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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Aug 10. 2022

목 잘린 유령

롤러코스트가 수직으로 추락하듯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심장은 몸에서 떨어져나가 얼음물에 빠진 것처럼 차갑고 찌릿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지니는 그냥 청룡열차를 탄 것처럼 두 눈을 꼭 감고 비명만 질러야 했다.

추락이 끝났나 싶어 눈을 뜬 것은 진공 상태인 허공에 매달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때였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공처럼 둥근 느낌을 주는 어둠뿐이었다. 어둠이 보인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인지 헷갈렸다. 아무것도 안 보일 만큼 어두운데 그걸 보인다고 할 수 있는지.

몸이 천천히 바닥에 닿는다는 게 느껴졌다. 엉덩이부터 시작해서 다리, 허리, 머리 순서였다. 그는 손을 짚고 겨우 허리를 들 수 있었다. 허리를 들었다는 건 생각이고, 정말 허리를 들었는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으니까.

잠시 후 누군가 옆에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누구니?”

“나야, 리즈. 여기가 어디지?”

“지하로 추락한 것 같아.”

둘의 목소리에는 누가 들어도 알 수 있는 당혹감과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일어설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균형을 잃고 다시 넘어질지 몰랐다.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지니는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눌렀다. 왜 그런 것인지 화면은 켜지지 않았다.

“길을 잃어버린 모양이지?”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어둠 때문에 누군지 보이지는 않았다. 어둠은 빛뿐만 아니라 감각까지 사라지게 한 것인지 가까운 곳에 사람이 있는데도 둘은 인기척조차 느낄 수 없었다.

“누구세요?”

지니와 리즈의 놀란 목소리가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너희와 같은 곳에 갇힌 사람이란다.”

아무리 어두운 공간에 들어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눈이 서서히 적응해 앞을 조금이나마 보거나 물체의 흔적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지 인체의 정상적인 기능을 완전히 정지시켜버렸다.

“여기가 어디예요?”

“어디인 것 같으냐?”

누구인지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는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사정을 알 수 없으니 물어볼 말도, 대답할 말도 없었다. 침묵과 적막감은 한참이나 이어진 뒤에야 깨어졌다.

“우리가 보이시나요?”

목소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너희는 나를 못 보지만 어둠에 익숙한 내게는 너희가 보이는구나.”

“여기는 왜 이렇게 어두운 건가요?”

“빛이 사라졌기 때문이지.”

휙!

다시 누군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쿨?”

“헉! 여기는 어디지? 왜 이렇게 어두워?”

두 아이의 목소리에는 이전보다 더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한 명이 더 늘어났구나.”

쿨은 기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우리 말고 또 누가 있어요?”

껄껄 웃는 목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너희만 사는 곳이 어디에 존재하더냐?”

세 아이가 어둠에 휩싸여 곤혹스러워하고 있을 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빈틈이 없는 것 같은 촘촘한 어둠 사이로 은은한 노란색 빛이 퍼져 나왔다. 이른 새벽에 강에서 올라오는 안개처럼 은은하고 느린 빛이었다. 아주 신성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내는 빛이었다.

“이 빛은!”

어둠 속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떨렸다.

빛은 다른 곳이 아니라 지니의 몸에서 발산되는 것이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리즈는 고함을 질렀다.

“지니! 네 몸에서.”

처음에는 영문을 알지 못하던 지니는 리즈의 고함을 듣고서야 상황을 깨닫게 됐다. 그도 처음에는 어디에서 빛이 나오는 건지 알지 못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 내 몸에서 빛이 나오는 거지? 호주머니에 이상한 게 들었나?”

지니는 호주머니를 뒤져보았다. 하지만 동전 서너 개 말고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지니의 몸에서 나오는 빛은 조금씩 멀리 퍼져나갔다. 하지만 어둠을 완전히 밀어내지는 못했다. 20~30m 주변만 밝혀줄 뿐이었다. 망망한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려주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어둠의 힘이 너무 강했다.

세 아이는 빛 덕분에 바위에 혼자 앉은 목소리의 주인을 볼 수 있었다.

“목 잘린 유령!”

