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텐슨은 어떻게 됐을까?”
리즈의 눈에서는 빤뜩빤뜩 궁금하다는 기색이 새어나왔다. 지니는 잔디밭에 드러누워 입만 꼭 다물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쿨은 둘의 눈치를 살피며 오후 첫 수업을 앞두고 체코어 책을 중얼중얼 읽었다.
햇살이 화창한 목요일 점심시간이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떠다니지 않았다. 아주 덥지도 않아 잔디밭에 누워 한숨 낮잠을 즐기기 딱 좋은 날씨였다. 곳곳에 아이들은 물론 교사들도 드러누워 있었다.
군인 출신인 밀로스 교장에게 유일무이하게 훌륭한 장점은 학교 시설을 기계적으로 완벽하게 관리한다는 점이었다. 학교 운동장 한쪽 구석에 넓게 조성된 잔디밭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치 강박증이라고 갖고 있는 것처럼 잔디밭 관리에 정성을 쏟았다.
“중간세계로 무사히 돌아갔을까?”
지니는 두 손으로 이미 헝클어져 있던 머리를 박박 긁었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저도 모르게 나오는 습관이었다. 아빠는 여자애가 머리를 긁으면 보기 싫다며 타박을 주었지만 오래 된 습관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나온 뒤 유령관리인에게 끌려간 건 아닐까?”
“유령관리인?”
“우리는 안드레이 할아버지의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토르텐슨도 그런 조직이 있다고 말했잖아. 마렉조차 그곳 관리인이라고.”
“마법사 켈리는 어떻게 됐을까?”
“그 사람은 안 잡혔을 거야. 그날 봤잖아? 진짜 놀라운 마법을 쓰는 걸. 그런 유령을 어떻게 잡겠어? 지금쯤 프라하 시내에서 활개를 치며 돌아다니고 있을 거야. 우리를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했지. 그게 무슨 말일까? 왜 우리를 다시 만난다는 거지? 물론 그렇게 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겠지만.”
중간세계에 다녀온 사건이 터지고 여러 날이 지났지만 마렉에게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그들로서는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어디로 전화할지, 어디로 찾아갈지, 누구에게 물어볼지 알 수도 없었다.
밀로스 교장이 다가오는 걸 세 아이가 눈치 챈 것은 나무에서 휙 하고 날아가던 새가 쿨의 손등에 똥을 찍 갈긴 직후였다.
“앗! 재수 없어.”
밀로스 교장 뒤에는 젊은 여성이 따라왔다.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색 티셔츠에 까만 진바지를 입고 까만 선글라스를 착용했는데, 나이로 볼 때 학부모 같지는 않았다. 초등학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 얘들아.”
밀로스 교장은 웃음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세 아이 앞의 파란 잔디를 밟았다. 그의 까만 구두에는 방금 맨땅 운동장을 가로질러 오는 바람에 묻은 흙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시청에서 오신 손님이 너희를 찾으시는구나.”
지니, 리즈, 쿨은 천천히 잔디밭에서 몸을 일으켰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어서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젊은 여성은 밀로스 교장에게 고개를 까딱하면서 눈짓을 보냈다.
“나는 할 일이 많아서 가야겠구나. 이 분과 좋은 대화를 나누기를 바란다.”
밀로스 교장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는 듯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젊은 여성은 교장을 보면서 두 손을 들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교장이 멀찌감치 사라진 걸 확인하고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 쿨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네가 쿨이겠구나.”
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머지 둘 중에서 누가 지니고, 누가 리즈니?”
“제가 지니예요.”
젊은 여성은 다시 선글라스를 끼었다.
“나는 카롤리나라고 해. 안드레이 사장님은 잘 알고 있겠지?”
낯선 사람의 입에서 안드레이 할아버지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세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드레이 할아버지를 잘 아세요?”
카롤리나는 크게 깔깔 웃었다.
“그분 밑에서 일하니까 잘 알지.”
세 아이의 얼굴빛은 샛노래졌다. 카롤리나가 찾아온 것은 안드레이가 보냈기 때문인 게 분명했다. 그 이유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지니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안드레이 씨가 너희와 조용히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시는구나. 너희가 거부하지 않는다면 그분께 데려갈 수 있어. 어떻게 생각하니?”
지니는 말없이 리즈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창백한 게 납덩이같았다.
카롤리나는 조용하게 말을 이었다.
“교장 선생님께는 다 말씀드렸단다. 너희가 안드레이 씨를 만날 생각이 있다면 지금 나와 같이 가면 돼. 너무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 그분이 너희를 나무라거나 벌주려는 건 절대 아니야. 그냥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 거야. 너희가 생각하기에도 학교에서 유령 이야기를 하는 건 부적절하지 않겠니?”
구시가지 광장은 프라하의 중심지다. 게다가 이날은 토요일이었다. 광장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볐다. 곳곳의 골목에서 많은 사람이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다양한 색깔의 깃발을 든 관광 안내원들은 외국에서 온 여행객들을 이리저리 이끌었다.
광장 한가운데 얀 후스 동상 앞의 벤치에는 여행객 10여 명이 모여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그들을 에워싼 비둘기 수십 마리는 빵 부스러기 하나라도 얻어먹으려고 머리를 숙이고 구구거렸다. 동상 뒤에는 관광용 마차 차 여러 대가 손님을 기다렸다. 마차를 끄는 말들은 지친 것처럼 보였다. 하루 종일 시내를 돌아다니다 이제 겨우 쉴 시간을 얻은 모양이었다.
지니와 리즈, 쿨이 광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 무렵이었다. 그들은 지하철 스타로메츄스카 역에서 내려 카프로바 거리를 거쳐 광장으로 들어갔다.
“카롤리나 언니가 말한 ‘유니콘의 집’은 어디지?”
“틴 성모 교회 앞이라고 했어. 저기로 가면 되겠네.”
세 아이는 안드레이가 운영하는 ‘유령 여행사’를 찾아가고 있었다. 전날 카롤리나가 학교에 찾아와 안드레이를 만나러 가자고 했을 때 리즈는 수업이 덜 끝났다면서 토요일 오후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굳이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토요일에는 반드시 오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구시가지 광장의 틴 성모 교회 앞에 있는 유니콘의 집 3층을 찾으라고 했다. 그곳에 ‘유령 여행사’가 있으니 들어오면 된다고 말했다.
