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쓸 수 있는, 내가 담을 수 있는 글
‘어떤 글을 써야겠다!’
‘나는 꼭 이런 글을 써야지!‘
이런 다짐을 해본 적은 없다.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주제와 목차를 생각한 적은 있지만, 쓰기를 갈망한 글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썼다. 일기를 비롯해 짧게 끄적이는 메모라 할지라도 내 생에서 글쓰기가 멈춘 적은 없다. 그럼 대체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무얼 쓴 것이며, 앞으로는 뭘 쓰고 싶은 걸까. 작가가 되겠다는 막연한 꿈 말고, 어떤 글을 낳는 작가가 되고 싶은 걸까.
언제부터 글을 썼더라. 왜 글을 쓰기 시작했더라.
아마 한글을 배우고, 어느 정도 문장을 구사하던 때부터 꾸준히 썼을 것이다. 숙제든, 문서 작업이든 쉼 없이 해내야 하는 과업이 많은 대한민국 땅에서 나고 자랐으니까. 자연히 가장 많이 쓴 글은 일기겠다. 꼬꼬마 유치원생의 그림일기로 시작해서, 초등학교 때는 필수 방학숙제 중 하나가 일기였으니. 숙제 목록에서 일기가 사라진 뒤에 시키는 이가 없어도 일기는 계속 썼다. 게으름 끝판왕인지라 매일 쓰지는 못했고, 심지어는 두어 달씩 일기장을 방치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매년 일기장을 샀고, 일기를 썼다.
이제껏 쓴 글을 하나하나 펼쳐보니, 내 글은 작품이라기보다는 배설물에 가까웠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몰려올 때마다 토해내듯 쓴 글이 빼곡했다. 일기장은 하루 끝에 닿아서야 만날 수 있으니, 당장 마음을 비워야 해서 때때로 글을 써낸 모양이다.
세상천지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가득하다고 해도, 나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서. 아무도 칭찬하지 않지만 내심 스스로가 대견했던 일, 부모님과 크게 다투고 쾅 닫은 방문에 기대어 앉아 엉엉 울던 날, 오해가 쌓인 친구와 크게 싸우고 분이 풀리지 않던 순간… 모든 감정을 글로 풀었다. 한풀이하듯 일기장에, 수첩에, 스마트폰 메모장에, 어디든 손가락 끝으로 쏟아내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시간이 지나 다시 펼쳐보면 그때의 감정은 온데간데없고, ‘그랬었지’하는 희미한 미소만 어렴풋이 떠올랐다.
이제야 알았다, 여태껏 내 글을 부끄럽다고 여기고 혼자만 간직한 이유를. 일기장을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건 보통의 사람에게 상상하기 끔찍한 일이니까. 여과 없이 감정을 쏟아낸 글이 부끄러워서. 나만 아는 내 모습을, 나를 아는 누군가에게 들킬까 두려워서. 그렇게 꽁꽁 숨어 글을 쓰던 나와 종종 장문의 톡을 주고받던 친구 D가 말했다.
‘넌 꼭 글을 쓰렴. 어떻게든 글을 쓰렴!’
‘난 네가 너만 쓸 수 있는 글을 쓰길 바라’
지금까지 내 글이 부끄럽다고 했지만 그건 남들 앞에 내놓을 때 이야기고, 나는 내 글을 사랑한다. 좋은 순간을 나누는 이보다 힘든 순간 곁을 지켜준 이가 더 기억에 남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좋을 때도, 분노할 때도, 죽을 듯 아프던 때에도 언제고 어느 때고 내 글은 나와 함께였다. 희노애락의 1분 1초를 담은 것이다. 문장력이 좋지 않아도, 어휘가 화려하지 않아도,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애정이 간다.
결심했다.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겠다.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겠다. 누가 ‘이딴 것도 글이라고 썼어? 종이 아깝게?!’라고 해도 상관없다. 애초에 종이책으로 안 내고 전자책으로 나면 그만 아닌가. 메롱. 혼자 쓴 속마음이 누군가에게 닿으면 포근한 공감이 되기도, 달빛 같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걸. 남의 글을 읽으면서는 잘만 느끼다가, 내 글의 힘은 조금 늦게 깨달았다.
쓰고 싶었던 이야기, 앞으로 써나가고 싶은 이야기. 전부 내 이야기다. 조금 각색될 수도 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이 산문 하나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과물의 모습이 어떻든, 나만 쓸 수 있는 내가 가득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리고 닮은 이와 함께 나누고, 공감하고 싶다.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꾸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