지니는 저도 모르게 나지막하게 탄성을 내뱉었다. 사람들이 눈을 뜨고는 볼 수 없을 만치 끔찍하고 처참한 존재라고 부르는 목 잘린 유령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유령은 은색으로 빛나는 철제 갑옷을 입고 있었다. 갑옷 안에는 검은색 옷이 보였다. 어깨와 팔꿈치에는 쇠로 만든 보호대가 채워져 있었지만, 팔 부위는 그냥 검은색 옷뿐이었다. 허벅지와 무릎, 장딴지에도 철제 장구가 갖춰져 있었다.

유령의 목에는 머리가 달려 있지 않았다. 그는 왼손에 잘린 목을 들고 있었다. 이름 그대로 목 잘린 유령이었다. 입은 굳게 닫혀 있었고 두 눈은 세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안드레이가 겁을 주었던 것과는 달리 목 잘린 유령은 하나도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잘린 목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지도 않았고, 왼손에 든 머리에서도 피나 끔찍한 흔적은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프라하의 여러 광장에서 유령 퍼포먼스를 하는 행위 예술가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쿨은 처음에는 유령을 보고 잠시 흠칫했지만 곧바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가 보기에도 처참하거나 잔혹한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토르텐슨이야. 너희들이 나를 정확하게 찾아온 게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토르텐슨의 목소리는 아주 굵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유령의 왼손에 들려 있는 잘린 머리의 입이 그런 것이었다.

“아저씨를 만나려고 왔어요.”

리즈는 아직 긴장이 덜 풀린 모양이었다.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나를 만나러? 너희가 왜?”

“유령은 어떤 존재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어요.”

“유령을 확인해보고 싶었다고?”

“네.”

토르텐슨은 온 몸에서 빛을 발산하는 지니를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네 몸에서 빛이 나는구나!”

지니는 손을 들고 살펴보았다. 은은한 노란색 빛이 솟아나고 있었다. 손만 그런 게 아니었다. 머리, 몸통,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노란색 안개 속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토르텐슨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란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빛을 내는 사람을 딱 한 번 만났어. 30년 전이었지. 이름은 야로미르라고 했어.”

“야로미르? 그 분이 누구죠?”

지니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리즈와 쿨도 마찬가지였다.

“야로미르를 모른단 말이냐?”

지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상한 일이구나. 이곳에서 아무나 노란색 빛을 낼 수 있는 게 아니야. 특별한 자격과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지니는 토르텐슨이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토르텐슨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야로미르가 네 아버지나 할아버지인 것은 아니냐? 아니면 외할아버지이거나 가까운 친척일 수도 있고.”

지니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둘 다 고아라고 하셨어요. 야로미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봐요.”

토르텐슨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구나.”

번쩍!

우르르릉! 쾅쾅!

어둠 속에서 번개가 치더니 천둥이 금세 뒤를 이었다. 번개가 떨어진 곳에서는 아주 환한 불길이 솟아올랐다. 아주 먼 곳 같으면서도 거꾸로 가까운 곳 같기도 했다.

덜덜덜덜!

천둥번개에 이어 갑자기 땅이 흔들렸다.

“아야!”

지니와 리즈, 쿨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 일어나는 바람에 그만 뒤로 벌러덩 나자빠지고 말았다.

“어이쿠!”

토르텐슨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는 바위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

지진은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겨우 3~4초에 불과했다.

세 아이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섰다. 그들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눈만 껌벅거렸다. 여기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유령이 있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천둥번개가 치고 지진이 발생하는지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누가 와서 좀 도와주렴.”

토르텐슨이 아쉬운 목소리로 세 아이를 불렀다. 다들 천둥번개와 지진 때문에 혼쭐이 나는 사이 토르텐슨이 왼손에 든 머리를 놓쳐 버렸다. 그의 머리는 바닥에 주저앉은 몸통에서 2~3m 떨어져 있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내 머리를 왼손에 다시 올려주면 좋겠구나.”

지니는 손을 앞으로 내밀다가 다시 뒤로 쏙 빼버렸다. 리즈는 아예 머리 근처에 다가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쿨은 머뭇거리며 머리 주변을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아저씨가 직접 머리를 집으러 가면 되잖아요?”

