기 멘솔향이 나는 샴푸로 머리를 감은 것처럼 내 마음이 시원해졌다. 


그럼 나는 이제 오늘의 강의를 어떻게 하고 싶은가? 참여자들의 마음들. 각자의 기대와 귀찮음과 무념무상들 사이를 편안히 거닐며 그들과 호흡하고 싶었다. 거닐며 호흡? 거참 글로 쓰자니 너무 거창해서 오그라든다. 이렇게 포장된 언어의 느낌만큼은 아니었지만. 이것으로 나는 흐르는 물에 나의 욕심과 두려움, 긴장과 스트레스가 사르르 녹아 사라지는 것을 상쾌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의 두 시간짜리 강의를 무사히 마쳤고 강의가 끝난 순간부터 한 시간가량은 세상에서 제일. 까지는 아니겠지만 굉장히 행복하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인으로 돌아와 이렇게 무언갈 쓴다. 이 마음이 계속 간다면. 아마 하루에도 두세 개씩 글을 쓰고 삼십분씩 운동도 하며 영어회화와 독서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러고 싶다만.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내 몸은 츄르륵 늘어지고 머릿속은 바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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