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한 번으로 원가 절감

by 누두교주

북 구라파의 맹주 스웨덴 남부에 말뫼(Malmo)라는 도시가 있다. 이곳을 가려면 우선 유럽의 허브공항을 거쳐(당시엔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을 거쳐 갔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가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지금은 다리와 해저 터널이 생겼다)



1990년대 후반 거산이라는 에이전트(Agent) 중개를 거쳐 이태리 나폴리에서 Mr. Nicola가 무두질한 양가죽을 구매했다. 이 가죽을 중국 청도의 纪学军(Mr.Ji)이 운영하는 봉제 공장으로 보내 옷을 만들어 스웨덴 말뫼의 Saki Ab.라는 곳으로 수출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즈음해 옷의 품질에 문제가 있다고 스웨덴에서 연락이 왔다.


가죽옷은 겨울철에 판매되지만 제조하는 입장에선 비수기이다. 이런 비수기에 가까운 곳도 아니고 스웨덴으로, 그것도 오더를 받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클레임 받으러 출장 간다고 하면 일요일 아침 예배당 종 신세가 될 것이 뻔하다. 하지만 그 핑계로 BJR(배 째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속은 쓰렸지만 휴가를 냈고, 비행기 표는 마일리지를 톡톡 털어 해결하고 호텔은 동행하는 거산 사장님(이하 'DH')과 한 방을 쓰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놀란 쪽은 오히려 스웨덴 Saki였다. 크리스마스 가까운 계절에 한국에서 바로 날아올 줄 생각 못했던 듯했다. 더욱이 이태리에서 니콜라 아저씨도 왔으니...... 관계자가 모두 모여 문제점을 확인하고 해결 방법을 도출해 원만히 합의했다. 당연히 귀국길은 가벼운 마음일 수밖에 없는데 이상하게 DH는 침묵했다. 혹시 내가 실수한 게 있는지 정중히 질문했지만 진심 섞인 눈 빛으로 아니라고 했다.


그해 연말연시는 즐겁고 편안하고 소란스럽게 보냈다. DH로부터는 연락도 없었고 나도 딱히 연락할 일이 없어 격조한 시간이 지나갔다. 나중에 안 사실은 내가 연말연시를 만끽하는 동안 DH는 치질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스웨덴에서 귀국하는 길에 DH가 침묵한 이유가 설명되었다. "통증이 심한 힘든 수술인데 고생이 많으셨다"라고 했더니 "치질 수술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밝지 않았다. "그럼 뭐가 힘든 거예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래와 같다.


모두가 아프다고 하는 치질 수술에 임하는 DH는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며 비장한 각오로 수술에 임했다. 그런데 그는 수술이 끝났는데도 마취의 효과로 인해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갑자기 남은 마취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급히 의사를 불러 간곡히 부탁했다. "마취한 김에 포경 수술도 간단히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최소한 마취 값만큼은 싸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의사는 당황하며 "힘들지 않으시겠어요?"라고 반문했지만 DH는 이미 결심을 굳힌 뒤였다. 결국 포경 수술은 이루어졌다.

시나브로 시간이 흘러 마취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DH는 극심한 통증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 통증을 호소하자 간호사 선생님은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원래 치질 수술이 좀 아픈데 포경 수술까지 해서 좀 힘드실 거예요. 하지만 무통주사가 들어가고 있으니 좀 있으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그러나 그의 통증은 줄어들지 않았고 밤새 고통에 시달렸다. 그렇다고 의사 또는 간호사 선생님을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술은 잘됐고(앞, 뒤 전부) 무리한 주장을 한 당사자는 DH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날이 밝았고 근무 교대된 의료진은 아침 회진을 돌기 시작했다. 고통에 지친 DH는 다시 말없는 사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체온과 혈압 등을 확인한 간호사 선생님이 링거와 연결된 무통주사를 점검하며 말했다.


"어머. 무통주사가 들어가지 않고 있었네요!, 혹시 아프지 않으셨어요?"


DH는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밤새 고통에 지쳐 입 밖으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무통주사를 점검하고 돌아갔다. 잠시 후 DH는 "아! 이게 무통주사 효과구나!" 하는 것을 느끼며 잠에 빠져 들었다.


치질 수술을 하면 엎드려 있으면 된다. 포경 수술을 하면 자빠져 있으면 된다. 그런데 앞, 뒤로 하면? 모로 누워있으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왼쪽으로 모로 누었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려면 일단 엎어지던지 자빠지던지 해야 하는데 그러면 수술 부위와 접촉돼 아프다. 따라서 그 동작을 공중에서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척 아프다. DH가 착각했던 것은 엎어지나, 자빠지나 모로 누우나 같은 과정이라고 오해한 것이었다. 좌로 모로 누웠다가 우로 모로 눕기 위해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는 생활은 며칠이 지속되었다. DH는 그때마다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래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에도 DH는 '앞뒤로 똑같은 대리운전'은 절대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아래위로 타는 콘덴싱 보일러는 사용하더라도!



(위 사진) 당시 칭다오의 Mr. ji이다. 공자의 고향인 취푸(曲阜)에서 찍은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