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내리기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커피 내리는 시간은 언제나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다.
커피 자체를 크게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핸드 드립 하는 과정이 주는 여유와 집중의 시간이 좋다.
원두가 신선할 때는 핸드 드립, 신선도가 떨어질 때에는 모카포트나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뽑는 것이
적당하다. 뭔가 마음이 어지러울 때에는 원두가 신선하지 않아도 굳이 드립을 하곤 한다.
물을 끓이며 드립 용품을 늘어놓는다.
원두를 갈고 커피필터를 접어 드리퍼에 넣는다.
끓인 물로 드립 서버와 컵을 데운다.
분쇄된 원두를 드리퍼에 넣고 서버 위에 올린다.
드립 포트에 끓인 물을 붓고 커피 위에 방울방울 떨어뜨린다.
커피 가루가 충분히 적셔지면 거품이 일면서 뜸이 든다.
이 순간이 제일 좋다.
원두가 신선할수록 거품이 풍성하다.
몇 초 후, 두 세 방울의 커피가 떨어지면, 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물줄기를 내린다.
커피가 다 추출되면 서버를 흔들어 향을 맡는다.
여기도 좋아하는 순간이다.
단순히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땐 모카 포트를 이용하고 쉬고 싶을 땐 드립을 한다.
정성 들인 커피 한잔을 하면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차분하게 시작한 핸드드립은 개드립이 되기 일쑤이고 미세한 맛의 차이 같은 건 모른다.
하지만 작은 차이로 커피 맛은 달라진다.
원두의 신선도와 날씨, 추출 도구에 따라 분쇄 정도가 달라야 한다.
습도가 높은 날 원두를 곱게 갈면 눅눅해진다.
핸드 드립으로 내릴 때엔 커피 머신을 이용할 때 보다 굵어야 한다.
원두의 로스팅 정도에 따라 물의 온도도 달라야 한다.
팔팔 끓은 물은 적당하지 않다.
100도씨 미만의 물을 사용한다.
이 과정은 그 자체로 작은 성찰의 시간이다.
커피를 내리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미시의 세상에 내려앉는 듯하다.
따뜻한 커피가 닿는 곳이 차갑지 않게 서버와 컵을 데우고, 물이 잘 통과되도록 원두를 갈고,
딱 두세 방울이 떨어지도록 적당하게 물방울을 떨어트릴 때 현존하게 된다.
이 시간이 쉼이 되는 이유이다.
불안한 마음은 늘 정처 없이 떠돈다.
불안으로 바라보아서 현재와 미래가 위태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미래가 불안해서 현재도 흔들리는 건지 알 수도 없다.
아니면 마음이 그저 떠돌아다니기만 해서 불안이 증폭되는지도 모른다.
어느 출근길에 문득 ‘다 가졌다’는 마음이 들었다.
가방에 읽을 책이 있고, 초콜릿도 있으니 그 순간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살 때에는 좋은 집도 많은 돈도, 좋은 차도 필요 없다.
막연한 그것들을 쫓는 것은 마치 손에 든 생수를 외면하고 먼 바닷물을 끌어와 마시려는 것과 같다.
만족도 해갈도 없다. 마실수록 목은 타들어 간다.
당신이 과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음속에 저장된 지나간 ‘지금’에 대한 기억의 흔적입니다.
미래는 마음의 투사물로, 상상 속의 ‘지금’입니다.
미래는 언제나 ‘지금’으로 올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
과거가 현재를 만든 것처럼 미래의 뿌리도 현재에 있다.
미래를 위한 일은 막연한 불안으로 단정 짓고 덜덜 거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감사와 사랑으로 튼튼하게 세우는 것이다.
이에는 ‘믿음’이 필요하다.
성실하게 심으면 거둔다는 믿음, 생명을 따라 세상에 나왔으면 살게 된다는 믿음 말이다.
믿음은 늘 어려웠다.
자신에 대해 무지한 만큼 보이는 것이 없었다. 현재에 딛고 설 땅이 없었다.
하나 둘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지금’에 머물기 시작했다.
개념 없이 컸던 불안은 사그라들었고 어느 아침엔 불안하지 않은 내가 어색하였다.
하고 싶은 일들이 생겼고 방향이 보였다.
마음이 분주할 땐 의식적으로 시간을 천천히 보내야 한다.
정성 들인 커피, 음식, 느린 발걸음 속에서 각 과정에 내려앉아보면 날리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는다.
보이지 않던 것들의 윤곽이 드러난다.
지금 이 순간을 살며 마음은 현재에 뿌리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