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을 하던 중 문득 식당 문 앞에 붙은 ‘洗碗工 “을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본 적이 있었다.
‘洗碗工 “은 우리말로 직역하면 ‘그릇 씻는 사람’의 의미로 ‘주방보조’ 또는 주방 아줌마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洗는 씻을’ 세’ 자이고, 碗은 사발’완’ 자인데 그릇으로 이해하면 된다) 하지만 내 눈에는 끝에 ‘工(공)’이라는 글자가 범상치 않았다.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별이 다섯 개 그려진 빨간색 깃발)의 왕 별은 공산당을 의미 하지만, 작은 별 중의 첫째는 工人(공인)을 의미한다. 즉 현재 중국에 있어 工人(공인) 즉 노동자 또는 기술자는 농민, 도시 소 자산계급, 민족 자산 계급에 우선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성(姓) 뒤에 工(공) 자를 붙이면, 이는 존칭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닌 것이 지금의 중국 사회이다. 그런데 설거지를 하는 주방 보조에게 工(공)을 붙인 것을 보고 특유의 대륙의 뻥이구나 하고 피식했던 기억이 있다.
나이 50이지 나면서 던져지는 생애전환기적 명제는, 점점 남성화되고 강해지는 마누라에 비해, 머리숱이 현저히 줄고, 색마저 바래며, 점점 힘이 빠지는 나의 현실과 어떻게 조화하느냐 하는 것이다.‘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고 깝죽거리다가 ‘바람벽에 헤딩하는 꼴’ 또는 파리채가 파열음을 내기 전 미처 이륙하지 못한 파리 신세가 되는 경우를 무수히 보았다. 그렇다고 비굴하게 타협하고 복종하는 것은 우리 성질에 영 맞지 않는 일이라 ‘하늘이 두 쪽 나야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인 것도 사실이다.
짧지 않은 고민의 세월을 마무리시킨 것은 ‘諸行無常(제행무상)’ 즉 세상의 모든 물질과 마음의 현상은 변한다는 경구였다. 따라서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변화를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까지 가능하다. 또 하나는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소위 ‘먹 방’ 프로그램들이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불알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부엌을 지배하지 못하는 남자는 소인배같이 보였다.
나는 이제 변화하는 나 스스로와 주변 환경에 새로이 적응할 이데올로기를 확립했고, 그 실천 방식에 대한 롤 모델도 학습했으니 내가 달성 가능한 현실적인 목표를 수립하는 일만 남았다. 이러한 고도의 체계적인 사유를 거쳐 설정한 나의 목표는 ‘설거지 하기’였고 여러 팬들의 무수한 걱정, 비웃음 그리고 변절에 대한 비판을 감수하고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 보기에 대단히 간단한 설거지도 막상 하다 보면 숱한 시행착오 끝에 나름대로의 요령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면 코팅된 프라이팬은 수세미등으로 닦는 것보다는 우선 키친타월을 사용해 닦아 코팅을 보호해야 한다 던 지, 물컵 등 쉽게 닦이는 것을 먼저 닦고 기름 묻은 그릇은 나중에 닦는 다던지, 더 나아가 식초 소독법을 구사할 수 있고, 밀가루 통의 남은 밀가루를 세제 대신 사용하는데 경지에 까지 이른다면 그 소소한 재미가 아주 쏠쏠할 뿐 아니라, 그동안 이 재미를 혼자만 누린 마누라가 ‘음흉스럽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또한 설거지를 하기 위한 사전 준비로, 수저, 밥그릇, 국그릇, 반찬 그릇, 그리고 음식을 만들기 위해 사용했던, 냄비, 뚝배기, 국자, 주걱 등을 정리하고 순서대로 포개는 동안에는 (물을 아끼고 싱크대 내 공간을 확보하며 설거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금 먹었던 음식의 감칠맛 나는 추억을 다시 느낄 수 있고, 남아서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하는 반찬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일기도 한다. 어쩌다 생선 가시 사이에 큼직한 살점이라도 발견하면, 흐르는 물에 염분을 씻어 슬그머니 개털이 (우리 집 강아지) 에게 주는 재미도 남다르다.
설거지는 매일, 그것도 밥 먹을 때마다 해야 한다. 물론 한 끼 정도 미룰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집안 한 구석에 음울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 올라오는 느낌이고, 그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강박감에 머리가 더 빠지는 것 같아 미룰 수가 없다. 아무리 깨끗이 해도 당연한 것이 또한 설거지이다.