“내 몸에는 눈이 없잖니! 머리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어. 귀도 없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알아들을 수 없고. 몸이 머리를 찾으려면 한참을 헤매야 해.”

가만히 생각해보니 토르텐슨의 머리가 하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유령의 머리를 들어 올린다는 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세 아이는 여전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꺼림칙하다는 걸 물론 나도 알아. 잘린 머리를 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 하지만 너희가 도와주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이러고 있어야 할지도 몰라. 제발 도와다오.”

토르텐슨의 애원은 간절하고 가련했다.

지니는 고심 끝에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는 속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차피 유령을 만나려고 찾아온 거잖아?  잘린 유령의 머리를 들어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니?’

지니는 두 눈을 딱 감고 고개는 옆으로 돌린 채 머리에게 다가갔다.

“눈을 뜨고 나를 봐야 머리를 들 수 있지 않겠니?”

토르텐슨이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지니는   없이 눈을 뜨고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유령의 머리를 잡았다. 한겨울에 두껍게 꽁꽁 얼어붙은 개울의 얼음을 만지는 것처럼 싸늘한 냉기가 손바닥에 느껴졌다. 게다가 무어라고 표현할  없는 아주 오싹하고 소름끼치는 기운이 온몸에  퍼지기도 했다. 다리는 바람에 흩날리는 빨랫줄의 바지처럼 후들거렸고 심장은 방망이로 연거푸 두들기는 것처럼 두근거렸다.

‘새로운 경험도 좋지만 이 일은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

지니는 가까스로 토르텐슨의 몸에 다가가 머리를 왼손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얼음장 같은 냉기는 머리를 옮겨주고도 한참동안이나 사라지지 않았다.

“고맙구나. 네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했어.”

토르텐슨은 왼손으로 머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의 두 눈에는 그제야 편안한 기운이 흘렀다. 머리를 제자리에 가져다놓은 그는 눈을 씰룩이며 천둥번개가 떨어진 곳을 쏘아보았다.

저곳은 이곳의 지배자인 스비아토사는 방향인데….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겠어.”

토르텐슨은 두 손가락을 딱 튕겼다.

어둠 속에서 하얀 말 한 마리가 날아왔다. 코에서는 김이 솟고 있었고 눈은 충혈된 것처럼 시뻘겋게 보였다. 온 몸은 상처 투성이였다.

“벨로시,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오렴.”

벨로시는 주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다시 어둠 속으로 힘차게 달려갔다.

“저 말은 뭔가요?”

“내가 살아있을 때 아끼던 말 벨로시야. 내가 죽은 뒤에도 끝까지 시체를 지키다 몽둥이에 맞아 죽었지. 그래서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말도 죽으면 유령이 되나요?”

“말이나 사람이나 생명을 가진 동물이잖니? 차이가 날 게 뭐가 있겠니?”

토르텐슨은 세 세 아이를 하나씩 훑어보았다.

“그건 그렇고 여기에 들어오는 방법은 어떻게 알게 된 거냐?”

리즈는 안드레이의 초등학교 특강과 빨간 수첩에서 얻은 정보, 그리고 검은 문 이야기를 상세히 설명했다.

“핫핫!”

리즈의 이야기를 다 들은 토르텐슨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영문을 모르는 세 아이는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너희가 안드레이의 수첩을 훔쳐보았다고?”

토르텐슨은 안드레이를 잘 아는 모양이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너희가 말썽을 피우는 바람에 엉뚱하게 여기 들어왔다는 것이구나.”

지니는 토르텐슨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 아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대모험에 나섰는데 그는 그걸 말썽이라고 표현했다.

지니와 리즈 뒤에 숨듯 서 있던 쿨이 앞으로 나서면서 입을 열었다.

“안드레이 할아버지를 잘 아세요?”

토르텐슨은 다시 껄껄 웃었다.

“유령 관리인 안드레이를 내가 왜 모르겠니?”

지니, 리즈, 쿨은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유령 관리인이라고요?”

토르텐슨은 웃음을 멈췄다.

“너희는 안드레이의 정체를 모르는 모양이구나.”

세 아이는 일제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중에 안드레이를 다시 만나거든 물어보도록 해라. 할아버지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고.”

쿨이 아직 긴장이 덜 풀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드레이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면 크게 혼날지도 몰라요.”