유니콘의 집!
건물 이름치고는 매우 독특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희한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프라하에서는 이런 건물 이름을 어디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곳만 그런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빨간 사자의 집, 황금 곰 두 마리의 집, 검은 태양의 집, 황금 우물의 집, 검은 독수리의 집, 푸른 사슴의 집, 황금 코끼리의 집….
이렇게 이색적인 이름을 붙인 건물은 무려 100여 곳에 이를 정도였다. 건물 이름은 벽에 붙은 독특한 상징물에서 유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빨간 사자의 집에는 빨간 사자, 검은 태양의 집에는 검은 태양, 검은 독수리의 집에는 검은 독수리가 붙어 있는 식이었다.
틴 성모 교회 앞에는 잎이 우거진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나무 아래에는 작은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의자에는 한 사람이 잘린 머리를 왼손에 들고 앉아 있었다. 온 몸에 갑옷을 둘러 마치 중세 시대 기사처럼 보였다. 특이하게도 어떻게 조작하는 것인지 머리에 붙은 눈은 이리저리 굴러다녔고, 입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적지 않은 구경꾼이 모여 사내의 퍼포먼스를 보며 연거푸 감탄하고 있었다. 놀라기는 쿨도 마찬가지였다.
“저 사람은 정말 유령 같아! 토르텐슨 아저씨하고 똑같이 생겼어.”
쿨은 지니와 리즈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퍼포먼스를 구경하러 달려갔다.
“정말 정교하게 만든 기계인 모양이야. 잘린 머리가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아.”
쿨은 뒤따라온 두 소녀를 돌아보며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사내 앞에는 타블로이드 신문지 한 장이 깔려 있었고, 종이 위에는 플라스틱 쟁반이 놓여 있었다. 쟁반에는 구경꾼들이 던지고 간 코루나 동전 수십 개나 쌓여 있었다.
구경꾼 사이에서 꼬마 하나가 걸어 나와 사내에게 다가갔다.
“아저씨는 진짜 유령이에요?”
사내의 머리에 달린 입이 껄껄 웃었다.
“그럼! 내가 사람으로 보이니?”
“아니요.”
꼬마는 사내가 전혀 무섭지 않은 듯 씩 웃었다.
“아저씨 이름은 뭐예요?”
“남들은 옛날부터 나를 루프레흐트라고 부르더구나”
“아저씨 옆에서 사진을 찍어도 돼요? 지옥에 안 끌고 갈 거죠?”
“그럼!”
꼬마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루프레흐트와 꼬마 근처로 다가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의 얼굴에는 무서워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루프레흐트를 진짜 유령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겁이 많아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번에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루프레흐트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얼굴에는 별 희한한 걸 다 본다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서 네루도바의 목 잘린 기사 전설을 많이 들었지. 당신이 꾸민 분장은 할아버지가 설명해주신 것과 똑같아. 정말 신기한 노릇이야. 이걸 어떻게 재연했을까?”
루프레흐트는 벙글벙글 웃으면서 대답했다. 꼬마에게 한 것처럼 역시 목 잘린 머리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저는 네루도바 거리에서 살고 있답니다. 많은 사람이 그 이야기를 하더군요. 목 잘린 기사를 대낮에 끌어내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생각했답니다. 다행히 다들 매우 좋아하시는군요.”
할아버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게 느껴지는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내가 한 번 만져도 되겠소?”
루프레흐트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건 좀 곤란한데요. 분장이 지워져서 제 정체가 탄로 날 수 있거든요.”
구경꾼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지니와 리즈, 쿨도 마찬가지였다. 쿨은 호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쟁반에 던졌다.
“저는 쿨이라고 해요. 며칠 전 밤에 목 잘린 유령을 본 적이 있는데 아저씨랑 똑같이 생겼더라고요.”
루프레흐트의 표정이 돌연 싸늘하게 바뀌었다.
“나처럼 목 잘린 유령을 직접 만났다고? 지금 농담하는 거니, 아니면 나를 놀리는 거니?”
쿨은 깜짝 놀라며 손을 저었다.
“농담이 아니에요. 정말이라고요. 얘들도 함께 만난 걸요.”
쿨이 유령을 실제로 만났다고 말하자 옆에 서 있던 구경꾼들은 조롱하는 것 같은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지니와 리즈는 쓸 데 없는 이야기를 한다는 표정으로 쿨을 흘겨보았다.
루프레흐트를 만져보려던 할아버지가 쿨에게 다가왔다.
“네가 만난 사람의 이름이 혹시 토르텐슨이었니?”
쿨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할아버지는 껄껄 웃었다.
“나도 만나봤거든. 미친 사람 취급할까 봐 그런 이야기를 안 꺼냈는데 네가 대신 해주는구나.”
쿨과 할아버지의 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구경꾼들은 투덜거리며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다들 얼굴에는 재미있는 구경을 망쳤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루프레흐트도 당혹스러워했다. 그는 짐을 서둘러 꾸렸다, 짐이래야 의자 하나와 플라스틱 쟁반, 그리고 신문지 몇 장이 고작이었다.
할아버지는 떠나려는 그를 보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왜 벌써 가려고? 조금만 더 있다 가지 않고? 자네를 보니 일전에 만난 토르텐슨이라는 유령 생각이 나서 재미있었는데.”
루프레흐트는 대답은 하지 않고 머리를 왼손에 든 채 허둥지둥했다.
할아버지는 이번에는 양팔을 벌려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토르텐슨을 만난 것은 밤이었어. 자네가 유령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낮에 보니 신기했어. 언제 다시 올 건가? 그걸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을 걸세.”
루프레흐트는 난감해하면서 한참을 서 있다가 할 수 없이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유령은 한꺼번에 두 시간 이상 대낮의 햇살을 받을 수 없답니다. 지나치게 오래 햇빛에 노출되면 몸이 녹아버릴 수도 있거든요. 적당히 노출을 즐긴 다음에는 서둘러 어둠 속으로 사라져야 해요. 낮에 한 번 나온 뒤에는 한동안 몸을 추슬러야 해요. 최소한 일주일 뒤에나 다시 나올 수 있답니다. 그때 다시 뵐 게요.”
