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은 매우 매력적인 패션 소재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가격 변동폭이 크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소, 양, 돼지 등 고기를 목적으로 하는 사육 동물의 수는 매년 크게 변동이 없다. 전염병 등으로 크게 줄어드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갑자기 늘어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기초 원자재 가격은 거의 일정하다.
또한 가공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 효과나 컬러를 만들어 내는 것도 다른 소재에 비하면 매우 제한돼 있다. 그러니 신제품이라고 가격을 올려 받기도 쉽지 않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가죽 관련된 일을 하면서 짧은 시간에 큰돈을 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어느 날 반전이 일어났다. 중국 남방에 출장 간 한승희 과장(가명)이 샘플을 보내왔는데 깜짝 놀랐다. 양가죽보다는 조직이 치밀하고 소가죽보다 가볍고 아름다운 자연광을 가진 가죽이었다. 게다가 가격은 양가죽의 60% 선으로 소가죽보다 쌌다.
하지만 아무래도 미덥지 않아 다시 샘플을 몇 장 보내도록 했다. 샘플을 받아 본 나는 두 가지 지시를 내렸다.
① 생산 가능 물량을 확보해 보고하라.
② 누구에게도 이 가죽을 보여주거나 그 존재에 대해 말하지 말라!
독일의 파트너에게 샘플을 보내면서 작년에 가격 문제로 수행하지 못했던 칼슈타트와 피앤씨, 그리고 씨엔에이 백화점의 오더를 수주할 것을 제안했다.
샘플을 받아본 독일 측 회신은 ‘가격 대비 너무 좋아서 믿지 못하겠다’라며 동물의 이름, 원산지, 그리고 H.S No.(통관을 위해 붙이는 품목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나는 ‘중국에 출장 가 직접 확인하고 연락하겠다’라고 회신했다.
한승희 과장은 매우 치밀하고 집요한 성격이다. 또한 검도를 오래 연마해 입이 무겁고 매우 점잖은 성품이다. 다만 천성이 선량해 남의 말을 잘 믿고 부정적인 이야기는 잘 못하는 스타일이다. 내가 출장 가 만나보니 이미 지시한 대로 이 매력적인 새로운 소재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바로 다음날 저녁(독일 시간 아침)에 날아온 소식은 ‘2,000장 오더 수주’였다. 두 번째 소식은 ‘너의 제안(offer)에 근거해 수주는 했지만 처음 보는 원자재라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흔한 고맙다(Thank you!)라는 말도 없이.....
그런데 새로운 소재를 제안한 우중(吴总 - 오 사장)과 상담을 진행하면서 매우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어떤 질문이던지 대답하는 속도가 늦었고 맥락 없는 대답이 여러 번 이어졌다. 중국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경우는 뭔가 숨기고 있거나 제대로 모르고 있을 경우이다.
- 이 가죽은 어떤 동물의 가죽인가? 양(羊)이다.
- 어디가 원산지인가? 사우디 아라비아이다.
- 사우디 아라비아 원피는 중동(middle east) 원피로 보통 이태리에서 가공되고 일부는 파키스탄에서 가공하는데 어떻게 중국에서 수입했나? 그럼 착각한 것 같다. 다시 알아보겠다.
- 테너리(제혁공장)는 어디인가? 허베이 성이다.
- 저장 성 사람이 어떻게 허베이 성 테너리와 거래하는가? 친구가 있다.
- 이 가죽으로 만든 제품을 어떤 바이어에게 수출했는가? 상업 기밀이라 말하기 불편하다.
- 그러면 H.S No. 를 알려 줄 수 있는가? 직원이 퇴근했을 시간이니 낼 알려주겠다.
다음날 아침 다시 상담을 하는데 만면에 웃음을 띤 우중은 원하는 정보를 가지고 왔다고 했다. 이 가죽은 ‘잡종(杂种)’가죽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H.S No. 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수출했니? 하고 질문했더니 그건 진출구 공사 (수출 대행 회사)가 대행해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일단 2,000장 오더의 납기를 확인해 달라고 했다.
전문용어로 '짜장면 스토리'에 빠진 것이다. 짜장면 스토리의 특징은 중국 사람은 매우 진지하게 논리적 구성을 가지고 큰 목소리로 장황하게 설명을 하지만 그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유통시킬 수 없다는 데 있다. 만일 그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면 바로 바보(idot)가 된다. (중국말로는 '250'이라고 한다)
늦은 오후에 우중을 다시 만나 납기를 점검했다. 예상대로 엉뚱한 소리를 한다. '잡종'의 특징은 아빠가 없어도 새끼가 안 나오고 엄마가 없어도 새끼가 안 나온단다. 나는 '순종'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마치 그 사실을 처음 나에게 배운 것처럼 감사해했다.
우중의 의도는 우선 원피 수급을 확인해야 하며 젤 좋기로는 직접 테너리에 가서 확인하는 것이란다. 1,500km이 넘는 길인데......... 더 좋은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한 과장은 상담이 시작되면서부터 내내 시무룩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뭔가 new item을 개발했다고 들떠 있었는데 상담 돌아가는 맥락이 짜장면 스토리였으니......
나는 마지막으로 궁금해했던 질문을 했다. 잡종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누구랑 누구 잡종이냐? 우중은 흠칫 놀라는 듯한 표정과 함께 자기 머리를 치며 "그걸 안 물어봤네 바로 전화해 물어볼게"라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허베이에 있는 사람인데 저장 말로 통화했다.
우중은 '알았다' 하는 회심의 표정으로 "아빠는 소, 엄마는 양(爸爸是牛, 妈妈是羊)"라고 했다. 노트에 받아 적기는 했지만 이걸 누구에게 말할 수 있는 정보는 분명히 아니다.
그때 그동안 침묵했던 한 과장이 높은 톤의 중국어로 질문했다.
"소 아빠 양엄마는 말이 안 된다. 종의 차이를 떠나 물리적으로 안된다!!"
나는 아차! 싶었다. 저 당연한 추론을 난 왜 하지 못했을까?
그러나 우중의 짜장면 스토리는 한 수 위였다. 눈을 크게 뜨고 눈알을 한 바퀴 돌리더니 크게 웃으며
맞아 맞아 맞아!!, 소 아빠 양엄마는 안돼! 내가 말을 잘못했어! 양아빠 소 엄마야!!.... 하하하!!
对!对!对! 牛爸爸,羊妈妈不行! 我说错了! 羊爸爸, 牛妈妈是对的!! 哈哈哈!
순간 나와한 과장은 눈이 마주쳤고 한 과장은 내 눈길을 피했다.
숙소에 돌아오니 독일에서 fax가 왔다.
"만일 네가 제안한 새로운 동물 가죽이 안정적으로 수급이 되지 않을 경우 어떤 대안이 있는가"
우선 목도 타고 가슴도 답답해 냉장고 안에 맥주를 꺼내 한 모금 마시고 답을 썼다.
“최악의 경우 양가죽으로 진행하겠다. 최종 결론은 내가 허베이 성 테너리 가서 확인하고 연락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