토르텐슨은 껄껄 웃었다.

“나라도 그렇게 하겠다. 너희들이 정말 나쁜 짓을 했으니까. 남의 수첩을 훔쳐봤잖아!”

리즈는 토르텐슨의 잘린 목을 보며 대꾸했다.

“안드레이 할아버지도 잘한 것은 없어요. 우리에게 유령 이야기를 먼저 해준 사람은 그분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유령 여행을 꿈꾸게 된 거고요. 안드레이 할아버지는 유령을 만나면 너무 끔찍해서 우리가 기절할 거라고 했어요.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토르텐슨은 리즈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실망한 모양이구나.”

“약간 그런 기분도 없지 않아요.”

토르텐슨은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그렇다면 원래 내 모습을 보여줄까?”

“원래 모습이 따로 있다고요?”

“생각해 보렴. 내가 목을 잘릴 때 얼마나 피를 많이 흘렸게니? 게다가 수박을 자르듯이 목이 한 번에 댕강 잘리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왜 아저씨 모습이 지금은 무섭게 보이지 않나요?”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게 원하는 대로만 보이는 법이지. 나이 든 사람은 유령을 기절초풍할 만큼 끔찍한 존재로 생각하니까 나도 몸서리칠 정도로 참혹하게 보이겠지. 너희는 아직 세상을 낭만적으로 보고 있지. 그래서 유령인 나도 무섭지 않게 보이는 거야. 하지만 원하는 대로 보는 게 아닌 나의 원래 모습이 있단다.”

끄아악! 크윽!

갑자기 찢어질 듯 날카로운 굉음이 어둠을 꿰뚫었다. 세 아이는 깜짝 놀라 귀를 틀어막았다. 가까운 곳이 아니라 아주 멀리서 날아온 것 같았다. 어둠 속에는 미미한 바람 한 점 없었다. 따라서 바람을 타고 온 건 아닌 게 분명했다.

소리는 아주 음산하고 싸늘하고 기분 나쁜 느낌을 주었다. 아주 낮고 작았지만 귀를 막아도 안 듣거나 피할 수 없었다. 가슴을 쥐어짜거나 머리가 빠개지는 것은 물론 살을 에는 통증이 온 몸을 훑었다. 어디서 이런 끔찍한 괴성이 나오는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통증이 오는 모양이구나. 악마의 감시꾼 코르비다이가 몰려오고 있어. 저 녀석들이 왜 나타난 것이지? 너희의 냄새를 맡은 건가?”

지니의 몸에서 나오는 노란색 빛은 서서히 약해졌다. 어둠이 그 틈을 타고 조금씩 다가왔다.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마른 종이에 물이 스며들 듯 천천히 빛을 잠식해 들어왔다.

“쌔~액!”

이상한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크르륵!”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날아왔다. 덩치가 큰 새였다. 활짝 펼친 날개는 온통 새까맸고, 굽은 발톱은 마치 큰 못처럼 날카로웠다. 새의 발톱 하나가 어둠에서 튀어나왔다. 쿨의 머리를 낚아채려 했다.

쿨은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진 덕에 붙잡히는 걸 겨우 피할 수 있었다.  

“정찰병이야. 조심하거라. 또 덮칠지 모르니까?”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새는 엄청나게 덩치가 커 보였다. 털은 거의 다 빠져 마치 곧 말라 죽어가는 것 같았다. 불이 타오르는 듯 눈은 이글거렸다. 부리에는 시뻘건 피가 줄줄 흘렀다. 보자마자 공포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흉측한 모습이었다.

“저 괴물 같은 새는 도대체 뭐야?”

유령을 만날 거라면서 자정에 화장실에 갔을 때를 빼고 지니와 리즈가 이렇게 무서워하기는 처음이었다.

“방금 말한 코르비다이란다.”

“그게 뭐예요?”

“지금 이야기해봐야 이해하지 못할 거야. 중간세계의 유령을 감시하는 새라고 할까?”

토르텐슨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눈 위에 대고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이런! 부르달라크까지 몰려오는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정말 왜 이러는 거지?”

깔깔깔!