루프레흐트는 서둘러 말을 마치고 할아버지를 피해 틴 성모 마리아 교회 뒷골목 쪽으로 휭 하니 뛰어갔다.
할아버지는 아쉬운 듯 입맛만 쩝쩝 다셨다. 그는 쿨을 쳐다보며 한마디를 남긴 뒤 골목으로 사라졌다.
“얘야! 다른 곳에서는 절대 유령을 봤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랬다가는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란다.”
쿨은 골목으로 사라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쳐다봤다. 어쩐지 할아버지도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뒤에 서 있던 리즈와 지니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저 할아버지도 유령 아닐까?”
세 아이가 갑자기 등 뒤에서 한겨울 같은 써늘한 바람이 부는 걸 느낀 것은 쿨의 말이 끝난 직후였다. 네루도바 거리의 성모 마리아 성당 지하에 갔을 때 느낀 한기와 비슷했다.
“네 말이 맞아. 두 사람 모두 유령이란다. 낄낄!”
갑자기 등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세 아이는 놀라면서 고개를 뒤로 돌렸다. 언제 어디서 온 것인지 낯선 할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서 있었다. 몸에서 이상하고 흐릿한 빛이 퍼지는 할머니였다. 너무 오래 사용해 고장 나기 직전의 희미한 형광등과 비슷했다.
“루프레흐트의 퍼포먼스를 유심히 구경하는 걸 보니 너희도 유령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구나.”
한기는 할머니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무더운 여름인데도 할머니 주변은 아주 써늘했다. 쉽게 말해서 문을 열어놓은 냉장고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리즈는 두 손으로 몸을 감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니도 추운 것인지 손바닥으로 팔을 쓸어내렸다.
“네.”
할머니는 세 아이를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어디에 가려고 여기에 온 것이니? 아무 이유도 없이 단순히 놀러온 것 같지는 않구나.”
쿨이 할머니의 말에 대답했다.
“유니콘의 집을 찾아왔어요.”
할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곳에는 왜 가는 거니?”
“그 건물에 유령 여행사가 있대요.”
“아! 유령 여행사! 나도 그곳을 알지. 그 회사 직원 중 한 명을 잘 알아. 마렉이라고. 나하고 무척 친하거든.”
할머니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먼 옛날 유니콘의 집에는 제로님이라는 마술사와 알즈베타라는 점술사가 살았지. 두 사람은 마법을 사용해 유니콘을 만들었어. 유니콘이 뭔지 알지?”
“뿔 하나 달린 말 말씀이에요?”
“그렇지. 잘 아는구나. 어린 유니콘은 너무 난폭하고 거칠어서 사람들을 괴롭혔지. 할 수 없이 두 사람은 유니콘을 죽여 버렸어. 이후 유니콘은 유령이 돼 저 집 어딘가에 숨어 살고 있지.”
할머니의 설명은 재미있으면서도 끔찍하고 오싹한 내용이었다. 할머니는 세 아이의 표정이 굳은 걸 보고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교회 옆에 서 있는 작은 건물을 가리켰다.
“저 건물이 유니콘의 집이란다. 여행사에서 마렉을 만나거든 안부나 전해주렴.”
할머니는 다시 낄낄 웃으며 틴 성모 교회 안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할머니가 가르쳐준 유니콘의 집 외벽에는 어린 소년과 뿔 달린 동물을 새긴 조각이 붙어 있었다. 여행사 간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맞아?”
지니는 방금 지나온 교회를 돌아보았다. 이상한 할머니가 가르쳐주기는 했지만 여기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리즈는 목을 뒤로 한껏 제쳐 위쪽을 살펴보았다.
“이상하긴 하지만 일단 올라가보자. 그러면 알게 되겠지.”
건물 3층에도 유령 여행사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세 아이는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한참을 헤매야 했다.
“야! 여기에 뭐가 있어!”
3층 맨 끝 쪽 구석 사무실 앞을 살피던 쿨이 소리를 질렀다. 가로, 세로 10cm 정도 되는 조그마한 플라스틱 명패가 보일 듯 말 듯 붙어있었다. 글자도 너무 작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쿨의 입에서는 저절로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를 찾아오라는 것인지, 아니면 오지 말라는 것인지….”
유령 여행사로 걸어가면서 리즈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까 그 할머니 정말 무섭지 않던? 혹시 할머니 눈을 봤니? 손가락으로 이곳을 가리킬 때 슬그머니 훔쳐봤거든. 동공이 없는 것 같았어. 정말 끔찍했어. 살아 움직이는 유령 같았어.”
지니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여행사 문을 열었다.
사무실 내부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했다. 입구에는 손님을 응대하는 창구가 있었고 그 뒤로 책상 여섯 개가 놓여 있었다. 그 뒤에는 방 두 개가 나란히 설치돼 있었다. 프런트에는 남자 직원 한 명과 여자 직원 한 명이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보고 있었다. 마렉과 카롤리나였다. 가장 안쪽 책상 위에서는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졸고 있었다.
셋이 문을 삐걱 열고 들어가도 마렉과 카롤리나는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창구에 손을 올리고 한참이나 그들을 쳐다보던 지니는 답답해서 창구를 톡톡 쳤다.
“마렉 아저씨!”
먼저 고양이가 놀란 듯 야옹 하며 울음소리를 냈다. 마렉은 세 아이를 보고 아연실색하며 큰소리를 질렀다.
“너희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프런트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카롤리나의 표정을 흘끔 살피면서 세 아이의 등을 문 밖으로 밀어냈다.
“도대체 여기는 왜 온 거냐?”
“안드레이 할아버지를 찾아왔어요.”
“사장님을?”
마렉은 세 아이가 무슨 영문으로 안드레이를 찾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사장님은 왜?”
“우리더러 여기 오라고 하셨어요.”
“사장님이? 너희를 부르셨다고?”
“예.”
