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교육의 역설
야자열매를 팔기 위해 수레에 싣고 가던 나그네가 길에서 한 아이를 만났다.
"시장까지 얼마나 걸리니?"
"빨리 가면 늦게 도착해요."
나그네는 아이가 멍청하다고 비웃었다.
해가 지기 전에 과일을 다 팔기 위해서 나그네는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포장이 안 된 도로는 울퉁불퉁했고, 제대로 묶이지 않았던 과일들은 하나씩 땅으로 떨어졌다. 한참 지난 후 수레가 너무 가벼운 것을 이상하게 여긴 나그네가 뒤를 보았을 때 수레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잃어버린 열매를 찾으러 되돌아간 나그네는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시장에 도착했다. 시장은 이미 파했고 입구에는 낮에 만났던 아이가 빈 수레 앞에 앉아서 그를 바라보았다.
“3~6 “세에 두뇌는 사고와 인성을 관장하는 전두엽에서 급격하게 신경 회로가 발달한다. 그런데 3~6세 때인 유치원 시기에 초등학교 과정을 선행 학습하면 그 시기에 발달해야 하는 전두엽에 악영향을 끼친다. 이 시기에는 창의·인성을 길러주고 동기를 유발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두뇌 발달 시기를 고려해 적절한 교육을 해야 한다. 부모 욕심으로 선행 교육을 시키면 아이 뇌를 망가뜨릴 수 있다.” 가천대 서유현 뇌과학연구원장은 뇌신경세포 회로가 성숙되지 않은 어린이에게 과도한 조기 교육을 시키면 각종 스트레스 증세가 나타나 두뇌 발달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관행이지만, 80년대 만해도 젊은 교사들 대부분은 고학년을 맡고 중견 이상의 교사들은 저학년을 맡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고학년을 주로 맡았던 초임교사시절, 학기 초에 상담을 하러 온 학부모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우리 아이가 1, 2학년 때에는 100점만 받았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성적이 떨어졌는지 모르겠어요. " 학교 일에 열성적인 학부모가 담임을 불신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푸념을 하고 가면 언제나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단순 반복 학습이 많은 초등학교 1, 2학년까지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비슷한 성적을 유지한다. 하지만 학습내용이 점차 심화되고, 사고력이 필요한 고학년이 되면 뚜렷한 변화가 나타난다. 스스로의 힘으로 공부하는 자기주도 학습 습관이 길러진 아이들은 학년이 높아질수록 성적이 점점 상승한다. 반면에 부모의 욕심으로 억지로 학습해 왔던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상황이 되면 급격히 자신감이 떨어진다. 그 결과 성적이 점점 하향곡선을 그린다. 시간이 지나 그런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부터 학부모의 넋두리에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었다.
조기 교육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아이마다 재능과 소질이 다르기 때문에 학습 속도가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간과한 부모들의 과잉 조기 선행교육은 아이의 자율성이나 창조성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야단을 쳐야만 공부하고 시켜야만 말을 듣는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아이로 자라게 할 뿐이다.
공부 내공은 서서히 젖어 들 듯이 쌓인다. 남보다 앞서 나가는 것이 목표인 조기교육이나 선행학습을 하면서 동시에 내부에 힘이 쌓이기란 불가능하다. 과도한 조기 교육이나 선행 학습을 하는 것은 이제 막 운동을 시작한 어린아이를 풀코스 마라톤 시합에 내보내는 것과 같다. 결코 완주하지 못한다. 반면에 내공을 쌓는다는 것은 체력을 기르면서 순발력과 추진력을 기르는 기초 운동을 하는 것이다. 기초 체력을 기르지 않고 달리기 시합에 나가게 되면 속도가 붙기 힘들고 중도에 포기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트랙에 들어서기 전에 충분히 힘을 기른 아이는 처음에는 먼저 출발한 아이와 다소 차이가 나더라도 금세 따라잡을 수 있다. 그런 것이 내공의 힘이다.
오래전 중국의 한 한국학교에서 1학년을 맡았을 때였다. 유난히 아기처럼 작고 귀엽게 생긴 아이가 있었다. 또래보다 2살이 어렸던 그 아이는 남자친구에게는 “형”, 여자친구에게는 “누나”라고 불렀다. 반 친구들한테 그 아이는 친구가 아닌 보살펴야 할 어린 동생이었다. 때로 그 아이가 1학년 답지 않은 엉뚱한 행동이나 말을 하면 차근차근 타이르는 친구도 있었다.
나중에 아이 엄마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 엄마와 아빠는 하나뿐인 아들을 위한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나중에 재수, 또는 삼수를 하더라도 다른 친구들과 나이 차이가 나지 않게 하려고 일찍 입학을 시켰다는 것이었다.
곡식을 빨리 자라게 하려고 잡아 뽑은 어리석은 농부의 이야기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