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로하엘린 Nov 22. 2024

주문하신 브런치가 완성되었습니다.

-같이 하면 우리는 브런치 세트



어쩌다 보니 11월도 이제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이제 겨울. 

이 계절들을 지내면서 나는 많은 경험들을 했고 그보다 많은 생각들 또 그보다 많은 감정들을 겪었으며 그 속에서 어떤 하루는 찰나 같아 아쉬웠지만 또 어떤 한 달은 하루보다 별 거 없이 지나버렸다. 

시간은 기억 속에서 왜곡된 길이와 너비와 깊이로 오르막이었다 내리막이었다 갖은 변덕을 부리며 흘러왔지만, 사실 그것은 나의 생각과 감정의 차원일 뿐 경험의 차원에서 보자면 시간은 지독하게 균일한 걸음걸이로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시간이 어쩌고 저쩌고... 뭐 그저 늦은 저녁을 먹고 멍 때리며 앉아 있자니 올해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이 떠올랐다는 말이다. 두서도 없고 순서도 없이 드문 드문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들이 어디서 왔나 궁금해져 캘린더에 들어가 보았다. 


1월. 새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의욕이 앞서 메타인지가 안된 계획들을 짠 다음 작심삼일을 반복했다.

2월. 설 연휴가 있었다. 

3월.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4월. 엄마의 칠순생신과 취미로 하는 연극동호회의 정기공연이 있었다. 

5월. 유튜브를 개설했다.

6월. 거제와 대구를 여행하고 와서 편집프로그램을 배운다고 학원에 등록했다. 

7월. 허리디스크 환자가 된 채로 엄마, 이모, 여동생과 강릉 여행을 했다.

8월. 브런치 작가가 됐다. 

9월. 추석 연휴와 태안과 군산 여행을 다녀왔고 브런치에 연재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10월. 올해 가장 힘든 일이 있었다.

11월. 우울과 무기력을 겪고 (이제 곧 12월이 된다.)


돌아보고 든 생각: 올해도 해외여행은 가지 못했구나. 아쉽도다. 내년에는 나도 꼭...



한참을 앓았던 감기는 겨우 나았지만 계속되는 컨디션 난조로 세상 게으름 중인데 오늘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늘어지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 데는 꽤 독한 마음이 필요했지만 오늘 꼭 해둬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옷정리. 오늘 꼭 해야 할 일이었다. 옷정리 따위가 왜 오늘 꼭 해야 할 일이냐 하면 며칠 전에 신청해 둔 물품 기부 수거일이 바로 내일이기 때문이었다. 내일은 내가 친정에 가야 했고 더군다나 수거 예정 시간이 오전 중이라고 해서 어디 더 미룰 길이 없었다. 이렇게 무기력과 미루기가 견고한 루틴이 돼버렸을 때 '꼭 해야 할 일'은 구세주가 되어주기도 한다. 


일 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을 기점으로 어김없이 하는 옷정리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기부할 물품들을 추려야 해서 더 복잡하고 어려웠다. 아 정확히 말하면 여기서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정리하는 행위가 아닌 갈등하는 내 마음을 뜻한다.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은 내 소유욕의 대상들이기에 사용여부와 상관없이 그것들엔 애정일 수도 집착일 수도 있는 내 마음들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줄무늬 세라 티셔츠와 검은색 면스커트는 내가 사랑하는 옷들이다. 검은색 면스커트는 다리가 긴 편인(자랑 아님 주의) 내가 입었을 때 발목까지 오는 롱롱한 스커트인데(발목이 두꺼워서 어중간한 길이보다 확실하게 길어줘야 한다) 잠옷만큼 편안해서 자꾸만 입게 된다. 그리고 줄무늬 세라 카라티셔츠는 뭐 말해 뭐 해... 그냥 내 살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


아무튼 지간에. 이렇게 자주 입고 쓰는 것들은 앞으로도 계속 입을 것이기 때문에 갈등할 것이 없지만......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고 초등학교 4-5학년 즈음부터 나는 여분의 물건을 쟁여두는 습관이 생겼다. 주로 수첩이나 샤프, 지우개 따위의 학용품들을 종류별로 색깔별로 사모았는데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한두 개뿐이고 나머지는 서랍 속에 고이 보관만 해두었다. 그러고 또 마음에 드는 다른 물건이 생기면 그것들을 다시 사모았고 그럼 나의 간택만을 기다리던 지난 물건들은 새 물건들에게 힘없이 좋은 자리를 내어 줘야 했는데, 이후로도 나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다른 물건들을 모으고 모으다 끝끝내 서랍 안이 포화상태가 되면 관심밖이 된 지난 물건들은 죄 없이 버림받아야 했다. 참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 슬픈 이야기는 이어지고 이어져서 지금의 나는 학용품보다 옷들을 사쟁이고 있다. 같은 옷을 여분으로 더 사두는 습관은 이제 두세 개씩 쟁이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옷이 마음에 들더라도 그것이 비싸면(왜 마음에 드는 것은 비싼 것들이 많은 것인지 아시는 분..?) 망설여진다. 비싼 것을 두세 개씩 쟁이려면 두세 배로 비용 부담도 커지기 때문이다. 쟁이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것 대신 마음에 덜 들어도 비용 부담이 덜 한 대안을 선택하는 무언가 이상하고 바보 같은 삶을 살아온 것을 깨닫고 나자 나는 바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불안. 어렴풋이 나는 쟁이는 습관의 심리적 원인을 불안이라 짐작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나의 이런 쟁이는 습관을 고치고 싶은 것인데 쟁이는 습관을 버리는 것은 다시 나의 불안을 야기한다.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나 할까. 불안은 내 삶을 덮고 있는 두꺼운 이불 같았다. 그 이불속은 아늑한 갑갑함이자 포근한 절망 같아서 끝없이 쏟아지는 졸음에 오랜 악몽과 잠깐의 자각이 반복되었고 그 모든 시간을 보내며 나는 식물인간처럼 누워만 있었다. 