“모르겠어요. 물어볼 게 있다고 하셨어요. 이틀 전에 카롤리나 언니가 학교로 찾아와서 안드레이 할아버지가 보자고 한다고 전해줬어요.”
마렉의 인상은 일그러졌다.
“카롤리나가 너희를 찾아갔다고?”
“네.”
벌컥!
마렉이 어찌할 바를 몰라 횡설수설할 때 유령 여행사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하얀색 티셔트를 입은 카롤리나였다.
“마렉! 거기서 뭐 해?”
“아! 그게, 저….”
마렉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할 정도로 당황했다.
“언니! 저희 왔어요.”
지니는 샛노래진 마렉의 얼굴을 곁눈질하면서 카롤리나에게 인사했다.
“아! 너희들이었구나. 어서 오너라. 그렇지 않아도 사장님이 기다리고 계신단다.”
카롤리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마렉을 힐끔 흘겨보면서 세 아이를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쾅!
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마렉은 벽에 머리를 쿵 부딪혔다.
“아! 나는 이제 끝났구나. 에휴!”
카롤리나는 ‘사장실’이라는 명패가 달린 방의 문을 두들겼다.
“사장님, 아이들이 찾아왔습니다.”
곧바로 방문이 열리고 안드레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들어오너라.”
세 아이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안드레이의 얼굴을 살피며 사장실로 들어갔다. 그들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숨을 죽이고 입을 다물었다.
사장실은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꽤 넓었다. 한쪽 벽에는 커다란 책장이 붙어 있었고, 옆 벽에는 카렐 다리를 담은 풍경화가 걸려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책상이, 그 옆 바닥에는 꽤 두꺼운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문에서 정반대쪽, 그러니까 건물 바깥쪽 모퉁이 부분에 해당하는 곳에는 아주 낡고 커다란 갈색 옷장이 놓여 있었다.
책상 위에 앉아 졸던 검은 고양이가 아직 닫히지 않은 문틈으로 쏜살같이 달려왔다.
안드레이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얘는 아네타란다.”
안드레이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세게 비틀어 딱 하며 소리를 냈다.
“야옹!”
고양이는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를 내면서 공중으로 힘껏 뛰어올랐다. 허공에서 한 바퀴 시원하게 공중제비를 넘고 다시 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때 눈을 씻고 쳐다봐야 할 일이, 아니 그건 너무 말도 안 될 정도로 약한 표현이고, 곧바로 까무러치거나 공포에 질려 팔다리를 부들부들 떠는 게 당연한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바닥에서 뛸 때는 고양이였던 게 다시 내려앉았을 때에는 까만 원피스를 입은 어린 소녀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나이는 이제 겨우 일곱, 여덟 살 정도로 보였다.
“으악!”
얼마나 놀랐는지 지니는 넘어질 것처럼 휘청거리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야 했다. 눈을 휘둥그렇게 뜬 리즈는 두 손으로 커다랗게 벌어진 입을 가리더니 철퍽 주저앉고 말았다. 쿨은 크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아예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고양이에서 변신한 소녀의 몸은 푸르스름했고 약간 투명하게 보였다. 벽에 붙은 카렐 다리 풍경화가 몸을 통해 연하게 비칠 정도였다. 다리는 땅에 붙은 것인지, 허공에 떠 있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희미했다.
“얘… 얘는… 누… 누구예요?”
얼마나 놀랐던지 지니는 말을 더듬었다. 안드레이는 진지하게, 그러면서 느긋하게 대답했다.
“아까 소개했잖아? 아네타라고. 얘는 유령이야.”
아네타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키드득키드득했다. 하나같이 겁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벌벌대는 우리 모습이 웃기고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유… 유령이라고요?”
“아네타, 네가 직접 인사하렴.”
연기처럼 흐느적거린 아네타는 허공으로 올라가 공중제비를 한 바퀴 돈 다음 안색이 창백해진 지니 앞으로 살그머니 다가갔다.
“안드레이 말처럼 나는 유령이야.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 사람을 해치지는 않으니까.”
지니는 여전히 부르르 떨면서도 손가락을 살며시 내밀어 고양이 소녀의 몸을 살짝 눌러보았다. 진짜 유령인지 아니면 사람인지 확인해보려는 것이었다. 지니의 손가락은 마치 연기를 건드린 것처럼 아네타의 몸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아네타를 만질 수 없어 놀랐는지 지니는 다시 흠칫하며 뒷걸음질했다.
모든 상황이 즐거운지 아네타는 배를 잡고 폭소를 터뜨렸다.
“사람은 유령을 마음대로 만질 수는 없어.”
“너, 정말 유령인 거야?”
“보시다시피.”
지니는 한 번 더 아네타를 눌러보았다. 이번에도 물에 집어넣은 것처럼 손가락은 쑥 들어가고 말았다. 계속 히히거리던 아네타는 눈을 찡긋했다.
“사람이 유령 몸을 만질 수는 없다니까.”
리즈도 아네타에게 다가갔다.
“내가 한 번 눌러봐도 될까?”
“그럼. 얼마든지.”
리즈도 아네타를 만질 수 없었다. 손가락은 마치 물을 만지는 것처럼 쑥 들어갔다.
아네타는 키득키득 웃었다.
“아네타는 700년 전에 킨스키 궁전 앞에서 죽은 유령이란다. 원래 중간세계에 가야 하지만 너무 어려서 여기서 지내고 있지. 사람들이 보면 기절초풍할 거니까 낮에는 고양이로 변신해 있는 거야.”
세 아이는 입을 쫘악 벌리고 말았다.
“그럼 700년 전부터 고양이로 살고 있다는 거예요?”
안드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리즈는 아네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저건 변신술인가요?”
“변신술은 아니야. 죽은 고양이 유령이랑 합쳐서 필요에 따라 모양을 바꾸는 거야. 내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해주었거든.”
안드레이는 세 아이의 얼굴을 하나씩 차례대로 살펴보았다.
“여기 앉거라.”
지니는 안드레이 왼쪽의 소파 맨 앞에 엉덩이를 붙였다. 리즈와 쿨은 지니 옆으로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아네타는 하늘거리며 천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안드레이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생각보다 쉽게 찾아왔구나. 유니콘의 집이라고 하면 잘 모를 텐데.”