어둠 속에서 난 데 없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세 아이는 웃음이 들리는 쪽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토르텐슨은 어둠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마법사 켈리, 당신은 여기 웬일이야?”

한 유령이 빛 속으로 천천히 목을 쑥 드러냈다. 얼굴은 아주 창백했고 눈매는 아주 날카로웠다. 그는 계속 낄낄거리며 웃었다.

“이 아이들은 누구지?”

“당신은 알 필요가 없는 애들이야.”

“몸에서 노란색 불빛이 나오는 이 아이는 정말 신기해 보이는군. 어떤 아이일까?”

켈리의 이마에서 반딧불이 같은 불빛 방울이 튀어나왔다. 방울은 리즈, 쿨의 머리를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머리를 건드린 게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이었다. 그는 아주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재미있는 아이들이야. 훌륭한 정보도 많이 가지고 있고.”

불빛은 이번에는 지니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어떻게 된 일인지 리즈, 쿨과는 달리 지니의 머리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주변만 맴돌 뿐 제대로 접근하지도 못했다.

“호! 불빛 방울을 방해하는구나. 네가 차단하는 방법을 배워서 아는 것 같지는 않고. 어떻게 된 일일까?”

켈리는 어둠에서 빠져나와 온 몸을 드러냈다. 며칠이나 굶었는지 금세라도 쓰러질 것처럼 홀쭉했다. 그는 지니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손을 뻗었다.

토르텐슨은 켈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오른손으로 허리에 찬 칼을 붙잡았다.

“뒤로 물러서. 한 걸음만 더 앞으로 오면 낭패를 보게 될 거야.”

그의 호통에 켈리는 주춤했다.

“허! 칼을 뽑으시려고? 이렇게 무서울 데가!”

켈리는 뒤로 조금씩 물러서더니 머리만 남기고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곧 코르비다이와 부르달라크가 몰려올 거야. 굳이 내가 힘을 쓰지 않아도 돼. 얘들아! 몸조심하도록 해라. 내 예상대로라면 나중에 다시 볼 기회가 있겠지.”

켈리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저 사람은 누구예요?”

“옛날에 연금술사이면서 마법사였어. 이름은 존 켈리야. 희한하게 재주도 좋은 유령이야. 중간세계에서는 함부로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지. 그런데 저 사람은 어떤 영문인지 중간세계를 제 안방마냥 설치고 다녀. 사실 이곳은 무한한 공간이지만, 거꾸로 보면 없는 공간이기도 하지. 거리가 아주 멀기도 하지만 거꾸로 모든 곳이 눈앞에 있다는 거야. 그래서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어. 물론 저런 마법사에게만 가능한 일이지. 나 같은 유령은 어림도 없어.”

지니는 유령이 사라진 어둠을 물끄러미 주시했다.

“여기는 왜 왔을까요?”

“글쎄다. 네 불빛을 보고 온 것인가?”

지니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노란색 빛은 조금씩 약해졌다. 어둠이 그 틈을 타고 조금씩 다가왔다.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둠은 마른 종이에 물이 스며들 듯 천천히 빛을 잠식해 들어왔다.

“아! 머리를 떨어뜨리기 전에 나의 원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 어때, 한 번 보여줄까?”

싱긋 웃는 토르텐슨의 말에는 장난기가 진하게 섞여 있었다.

아무 대꾸도 않고 침만 꼴깍 삼킨 쿨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반면 지니와 리즈는 재미있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무섭나요?”

“아까 말했듯 생각하기 나름이지.”

리즈와 지니의 표정을 살펴본 쿨은 여전히 주저했다. 목 잘린 유령의 진짜 모습을 보고 견딜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아주 잠시만 보여주세요. 너무 길지 않게요.”

“그렇게 하지. 딱 3초만.”

짓궂은 눈빛으로 세 아이를 쳐다보던 토르텐슨은 흐물흐물해지면서 기체로 변했다. 높은 기압 때문에 하늘로 날아가지 않는 담배 연기처럼 코앞에서 어른거렸다. 잠시 후에는 새로운 모양으로 덩이지기 시작했다.

“으악!”

지니와 리즈는 재변신한 그를 보자마자 고개를 돌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야말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비참한 모습이었다. 쿨은 아예 일찌감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

“됐어요. 이제 그만….”

