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날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는 존재가 있을까? 있다면 누구일까? 내가 믿는 신(神), 산신령, 동자신, 요괴, 신선 등의 초자연적인 존재, 아니면 어려운 한문이 잔뜩 써진 책을 공부한 도사나 현란한 솜씨로 카드를 다루는 타로 점술사?
정확한 답은 우리 모두가 앞날의 예측이 가능하다. 쉬운 예를 들어 보자. 내일 부산을 가야 할 일이 있다면 비행기, 기차, 자동차 등 다양한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 누구나 미리 준비할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전거를 준비하거나 걸어갈 요량으로 운동화를 여러 켤레 준비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게 좋은 방법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이 이러한데 우리는 왜 점을 쳐주는 사람을 찾아가 점을 칠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내일 부산을 가야 할 일이 있고 일정을 검토해 보니 비행기를 타고 가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한다면 내 자가용 비행기가 없는 한 내가 할 수 있는 결정은 여기까지 이다. 항공사에 비행기 스케줄과 좌석의 유무 그리고 요금 등을 묻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얻은 정보를 이해하고 내 일정과 비교 판단해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나는 이것을 〔선택의 재확인 작업〕이라고 부른다.
점치는 두 번째 이유는 〔나를 타자화(他者化)시키는 작업〕이다. 어떤 사람도 자기 눈으로는 직접 자신을 볼 수 없다. 반드시 거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거울에 비치는 나는 내가 아니지만 내가 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나의 모습이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잘못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분할 수 있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수정, 보완의 손질을 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거울의 크기, 깨끗한 정도 그리고 주변의 조명환경 등에 따라 거울에 비추어진 내 모습의 선명도가 다를 수 있다. 또한 내가 마스크, 안경, 모자 등을 쓰고 거울을 본다면 내가 가린 부분은 거울에 비추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점을 쳐서는 안 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 예를 들어 ‘내가 저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해 질까?’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으니 점을 치면 답을 구할 수 있을까? 만일 누군가 그렇다고 한다면 명백한 거짓말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와 절대 같은 존재가 아니다. 하루만큼 늙었고 손톱도 좀 자랐고 어제 과식했다면 몸무게도 변화가 있다.
같은 이치로 내일의 저 사람은 오늘의 저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다. 물론 그 변화의 크기가 무시할 만큼 작다고 할지 모르지만 결혼은 며칠이나 몇 년 만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닌 만큼, 변화를 가늠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늘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대답은 오늘은 맞을지 모르지만 내일부터는 오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결혼해서 어떤 상태가 되는 것이 ‘행복’ 한 것인가? 분명 같은 상태라도 한 쌍은 행복하다고 여기고 다른 쌍은 그렇지 않게 생각한다. 심지어 부부간에도 남편은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예, 아니오의 점괘가 나올 수 있겠는가? 있는 것과 없는 것, 길고 짧은 것, 높고 낮은 것, 소리와 울림, 앞과 뒤는 서로를 이루고 비교하며 바뀌며 어울리고 따르는 것② 이지 하나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물음을 가지고 점을 치려면 질문을 좀 더 구체화하고 상대를 함께 고려하면서 하는 것이 옳다.
처갓집에 인사 갔을 때 조조같이 생겼다고 퇴자를 맞았다는 당대의 석학은 결혼의 방법론으로 "딱 봐서 좋으면 하는 거다!"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결혼했다. 아내는 결혼 전에 궁합 점을 쳤는데 '매우 좋다(大吉)'라는 점괘를 얻었다고 했다. 그때는 무심히 넘겼는데 지금 내가 그때 그 점쟁이를 만난다면 두들겨 패주고 싶다. 아내에게는 분명히 정확히 맞는 점괘이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어야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해 태어난 사람은 없다. 까마득히 먼 곳에 있는 해와 달을 볼 수는 있지만 바로 눈앞에 속눈썹은 볼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어찌할 수 없는 주어진 숙명의 한계를 등짐 지고 죽음을 만나기 전까지 삶의 길 위에서, 살아가는 길을 묻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가끔 이미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기도 해야 하고 앞길을 가늠해 보기도 해야 하며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길을 묻고 거울을 보는 방법 중의 하나로 점을 본다면 왠지 멋스럽고 낭만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나의 또 다른 주책일까?
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 제목은 『달구벌 유사, 達句伐 遺事 - 대구의 걷기길』를 쓰신 김영현 선생님의 2014년 저서, 『길에서 길을 묻다』 에서 영감을 받았다. 김영현 선생님은 존경하는 춘자(春子) 반장님의 아우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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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출전은 노자도덕경 2장의 일부이다. 원문은 有无相生,难易相成, 长短相较,高下想倾, 音声相和,前后相随이다. 해석은 내가 다소 변형했으나 의미에는 대차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