매일 여러 번 유리그릇을 미끄러운 세제를 발라 고무장갑을 끼고 닦아도 딱! 한번 깨뜨린다면 타박을 면치 못하는 것이 설거지이다. 즉 ‘보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숙련된 工人(공인)이 하여야 하는 것이다. 즉 설거지는 집안의 하찮은 허드렛일이 아니라 단련의 단계를 거쳐 숙련의 단계에 이른 工(공)의 세계인 것이다. 내가 그걸 매일 한 번이라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마누라는 어쩌다 한번 해주면 감격해 행복해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그것이 반복되면 은근히 기대하고 요구하는 태를 낸다. 그다음 단계에 이르면 해주지 않으면 날개를 턴다. 나에게 있어 최근 설거지의 의미는 하지 않으면 구박을 받을 수도 있는 단계인 셈이고, 결국은 빈도의 많고 적음을 떠나 내 생의 일부임을 부정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즉 내가 성인이 된 이후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사용한 시간의 의미였던 事(사)의 일부가 된 것이다. 즉 내가 하는 설거지는 工(공)의 행위를 통한 事(사)의 목적을 달성하는 위대하고 숭고한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승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나는 흐르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나와 역시 함께 변하는 마누라와의 새로운 관계 정립에 필요한 새로운 규칙 즉 禮(례)를 제안한 것과 다름이 아니지 않은가?
2016년 2월 25일, 아침 설거지를 하며 생각이 여기에 까지 이르자, 그동안은 편하게만 들렸던 아침의 클래식 음악은 돌연 들리지 아니하고, 점차 빨라지는 심장의 박동이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아~ 나는 드디어 지천명에 이르러 이제는 아무 생각 없이 설거지만 해도 工(공)을 통해事(사)를 완성하고 그것이 禮(예)에 이르렀으니 어찌 道(도)의 한 조각을 완성한 것이 아니겠는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대조류에 열린 마음으로 과감히 몸을 던져, 숱한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느낌대로 행해도 그 단정함과 아름다움이 흩어지지 않으니 이 어찌 道(도)가 아니겠는가?
설거지를 하며 컵을 헹굴 때 컵 안에 들어갔다 급히 나오는 물소리에서 황하 등용문의 황토물 소리를 듣고, 속이 깊은 긴 물병을 솔을 이용해 닦은 후 물로 헹구어 병 밖으로 토해낼 때는 ‘飛流直下 三千尺 (비류직하삼천척)의 의미를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어쩌다 와인 파티라도 하고 설거지를 할 때는 여러 개의 와인 잔에 주방 전등 빛이 깃든 것이 천 개의 강에 달빛이 모두 깃든 것과 다르지 아니하다. (月印千江 –월인천강)
내가 지금 깨달은 이 道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소인배들에게는 구태여 이 경지를 전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아무리 설명해도 알 수 없을
터이니……..
설거지를 하며 가장 짜증 나는 것은 헹구기까지 마무리하고 싱크대를 깨끗이 닦은 후 사용한 수세미를 빨고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하는, 이 완성의 순간에 나타나는 새로운 설거지 거리다.
예를 들면 저녁에 간식으로 먹던 음식의 접시나, 아이들 방에서 미처 가져 나오지 않은 물컵 같은 것이다. 따라서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식탁 및 주방을 정리하는 마누라에게 꼭 집안을 살펴 이런 불상사가 없도록 누차 이야기한 바가 있다. 그런데 오늘! 그 마지막 완성의 순간에 마누라는 또다시 컵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닌가? 즉 工(공)을 통해 事(사)를 완성하고 그것이 禮(예)의 다 함에 이르러 고무장갑을 벗는 순간, 즉 道의 경지에 이르는 이 중대한 순간에 말이다……
나는 마누라에게 단지 재발방지 차원에서, 아주 소박한 언어로 “설거지와 道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중간에, 마누라는 무참히 말 내 말의 허리를 잘라버리고 일갈했다…. “옘~병! 설거지 쪼끔 하면서 별소릴 다하네”! 설거지해서 도통할 거면 난 모닝 말고 구름 타고 다니겠다!!”
1. 위 제목의 배경 사진은 만주 봉천(지금의 요령성 심양시. 辽宁省 沈阳市)에 있는 북한 식당 여 종업원들이 이른 아침에 식당 앞 길에서 체조하는 모습이다. 체조하면 건강해져 공화국에 즐겁게 복무할 수 있다고 했다.
2. 아래 사진은 심양시에서 한국인이 밀집해 살고 있는 이른바 '서탑'에 있는 서탑이다. 서탑(西塔)의 중국 발음이고 시타이고 서쪽에 있는 탑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심양시 동쪽에도 탑이 있고 그 탑의 이름은 동탑이다.
3. 아래 사진은 돼지 족발집에서 족발을 꼬실리는 모습이다. 만주에서 족발 이야기하려면 적어도 이 정도 족발은 꼬실려 봐야 어디 가서 "내가 소싯적에 족발 좀 꼬실렸다"할 수 있다.
3. 아래 사진은 서탑가(西塔街) 민박집 들어가는 골목에 있는 상점의 간판이다. 중국 단속반이 한글을 모르는 것을 이용해 안심하고 상품광고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