안드레이의 눈치를 살피던 리즈가 슬며시 대답했다.
“할머니가 가르쳐주셨어요.”
“할머니?”
“틴 성모 교회 앞에서 빗자루를 든 할머니요.”
안드레이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그는 소리를 질렀다.
“마렉!”
“예, 사장님.”
사장실 문 앞에 서 있었던 것인지 마렉은 금세 사장실로 들어왔다.
“틴 성모 교회 할머니가 대낮에 나타났다는데, 뭐가 잘못된 거지?”
“그…글쎄요. 다…당장 아…알아보겠습니다.”
마렉은 말을 더듬으면서 머리를 긁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드레이는 그런 마렉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그러시는 건가요?”
지니는 생뚱맞기는 했지만 길을 잘 가르쳐준 친절한 할머니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인지 궁금했다.
“할머니는 낮에 나와서는 안 되는 유령이거든.”
“예?”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의 대답 때문에 세 아이의 입에서는 한꺼번에 비명 같은 큰소리가 터져 나왔다.
“할머니가 유령이라고요?”
“원래 틴 성모 마리아 교회를 관리하던 집사의 부인이었지. 불행한 일 때문에 유령이 된 거야. 그건 그렇고.”
안드레이는 말을 싹 바꿨다.
지니는 침을 꼴깍 삼키며 리즈와 쿨을 돌아보았다. 둘 다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내 수첩에 적힌 내용대로 지난 토요일 오후에 성모 마리아 성당에 갔었니?”
세 아이는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중간세계에 가 봤겠구나. 목 잘린 유령 토르텐슨도 만났을 거고.”
세 아이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어떻든? 재미있었니?”
뜻밖에 안드레이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세 아이는 놀란 것처럼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우리를 야단치려는 게 아니신가요?”
안드레이는 껄껄 웃었다.
“너희가 목 잘린 유령을 만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반신반의했어.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지 몰랐거든. 만약 수첩만 훔쳐보고 실제 유령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면 교장에게 말했겠지. 나쁜 녀석들이라고.”
쿨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왜 지금 우리를?”
안드레이는 세 아이의 얼굴을 하나씩 살펴봤다.
“성당 신부님이 경찰서에 신고를 하셨더구나. 아이 세 명이 와서 검은 문을 보고 싶다고 해서 데려다줬는데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아서 들어가 보셨다고 했어. 그런데 지하실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고 말씀하셨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안드레이는 그날 벌어진 사건을 정확히 모르는 모양이었다. 알고 물어보는 표정이 아니었다. 다만 엄청나게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니는 지하실에서 목격했던 켈리의 끔찍한 마법을 떠올렸다. 신부가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떨어지는 장면이었다.
“마렉 아저씨가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벌컥!
갑자기 사장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방금 틴 성모 교회 앞의 할머니를 살피러 갔던 마렉이었다. 얼마나 급하게 다녀온 것인지 그는 처음에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숨만 헐떡거렸다.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이 흘러내렸다.
“어…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안 보입니다. 도…도망간 모양입니다. 위…위원회에 연락할까요?”
“도망갔다고? 왜 종전에는 없던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는 거지?”
“그…글쎄 말입니다.”
안드레이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마렉을 쏘아보았다.
“혼란이 벌어지는 이유가 있겠지? 얼른 위원회에 연락해서 다른 관리인들에게 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해.”
“예, 사장님.”
안드레이는 마렉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제 그만 나가 있어.”
마렉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세 아이를 쳐다보았다. 기도하듯이 두 손을 모아 울상을 지었다. 제발 입을 꼭 다물어달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분명했다.
안드레이는 화를 꾹 참으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나가라고 했는데, 왜 거기 계속 서 있는 거지?”
“아! 예, 예, 나…나가겠습니다.”
지니와 리즈, 쿨은 얼굴이 뜨거워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안드레이는 머리를 긁었다.
“마렉이 아무 이야기도 안 했느냐고 물었지. 그 녀석이 내게 한 이야기라고는 모든 게 잘 됐다는 것뿐이었어. 너희가 무사히 집에 돌아갔다고 말하더구나.”
리즈는 지니와 쿨을 힐끗 쳐다본 뒤 주저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날 있었던 일을 비밀로 지키겠다고 마렉 아저씨에게 약속했어요. 하느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고 했어요.”
“비밀 서약을 한 거로구나.”
“네.”
안드레이는 다시 머리를 긁었다. 아이들의 답변을 들으니 할 말이 없는 모양이었다.
“너희가 비밀을 깨뜨리면 하느님에게 한 맹세를 어기는 게 되겠구나. 그렇다면 비밀을 공개하라고 다그칠 수는 없지. 그런데 너희가 비밀을 지키는 바람에 세상에 큰 혼란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혼란이라니요?”
“틴 성모 마리아 교회의 할머니 유령은 모범생이었어. 유령은 낮에 인간 세상에 나타나면 안 된다는 규칙을 지난 600년 동안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단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짓을 하는 걸까? 게다가 어떻게?”
600년이라는 단어가 세 아이의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600년! 그 할머니가 그 긴 세월동안 유령으로 살았단 말인가?
“할머니만 그런 게 아니야. 최근 며칠 사이에 이상한 일이 계속 벌어졌어.”
“이상한 일이라뇨?”
“너희가 성모 마리아 성당에 다녀온 이후 며칠 사이에 경악스러운 일이 일어났단다. 유령 두 명이 차례로 살해당했어.”
유령이 살해당했다는 말이 세 아이에게는 괴이하게 들렸다. 이미 죽은 유령이 살해당하다니? 이게 무슨 말이지?
“너희에게는 어려운 개념이겠구나. 간단히 설명해줄 테니 잘 들어보렴. 죽음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란다. 무슨 말이냐 하면 죽은 사람이 또 죽을 수 있다는 거야. 끝없는 죽음이 영원히 이어진다는 거야. 그게 즐겁고 반가운 일은 아니겠지?”
“사람이 죽은 뒤에 또 죽을 수 있다고요?”
안드레이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세 아이는 종교적으로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죽음이 이어진다는 말은 알 수 있었다.