긴 잠을 깨우는 알람을 울리듯 나는 옷정리에 앞서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내가 시한부라 해도 소유하고 싶은 것들만 두고 보내자! 그렇게 나는 수북한 옷더미를 앞에 두고 집착이 놓아지지 않을 때면 말을 몇 번이고 되뇌며 옷정리를 시작했다. 


먼저 한 일은 내가 자주 입고 쓰는 물건들을 추려내는 것이었는데 이 작업은 당연하게도 너무 쉬웠다. 

다음에는 내가 가끔 입고 쓰는 옷들과 물건들 중에 갖고 있을 것과 보낼 것을 추렸는데 이건 조금 어려웠다. 예를 들면 한두 번 밖에 입지 않아 거의 새것 같은 짙은 네이비색 정장 원피스는 퇴사 5년 차인 지금 일 년에 한 번 입을까 말까 하는 옷이다. 경조사에 입을 만 하기는 하지만 내가 선호하는 디자인이 아니고 정장 바지가 있어 대체 가능하기 때문에 고민 끝에 보내기로 했다. 둘까 말까 할 때는 말아라. 오늘의 교훈이다.


마지막 작업은 쟁여놓았던 여분의 (새) 옷들을 보내는 것이었다. 원칙은 여분을 두지 않는다. 였는데 그 말인즉슨 여분으로 쟁여둔 옷들은 모조리 기부하겠다는 말과 같았으며 따라서 이 과정은 몹시 괴로웠다. 

나에게 여분이란 곧 심리적 안정과도 같은 것이기에 내적 갈등과 합리화가 최고조에 달했는데.. 자 들어보시라. 마음에 드는 니트가 있는데 니트는 입다 보면 보풀이 나고 쉽게 늘어나기 때문에 여분으로 한두 개 더 사두었다. 충분히 납득가지 않나... 요...? 얼핏 들으면 나름 일리 있어 보이지만 나는 그 핑계 안에 숨긴 불안을 알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포장도 뜯지 않은 쌍둥이 여분들을 기부함에 넣었다. 니트뿐 아니라 티셔츠며 스커트며 원피스에 액세서리들과 가방까지.. 내가 꼭꼭 숨겨 둔 쌍둥이들은 참 많았다. 세 쌍둥이 네 쌍둥이 심지어 다섯 쌍둥이까지 나오는 걸 보고서 스스로 경악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것들을 보내는 게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뭐라는 겨... 정신 차려!... 아무튼 여분을 버리는 마지막 작업은 엄청난 불안과 갈등과 번뇌 속에 힘겹게 마무리되었다.







이제 나의 브런치가 완성되었다. 1화부터 10화까지 '같이 하면 우리는 브런치 세트' 연재글을 통해, 브런치 작가 활동을 시작하고서 느끼고 알게 된 점들을 공유해 온 시간들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꼭 올해 같았다. 비장한 계획과 반복되는 작심삼일. 기대는 실망이 되고 실망 끝에 희망을 보고 준비한 것들은 잃어버리고 무작정 써 내려간 글들은 완성이 된 예측불가한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위와 같은 이유로 나의 글들은 항상 최선으로 쓰이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상황은 다양한 변수로 작용했고 때로는 나의 마음도 글쓰기에 소홀했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그 순간에는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쓰려고 했다. (했다 보다 됐다란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기도 하고.)


한 번 쓰인 글들은 쟁여질 수 없기에 나는 글을 쓰는 순간에 자유로움을 느꼈다. 내게 쟁일 수 없다는 것은 곧 불안을 허락하지 않는 것과 같다. 여분의 옷을 버릴 때는 금단증상을 겪듯이 불안했지만 여분의 옷이 사라진 빈 서랍에는 이제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혹은 아무것도 담지 않을 자유가 들어 있다.


나는 이제 긴 잠에서 깨어 서툰 요리솜씨로 만들어낸 브런치를 들고 당신과 함께 하길 원한다. 내 브런치를 당신과 나누고 당신의 브런치도 맛보고 싶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깔깔 웃고 레시피도 공유하다가 다음에는 더 맛있는 브런치를 만들어오겠노라 떵떵거리며 안녕을 말하고 헤어지고 싶다. 그리고. 다시 안녕을 말하며 반갑게 만나고 싶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글쓰기란 삶과 같으니 살듯이 쓰자는 말이다.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세네카






내게 브런치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