토르텐슨은 다시 연기처럼 흐려지더니 피가 보이지 않는 퍼포먼스 예술가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무서웠던 모양이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요.”

“내가 미리 이야기했잖아. 생각보다 참혹할 거라고.”

끔찍한 비명 같은 소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두 명, 또는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천수만 명, 아니면 수천수만 마리가 내뱉는 것 같았다. 지니의 불빛은 눈에 띌 정도로 시들어 있었다. 이러다가는 오래지 않아 사라질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온 거니?”

지니와 리즈는 고개를 저었다.

“너희는 중간세계에 온 거야.”

생전 들어본 적이 없는 낯선 이름이 토르텐슨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쿨은 온갖 종류의 게임을 다 해봤지만 어디에서도 중간세계라는 단어는 들은 적이 없었다. 도대체 어디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중간세계란 건 뭐예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중간세계는 죽어서 저승에 가지 못한 유령들이 갇혀 있는 곳이지.”

토르텐슨의 입에서 끔찍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마디로 이곳은 유령이 모여 사는 곳이며, 어둠 뒤에는 유령이 득실거린다는 말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저승에 가게 된단다. 거기서 심판을 받아 착하게 산 사람은 천국에 가게 되고, 나쁜 사람은 지옥에 가게 되지.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받는 건 아니야. 그가 저지른 잘못에 합당한 기간 동안 벌을 받은 다음에는 천국에 갈 수 있어. 세상에 씻을 수 없는 잘못은 없단다.”

지니는 지옥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것처럼 끔찍했다. 어두운 영화관의 영사기의 흐린 빛에서 흘러나온 것 같은 온갖 처참한 장면이 그의 눈앞에서 오락가락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엄마 얼굴도 떠올랐다.

“지옥에서 얼마나 있어야 하나요?”

“가벼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면 100년만 지옥에 있으면 돼.”

세 아이는 하마터면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토르텐슨은 마치 하루 이틀을 이야기하듯이 1천 년이라는 숫자를 꺼냈지만 이제 겨우 열두 살인 그들로서는 100년이라는 세월을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가장 가벼운 형벌이 100년이라고요?”

“사실 100년은 눈 깜박 사이에 지나가는 시간이지. 내가 유령이 된 게 벌써 500년 전 일이야. 돌이켜보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금세 흘러갔어. 문제는 이곳 중간세계야.”

토르텐슨의 얼굴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포와 무기력이 교차하고 있었다.

“지옥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끝이 있어. 게다가 같이 고통 받는 영혼들이 곁에 있어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지.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밤이 되면 잠시 쉴 수도 있어. 이렇게 하루하루 고통을 보내다 보면 시간이 물처럼 흘러간단다. 하지만 중간세계는 그렇지 않아. 이곳에는 끝이라는 게 없지.”

만사에 합리적인 리즈는 토르텐슨의 말을 납득할 수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세상에 그렇게 불공평한 게 어디 있어요?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벌만 받으면 천국에 갈 기회를 주면서 유령에게는 왜 그런 기회를 안 주는 거죠?”

토르텐슨은 한숨만 내쉬었다. 

“네 말이 맞아. 불공평하지. 사후 세계의 법이 그런 걸 내가 어떻게 하겠니? 나는 살아 있을 때 세상만 불공평한 줄 알았는데 죽은 뒤 세상도 그렇다는 걸 죽은 뒤에야 알게 된 거야.”

지니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엄마 얼굴을 떠올렸다. 

“유령은 왜 저승에 가지 못하는 건가요?”

“죽은 다음에 무덤을 얻지 못했고 장례식을 치르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한마디로 시신이 내버려진 사람이란다. 그런 영혼은 유령이 돼 여기에 와서 살아야 하는 거야.”

지니는 엄마의 시신을 아직도 찾지 못했고 그래서 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는 아빠의 말도 생각했다. 그렇다면 엄마도 유령이 돼 중간세계에 있는 걸까? 

“그럼 시신을 찾아서 장례식을 치러주면 유령이 저승으로 갈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토르텐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다. 나도 저승으로 가고 싶어. 하지만 나는 죽은 지 벌써 수백 년이 지났어. 시신은 썩어 문드러져 흙이 됐겠지. 머리카락 하나라도 있으면 되는데 내게는 그것조차 남은 게 없단다. 그러니 무덤을 만들 수도, 장례식을 치를 수도 없어.”