“저승에 간 영혼은 죽지 않아. 죽는 건 중간세계의 유령뿐이야. 유령이라도 중간세계에 있을 때에는 죽지 않아. 문제는 자정에 인간세상으로 나와 있을 때지. 그 시간에는 유령이라도 다시 죽을 수 있단다. 살아 있는 사람이 유령을 죽일 수는 없어. 마찬가지로 유령도 사람을 죽일 수 없어.”
지니는 유령이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말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유령 때문에 죽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안드레이는 손을 저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유령이 직접 죽인 게 아니야. 끔찍한 유령을 본 사람들이 너무 충격을 받아 심장마비로 쓰러진 거지.”
“그게 그것 아닌가요?”
안드레이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용기 있고 심장이 튼튼한 사람은 유령을 보면 놀랄 뿐이지 죽지는 않아.”
지니는 대꾸를 하지 못했다.
“유령을 죽일 수 있는 건 유령뿐이야. 자기들끼리는 죽고 죽일 수 있어. 하지만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아. 내가 유령을 연구한 게 40년을 넘었는데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어. 그런데 최근에 유령 두 명이 살해당한 거야. 그것도 갈기갈기 찢겨서 잔인하게.”
“누가 그랬을까요?”
“글쎄. 범인을 알아내려면 성모 마리아 성당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너희는 비밀을 지켜야 하니….”
안드레이는 눈을 오긋하게 뜨고 세 아이를 쳐다보았다.
“이상한 게 더 있어. 성모 마리아 성당 신부님 말씀으로는 지하실에 내려갔을 때 무슨 이유에선지 몸이 허공에 붕 떴다가 떨어졌다는구나. 기절하는 바람에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는 없었다고 하더구나. 내가 볼 때는 어둠의 마법인 것 같아. 너희가 그 마법을 할 수는 없을 테니 다른 사람이 지하실에 있었다는 이야기겠지? 누구였을까? 그 정도 마법이라면 앞으로 사람을 살해할지도 모를 텐데….”
“사람을 죽인다고요?”
“성당에서 신부를 상대로 어둠의 마법을 쓸 정도라면 간덩이가 어지간히 큰 사람은 아니겠지? 그런 사람이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겠니? 게다가 너희는 그 장면을 목격했으니….”
마법사 켈리가 ‘다시 보자’고 한 말이 쿨의 귀에 맴돌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사람이 아니에요. 유령이에요. 이름은 마법사 켈리라고 했어요.”
“마법사 켈리?”
안드레이의 얼굴이 납빛처럼 창백해졌다.
“존 켈리?”
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느냐?”
리즈는 더 이상 비밀을 숨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검은 문을 통해 중간세계에 가서 토르텐슨을 만났고, 겨우 중간세계에서 빠져나왔을 때 토르텐슨과 마법사 켈리도 함께 나왔다는 걸 설명했다.
“켈리가 중간세계에서 빠져나왔다고?”
“네.”
“마렉 아저씨가 정말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 녀석이 나를 속였구나. 그 때문에 일이 커졌어.”
안드레이는 큰 충격을 받은 기색이었다. 안색이 순식간에 백짓장처럼 하얘졌다.
“켈리는 영국인이었단다. 원래 변호사였지. 서류를 위조한 혐의가 드러나는 바람에 두 귀를 잘리는 형벌을 받았어. 수치심을 견디지 못한 그는 웨일스로 달아나 가명을 쓰며 숨어 살았어. 그러다 우연히 아주 신기한 책 한 권을 입수했지. 글래스톤베리의 성 던스탄이라는 기독교 연금술사가 쓴 매우 낡은 라틴어 필사본이었다고 했어. 그는 이 책을 읽고 연금술에 눈을 뜨게 된 거야. 책을 읽고 유령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게 됐어. 그는 유령을 이용해 교령회를 열었대. 테이블에 앉아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내 대화하는 모임이었어. 물론 참가자들에게 적지 않은 돈을 받았지. 켈리는 나중에는 루돌프 2세 황제의 초청을 받아 프라하로 와서 연금술을 연구했지. 하지만 성과를 내지 못해 황제의 미움을 사는 바람에 감옥에 갇혀버렸어. 6년 뒤 탈옥을 시도하다 크게 다쳐 죽고 말았단다.”
지니는 지난 번 유령 특강 때 안드레이에게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유령은 자정 이후에는 인간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켈리는 왜 탈출한 거예요.”
안드레이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질문이구나. 그게 상황이 복잡하단다.”
지니는 안드레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네 말대로 자정이 지나면 유령은 중간세계에서 인간세상으로 나올 수 있어. 단 절대 사람에 눈에 띄어서는 안 되고, 해가 뜨기 전까지는 돌아가야 해. 그런데 모든 유령이 다 인간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건 아냐. 살아 있을 때 끔찍한 살인범이었거나, 흉악한 범죄자였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친 유령은 1천 년 동안 중간세계에 갇혀 살아야 해. 인간세상으로 절대 나올 수 없어.”
지니의 머리에 토르텐슨이 한 말이 떠올랐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지옥에서 1천 년 동안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였다.
“켈리도 그런 유령 중 하나인가요?”
“원래는 그렇지 않았어. 해가 뜨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는 규칙을 어기고 인간세상을 돌아다니다 들키고 말았지. 그럴 경우에는 처벌을 받게 돼. 단순히 복귀 의무만 어겼다면 첫 두 번은 경고를 받아. 세 번째에는 100년 동안 인간세상 출입금지라는 벌을 받아.”
“중간세계는 엄청나게 넓고 어두웠어요. 그런 곳에서 다시 몰래 도망치면 어떻게 막을 수 있어요? 출입금지 벌칙은 무용지물 아닌가요?”
안드레이는 무거운 표정이었다.
