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을 잘 알거나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에드바르드 뭉크의 절규를 보는 순간 어디서 본 듯한 강한 느낌을 받았다.
그 그림을 어떻게 설명하던 ‘두려움’의 순간을 가장 정확히 포착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것도 딱 한 사람만 매우 강력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순간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뒤에 걸어오는 두 사람은 지극히 평범한 상태로 보인다.
대부분의 경우 두려운 감정은 그 실체 또는 대상을 정확히 모를 때 갖게 되는 감정이다. 만일 두려움의 대상을 정확히 안다면 아예 포기하고 체념하던지, 아니면 죽기 살기로 저항하던지 또는 피식 웃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뭉크의 절규에 보이는 이 대머리 친구는 틀림없이 자기 혼자서만 무엇인가를 보았고 털이 곤두서다 못해 다 빠져 버린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는 온몸이 뒤틀릴 정도의 충격에 귀를 막은(또는 듣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니다.
이 친구 얼굴 부분을 확대해보면 코, 눈썹, 눈이 마치 성형 수술에 실패한 모습이고 오른쪽 손목에 오렌지색 팔찌를 한 것으로 보아 여자가 아닐까 상상해 보았다. 아마도 뭉크를 배신한 여자 친구를 묘사한 것이 아닐까? 나라면 나를 버린 여자가 뒷날 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이었는지를 뒤늦게 깨닫는 모습을 저보다 더 흉측한 모습으로 그릴 것 같다.
그런데 주역을 읽다가 뭉크의 그림을 보고 느꼈던 데자뷔의 근원을 만났다.(1)
위 사진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도 넘은 고대의 갑골문이다. 현대 한자로 쓰면 어두울 명(冥) 자다. 어두운 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명부(冥府)는 죽은 사람들의 세계이다. 절의 명부전(冥府殿)은 본존인 지장보살과 염라대왕을 포함한 10명의 지옥 대왕들이 있는 곳이다. 희랍 신화의 하데스가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명계(冥界), 저승, nether world라고도 부른다) 보통 하늘이 아니라 지하에 있다고 상상되는 곳이다.
대부분의 신(神)들은 하늘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들과 동거하는 천사들이 보통 하얀 옷을 입고 밝은 하늘을 날아다닌다. 하늘(천상, 천당, 천국, 극락 등)은 밝고 깨끗하고 따뜻하고 행복하며 경쾌하다.
그것과 달리 명부의 인상은 음침하고 어둡고 차갑고 무섭다. 후회와 고통과 절망에 신음하는 상상이 지배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희망’ 일 수밖에 없고 그 이유는 그것이 허용되지 않거나 또는 매우 발견하기 힘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실제로 천상이 있고 명부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천상과 명부의 중간에 살면서 아주 잠깐 천상에 다녀오기도 하고 이따금 명부에 갇히기도 한다.
천상을 세속적 행복으로, 명부를 세속적 고통으로 단순 치환했다는 비판이 가능하겠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세속적 행복을 추구하며 그 가능성에 늘 궁금해한다. 동시에 지금 내가 처한 고통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일이라 여기며 조금이라도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찾으려고 애태우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굴곡을 포함한 사람들의 삶을 운명(運命)이라 하고 그 운명을 계산해 앞길을 가늠해 보는 것을 산명(算命)이라고 한다.
(1) 주역 집해에는 명자가 총 20번 나타난다. 내가 오늘 본 것은 역경 제46 승(升) 괘의 상육효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