크르륵!

점점 사그라지는 불빛 너머에 희미한 형상이 나타났다. 짙은 어둠에 가려 정확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모양새는 사람 같았다. 팔과 다리는 무척 가늘었고 등에는 큰 날개가 달려 있었다. 일부는 땅에서 걷고 있었고, 일부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형상은 불빛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했다. 지니의 빛을 몸에 쐬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몸통을 어둠에 숨긴 머리 하나가 불빛을 뚫고 들어왔다. 살점 하나 없는 해골 같은 늑대의 얼굴이었다. 뾰족한 이빨과 입에는 피가 말라붙었다. 눈동자는 동공이 없어 초점을 잃은 것 같았다. 공포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히 흉측한 모습이었다.

날카롭게 굽은 못 같은 발톱이 하늘에서 튀어나왔다. 발톱은 지니의 머리를 낚아채려 했다. 지니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진 덕에 붙잡히는 걸 겨우 피할 수 있었다.  

“부르크달라가 왔어.”

“그게 뭐예요?”

“중간세계를 지키는 괴물이란다. 세상에서 살 때 사람을 잡아먹거나 사람 시체를 먹은 경험이 있는 늑대, 독수리 같은 잔인한 동물 유령이 한 몸에 합쳐진 거야. 유령이 탈출하지 못하게 돌아다니면서 감시하는 놈들이지.”

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괴물들이 여기는 왜 온 거예요?”

“그건 나도 모르겠구나. 벨로시가 돌아와야 알 수 있어. 서둘러야겠구나. 이제 돌아가거라. 노란색 불빛이 완전히 사라지면 아무도 저들을 막을 수 없단다.”

“어떻게 돌아가죠?”

“뭐라고? 돌아가는 방법을 모른단 말이니?”

“안드레이 할아버지 수첩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어요.”

“이런!”

지니의 몸에서 발산되는 노란색 빛은 서서히 꺼져갔다. 거꾸로 괴물들의 괴성은 점점 날카로워져갔다. 세 아이는 얼굴이 납빛처럼 창백하게 굳은 채 온 몸을 찢을 것 같은 괴성을 피하려고 두 귀를 막았다.

토르텐슨은 주변을 날카롭게 두리번거렸다. 그가 코르비다이와 부르크달라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악마의 짐승이 유령인 그를 잡아먹지는 않겠지만 세 아이는 사정이 달랐다.

히히힝!

토르텐슨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을 때 어둠을 뚫고 벨로시가 희미한 빛 안으로 들어왔다. 주인이 맡긴 임무를 해결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이렇게 위험한 순간에 네가 시간을 잘 맞춰 돌아왔구나. 정말 다행이야. 일단 유령의 마을로 피신하도록 하자.”

토르텐슨은 말을 마치자마자 세 아이를 차례대로 말에 올렸다. 그는 맨 나중에 몸을 던졌다.

벨로시는 괴물이 득실거리는 괴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덩치가 큰 말이 달리는데다 지니의 몸에서 발산되는 빛이 아직 살아있어 괴물들은 쉽사리 덤벼들지 못했다. 아무리 어린 아이가 세 명이라도 사람이 네 명이나 탔으면 힘들 법도 할 텐데 말은 씩씩하게 달렸다.

쌔~액!

크르륵!

코르비다이와 부르크달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벨로시의 뒤를 추격했다.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주 가까운 것만은 분명했다.

벨로시는 뒤쪽에는 신경을 전혀 쓰지 않고 앞만 보고 계속 달렸다. 코에서는 시뻘건 김이 연거푸 뿜어져 나왔다.

세 아이는 뒷통수가 근질거렸지만 뒤를 돌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머리를 돌리는 순간 끔찍하게 생긴 괴물이 입을 크게 벌리고 달려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가 유령의 마을이야. 다 왔어!”

토르텐슨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니의 몸에서 퍼졌던 노란색 빛은 아니었다. 핏빛처럼 빨간 느낌이 강했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핏빛은 더욱 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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