“자정이 되면 중간세계의 유령에게는 인간세상으로 나오는 문이 열려. 모두 한꺼번에 우루루 나오는 문이 아니란다. 제각각 비밀의 문이 있어서 그게 열리는 거지. 다른 유령은 그 문으로는 인간세상에 나올 수 없어. 살아 있을 때 저지른 흉악한 잘못 때문에 중간세계에 갇혀 살거나 켈리처럼 출입금지 처벌을 받은 유령에게는 인간세상으로 나오는 문이 열리지 않아. 다른 유령을 따라갈 수도 없어. 왜 그런지는 나도 몰라.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세상에서 중간세계로 갔다가 돌아가는 인간을 몰래 따라가는 것뿐이지. 그런데 그건 극히 일부만 아는 비밀인데 그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어. 누가 가르쳐줬을까?”
리즈는 마렉의 집에 혼자 남아 있던 목 잘린 유령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다.
“토르텐슨 아저씨는 어디 계세요?”
“글쎄다. 마렉은 내게 그 이야기도 하지 않았어.”
안드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안을 돌아다녔다.
“켈리는 연금술사인데 어떻게 어둠의 마법을 배운 거지? 또 유령은 마법을 쓸 수 없는 게 법칙이야. 그런데 사람에게 마법을 사용했다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안드레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이해할 수 없었다. 중간세계에서 유령은 이동할 수도 없고, 누구를 만날 수도 없는데 어떻게 마법을 배웠을까?
“켈리가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니? 어디로 간다든지.”
“중간세계에서 처음 만났을 때 켈리 머리에서 이상한 빛이 나오더니 우리 머리 안을 훑고 지나간 적이 있어요. 그러더니 우리를 곧 다시 만날 거라고 했어요.”
“너희 기억을 훔친 거로구나. 그래서 검은 문이나 여러 가지를 알게 됐겠지. 마렉이 곧 구하러 올 거라고 짐작도 했을 거고. 너희가 어디 살고 어떤 아이라는 것도 다 알고 있을 거야.”
안드레이의 눈이 번쩍하고 빛났다.
“너희를 다시 만난다고 했지? 그냥 한 말은 아닐 거야. 곧 너희를 찾아오겠구나. 그럴 이유가 있겠지. 더 큰 피해가 생기기 전에 그 놈을 잡으려면 이유를 알아내야겠어. 유령관리인을 총동원해야 하겠구나.”
쿨은 유령관리인이라는 말을 듣고 손을 번쩍 들었다.
“토르텐슨 아저씨도 중간세계에서 유령관리인이라는 말을 하셨어요. 안드레이 할아버지와 마렉 아저씨도 유령관리인이라고. 그게 도대체 뭔가요?”
지니와 리즈는 동시에 안드레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그의 입에서 어떤 놀라운 말이 튀어나올지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안드레이는 세 아이의 얼굴을 하나씩 살펴봤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알고 싶니?”
“예.”
안드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하느님에게 맹세할 수 있겠니?”
안드레이의 입에서 비밀 서약 이야기가 튀어나온 것은 모순이었다. 안드레이는 방금 교묘한 말솜씨를 발휘해 세 아이가 마렉과 맺은 비밀 서약을 깨뜨리게 하지 않았던가!
지니와 리즈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굳이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안드레도 앞뒤가 안 맞는 걸 뒤늦게 깨달았는지 금세 말을 바꿨다.
“하긴 비밀 서약은 필요 없겠구나. 유령위원회와 유령관리인이 뭔지 말해줘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어.”
안드레이는 숨기지 않고 솔직히 설명해주기로 했다. 세 아이는 이미 중간세계에 가서 유령을 봤기 때문에 충분히 들을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이야기를 해주더라도 특별히 문제가 발생할 일은 없었다.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면 혹시 세 아이가 밖에 나가서 떠들면 어떻게 하느냐고 의문을 표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인 어린이가 목 잘린 유령을 만났다느니, 프라하에 유령위원회가 있고 유령관리인이 있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치자. 이 말을 믿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유령관리인은 유령위원회에서 일하는 특급요원들이란다. 현재 인원은 20명 정도야. 마렉은 관리인은 아니야. 관리인이 되려고 준비하고 있을 뿐이지.”
호기심이 많은 리즈는 지난번 학교에서 특강을 할 때 안드레이가 유령위원회라는 말을 꺼냈던 걸 기억했다. 교사들이 눈총을 주는 바람에 안드레이는 중간에 말을 끊어버렸다.
“유령위원회는 뭐예요?”
“대부분 유령은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거나, 아니면 나쁜 짓을 하다가 들켜 현장에서 죽거나 나중에 붙잡혀 사형당한 사람이야. 평범하게 죽은 경우는 없다는 이야기지. 다들 엄청나게 스트레스가 심하고 원한이 많아. 유령을 그냥 놔두면 마음대로 설쳐서 세상을 뒤죽박죽,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도 있어. 실제 옛날에는 그랬지.”
리즈는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 들어간 토르텐슨이 금으로 만든 촛대와 각종 장식물을 훔치던 모습을 생각했다. 분노한 사람들이 낫과 몽둥이를 들고 그를 쫓아가 살해하던 장면도 떠올렸다.
“1천 년 전쯤에야 유령 사회의 질서가 잡혔어. 아무나 대들 수 없는 엄청난 사람이 등장한 거야. 너희도 이름을 들어봤을 거야. 성 루드밀라라고.”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된 어린이들을 포함해서 프라하에 사는 사람 중에서 성 루드밀라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체코에 기독교를 도입했고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려 나중에 성인이 된 사람이었다.
“성 루드밀라가 기독교를 받아들였을 때에는 이교도가 체코를 지배하고 있었단다. 세상이 혼란스러운 탓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많아 유령이 온 세상을 설치고 다녔지. 이교도가 신처럼 숭배하던 스비아토 백작이 혼란을 조장한 장본인이었어. 어둠의 마법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이었단다. 거의 악마와 같은 존재였어. 성 루드밀라는 무엇보다 먼저 스비아토를 붙잡아 사형시켜 중간세계로 쫓아버렸어. 또 유령위원회를 만들어 천방지축으로 설치고 다니던 유령을 단속하기 시작했지. 그 덕분에 프라하의 유령 세계에는 질서가 잡혔단다.”
안드레이의 입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아이들은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안 받아들일 수도 없어 그저 놀란 표정으로 입만 벌리고 있어야 했다.
“토르텐슨 아저씨는 스비아토가 중간세계의 지배자라고 하던데요.”
