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감정과 떨어지는 법

좋은 영화 보기 I / 뷰티플 마인드

by Rumina

가장 편안한 시간은 과자를 옆에 두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시간이다.

시각과 청각, 미각, 감성까지 충족되는 그 시간은 고민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한다.

마음이 있을 곳을 모르고 둥둥 떠다닐 때 좋은 도피처가 된다.

해야 하는 일 앞에서 습관적으로 도망가는 곳이기도 하다.

예전엔 시원하게 팡팡 터지는 액션 영화가 좋았다.

폭발하는 차와 부서지는 건물, 통쾌하게 나가떨어지는 악당들을 보며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어느 날 영화 속 악당이 죽는 장면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마음을 발견했다.

’나쁜 놈이니까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감정이 이상하게 느껴졌고, 폭력적인 영상이 불편해졌다.


좋은 메시지를 가진 영화를 찾기 시작했다.

보았던 영화들 중 잔잔하게 큰 도움이 되었던 영화가 있다.

노벨상을 받은 수학자 ‘존 내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뷰티플 마인드]이다.


존 내쉬는 정신분열증을 앓으며 환시와 환청 속에서 가상의 인물들과 살아간다.

가상 인물들은 존의 일탈을 돕기도 하고 비밀스러운 임무를 맡기기도 한다.

그는 가상의 일들을 생생하게 느끼며 몸으로 반응하다가 아내를 죽일 뻔한다.

그리고 인물들이 나이를 먹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한다.

이로써 가상의 세계에 균열이 생긴다.

치료 과정을 겪으며 그 인물들이 허구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와 구분하지 못하고 반응할 때 가상의 인물들은 펄펄 살아 움직인다.
주인공은 이들을 환시와 환청, 환촉과 환후로 생생하게 느낀다.

허구임을 인정하고 부인할 때엔 자기들이 실제라며 격렬하게 그를 몰아세운다.

무슨 말과 행동을 하던 무시하기 시작하자 그들도 말없이 주인공을 바라본다.

하지만 없어지지는 않는다.

존 내쉬는 그들과 살지만 더 이상 영향받지 않는다.

노벨상까지 수상하며 존경받는 학자가 된다.


이 영화의 한 장면이 깊이 남아 있다.

난리를 피우던 가상의 인물들이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고 주인공이 그 옆을 무심히 지나가는 모습이다.

이 장면은 나에게 감정과 생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과 감정이 허구임을 아무리 깨달아도
무의식에 뿌리내린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무의식은 의식보다 힘이 세다.

전체 정신영역에서 무의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90%이다.

무의식에 엉켜 있는 기억과 감정들을 보고자 할 때 바로 볼 수 있고 정리할 수 있다면

어렵지 않게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무의식은 보는 것도 게워내는 것도 어렵다.

때로는 마치 내장을 꺼내어 보듯 고통스럽다.

이토록 괴로운 생각과 감정 앞에서 필요한 건 ‘수용’이다.

거부하거나 억압하는 것은 더 큰 에너지를 주는 것이다.

’악플보다 무서운 것은 무플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냥 놔두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해하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왜 그러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경우 왜곡된 생각과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이유를 가져올 수밖에 없던 ‘나’를 이해하여야 한다.

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왜 그러는지 모를 때는 무섭기도 하고 화도 나지만

맥락을 알게 되면 ‘그래서 그렇구나!’ 하게 된다.


이해와 수용은 한 쌍이다.

내버려 둘 때 이해되기도 하고, 이해될 때 내버려 둘 수 있다.

내버려 둘 때 홀연히 사라지기도 한다.

불편한 감정과 생각 앞에서 우리는 늘 회피와 억압을 선택한다.

싸우기보다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자유를 찾는 여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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