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 보기 II / 라푼젤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거의 모든 작품을 보았다.
그중에서도 ‘라푼젤’은 여러 번 보게 되었다.
OST도 그림체도 마음에 들지만 담고 있는 메시지가 좋다.
‘나는 어떤 거짓에 갇혀 있는가?’를 생각하게 했다.
이야기는 마녀에게 젊음을 주는 마법의 꽃을 왕의 병사들이 꺾어가며 시작된다.
임신한 왕비는 꽃을 끓인 약을 먹고 병이 낫는다.
마법의 힘을 머금은 황금 머리카락을 가진 공주가 태어난다.
마녀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잘라가려 하지만 아이에게서 끊어진 머리칼은 마법을 잃고 검게 변한다.
그래서 아이는 납치된다.
공주는 신분을 모른 채 가짜 엄마의 높은 탑 안에서 자란다.
세상은 위험하다는 거짓말을 믿으며, 엄마를 위해 자를 수 없는 긴 머리카락과 함께.
이 영화는 가족 관계의 왜곡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핍이 큰 부모는 자녀를 착취한다.
[매슬로우의 동기이론]에서는 행동의 동기를 ‘결핍’과 ‘성장’으로 설명한다.
기본적인 정서와 욕구가 충족된 사람은 발전적인 방향으로 일을 성취하며 성장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에너지 뱀파이어가 된다.
자연스럽게도 이런 사람에게 자녀는 가장 쉬운 대상이 된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라고 한다.
결핍이 너무 커서, 혹은 결핍에만 집중되어 있어서 자녀마저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부모가 부모의 자리에서 자녀에게 정서적 지원을 하지 못하면
오히려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위치에 있게 된다.
‘역기능 가정’은 가족 구성원이 각자의 자리에 있지 않아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가정을 말한다.
라푼젤의 가짜 엄마는 딸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채우면서도, 이를 딸을 위한 희생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무서운 곳이기에 내 옆에 있어야 한다”는 그녀의 말은, 모든 진실을 뒤집은 거짓말이다.
이런 가정에서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리다.
구성원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진실, 우리는 진실에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있을까?
모든 사람이 부모의 몸을 통해서 세상에 온다.
우리는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삶을 여행하는 독립체이다.
낳아주었다는 이유가 자녀를 향한 요구와 폭력의 정당성이 될 수 없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유대인의 격언은
부모의 사랑이 신의 사랑과 같다고 예찬한다.
부모로부터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은 사람은 이 말이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그도 신의 사랑을 실천할 것이다.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줄기와 같이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그러나 이 격언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사람이 어쩌면 더 많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우리는 부모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했다.
이 사랑에는 생존이 포함되기에 절실하고, 치열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볼 때 신의 사랑에 가까운 건 아이의 사랑이다.
무조건적인 신의 사랑을 받은 건 오히려 부모이다.
아이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부모가 내세우는 ‘조건’으로 조각당한다.
자녀는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잃고 살아간다.
라푼젤이 가짜엄마의 거짓말에서 벗어나 진짜 부모를 만나고 공주의 신분을 회복한 것처럼
진실을 찾아야 한다.
기존의 뒤집힌 세상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살아온 세상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큰 대가도 따른다.
질서회복이라는 여정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필요하다.
부모는 자녀를 자신과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자녀는 부모의 결핍과 왜곡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
남편과 아버지의 자리에, 아내와 어머니의 자리에, 자녀의 자리에 있는 것이 질서이다.
각 자의 자리에서 그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온전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부모에게도 제자리로 돌아갈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는 자녀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면 된다.
오랜 습관을 버리고 제자리를 찾는 것이 쉬운 과정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함께 성장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