“스비아토는 중간세계에 특별히 만든 감옥처럼 만든 신전에 갇혔단다. 그곳에서는 마법도 쓸 수 없지. 그런데 워낙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자여서 그곳에서도 따르는 유령이 적지 않아. 그래서 왕처럼 행세한단다.”
안드레이는 냉장고에서 음료수 캔을 꺼내 뚜껑을 땄다. 팍 하면서 시원하고 경쾌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음료수를 시원하게 벌컥벌컥 들이켰다.
“성 루드밀라는 유령위원회를 총괄할 위원장을 한 명 임명하셨어. 자신이 죽은 뒤에도 유령을 계속 통제할 수 있도록 하신 거지. 그리고 초대 위원장의 후손이 대를 이어 계속 위원장을 맡게 하셨어.”
“그럼, 지금은 안드레이 할아버지가 위원장이신가요?”
안드레이는 껄껄 웃었다.
“아쉽게도 나는 위원장이 아니란다. 부위원장일 뿐이야.”
이번에는 지니가 질문을 던졌다.
“그럼 누가 위원장이신가요?”
안드레이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지금 위원장 자리는 비어 있단다.”
“왜요?”
“첫 위원장은 왕의 사촌동생인 토마쉬 프르셰미슬이었지. 아주 용감한 기사였어. 가장 최근의 위원장은 야로미르 프르셰미슬이었고. 아쉽게도 야로미르는 3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단다. 그래서 위원장 자리가 빈 거야.”
야로미르!
세 아이의 눈이 반짝 빛났다. 토르텐슨이 중간세계에서 꺼낸 이름이었다. 지니는 리즈와 쿨을 쳐다보았다. 거꾸로 리즈와 쿨은 지니를 바라보았다.
리즈는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계속 질문을 던졌다.
“야로미르 씨에게는 아들이나 딸이 없나요?”
안드레이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야로미르 씨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어. 다들 그 딸이 자라서 새 위원장이 될 거라고 믿었지. 원래 위원장 자리는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이 가장 능력이 뛰어난 자식이 물려받는 것이었거든. 성 루드밀라가 처음에 그렇게 정하셨지. 그런데 어느 날 야로미르 씨의 딸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단다.”
지니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라지다니요?”
“유령을 잡는 일에 평생 매달리기 싫다는 편지 한 통만 남기고 가출해버린 거야.”
지니는 그 처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중대한 일이라도 평생 매일 밤 유령만 봐야 한다면 정말 괴로운 노릇일 게 뻔했다.
“딸을 찾아보시지는 않으셨나요?”
“처음에는 야로미르 씨가, 나중에는 우리까지 찾아 나섰지. 결국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됐어. 외국으로 나갔더구나. 한국에 간 것까지는 확인이 됐는데 정확하게 어디에 사는지는 몰라.”
지니는 문득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돌이켜 보니 엄마의 성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아빠가 한 번도 말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갔다는 딸의 이름은 알고 계시나요?”
안드레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딸의 이름은 왜?”
“그…그냥요. 궁금해서.”
“야로미르 씨 집안에서는 딸을 낳으면 무조건 루드밀라라고 불렀지. 그분의 외동딸도 루드밀라였어.”
지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체코 출신의 루드밀라! 한국! 여기까지는 완전히 엄마 이야기였다. 물론 그의 생각에는 엄마가 프라하의 유령위원회 위원장 후보일 가능성은 없었다.
지니가 생각에 잠긴 사이 쿨이 안드레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중간세계에서 토르텐슨 아저씨도 야로미르라는 이름을 말한 적이 있어요.”
안드레이의 눈이 커졌다.
“토르텐슨이 야로미르 이야기를 왜 했지?”
“몸에서 노란색 빛을 발산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노란색 빛?”
지니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의 몸에서 노란색 빛을 발산한다는 말을 쿨이 꺼낼까 싶어서였다. 아직 분명해진 건 하나도 없는데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싫었다. 그는 쿨을 노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쿨은 그제야 지니가 노란색 빛 이야기를 꺼내는 걸 싫어한다는 걸 눈치 챘다.
“아! 그게, 그러니까. 우리가 중간세계에 빠졌을 때 정말 어두웠거든요. 맞아요. 그랬어요. 그러자 토르텐슨 아저씨가 불빛이 필요하다면서 야로미르 이야기를 꺼냈어요. 그 사람이 있으면 노란색 빛을 낸다면서요. 토르텐슨 아저씨는 아는 것도 많아. 히히!”
안드레이는 눈을 착 내리깔고 쿨을 쏘아보았다. 무언가 숨기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지니와 리즈도 쳐다보았다.
리즈가 더듬거리며 말을 보탰다.
“쿠…쿨의 말이 맞아요. 거…거기는 너무 어두웠거든요.”
지니는 당혹스러웠다. 만약 그의 몸에서 노란색 빛이 발산된 게 밝혀지면 일이 꼬일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말을 돌리기로 했다.
“교회도 유령위원회 일을 함께하는 건가요?”
안드레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대답했다.
“같이 하는 건 아니야. 교회가 유령을 잡는다고 해 보렴. 세상이 벌집 쑤신 것처럼 시끄러워질 거야. 다만 최고위층만 알고 있어. 정치와 교회의 묵계에 따라 서로 모르는 척 하고 있을 뿐이지. 대신 우리가 하는 일을 돕기 위해서 교회에서 가끔 사람을 보내준단다.”
“유령위원회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이에요?”
리즈가 궁금하다는 낯빛으로 질문을 던졌다.
“체코의 유령 정보를 수집하고, 유령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면 정리하고, 유령이 궁지에 몰리면 도와주는 게 우리 일이야. 프라하는 물론 체코의 모든 경찰서에 접수되는 각종 사건, 사고와 정보 자료는 모두 우리에게도 넘어와. 우리는 그걸 보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분석해서 대처하는 거야. 성모 마리아 성당 신부님이 경찰서에 신고한 걸 알게 된 것도 그래서야.”
리즈와 쿨, 그리고 안드레이가 계속 유령위원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지니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프라하 출신의 루드밀라, 그리고 한국! 과연 엄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