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은 그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다. 나무(木)에 피는 연꽃(蓮)이라니! 나뭇잎 하나 나오기도 전에 얼음이 덜 풀린 가지에 대뜸 움을 틔워 꽃망울을 맺는 것이 무척이나 당돌하고 야무지다.
그 꽃잎의 빛깔은 또 얼마나 고운가? 낮에는 따스한 햇볕을 쪼이는 것이 아니라 암팡지게 잡아 갈무리하는 것 같고 밤에는 달빛을 야금야금 머금지 않고서는 그렇게 빛나는 색을 가질 수 없다.
꽃의 대구리도 큼직해 푸짐한 데다가 가지마다 가득 달린 꽃은 멀리서 보면 흐뭇하고 가차 이서 보면 가슴 설레는 것이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다.
그래서 목련이 보이기 시작하면 ‘봄’이다. 그리고 비가 한번 오고 그 담부턴 눈부시게 자체 발광하는 절정을 누린다.
동네 좀 그늘진 곳에 잘생긴 목련나무가 있고 봄이 되면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무심히 지나던 길이었고 아마도 매년 꽃을 피웠겠지만 눈에 들지 않았었다. 어느 날 『월든』을 읽기 전까지 말이다. 평소 좀 삐딱하고 어수선하며 비약을 잘하는 성정이라 그런지 몰라도 『월든』이 별로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았다.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라는 동네의 호숫가에 무허가 주택을 짓고 궁상을 떤 이야기”로 매도하는 것은 무식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소소한 일상과 자연 심지어 통나무집 건축비까지 그림처럼 써내는 재간은 마음 한 구석에 묵직하게 남았다.
2019년 어느 날 늦은 아침 출근길에 그 목련을 만났다. 출근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해를 등지고 걸어야 하는데 앞에도 해가 있는 것 같았다. 퇴근길은 어둑한 시간이고 맥주 한잔 마신 후 흔들며 걷는 길인데 그 목련 나무를 보고 나면 슬며시 웃음이 나는 것이 마치 내가 꽃을 틔운 것 같았다. 술김인지는 몰라도 ‘나라면 우리 동네 이 나무 한그루와 월든 호수를 바꾸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봄에는!
그런데 그 징글징글한 코로나의 겨울이 지나고 올 것 같지 않던 봄이 왔고 그래도 움을 틔워가는 목련이 고맙고 대견해서 눈으로 쓰다듬기를 며칠, 누군가가 목련을, 목련을 그 목련의 머리를 쳐버렸다!
목련 꽃이 보기는 좋아도 땅에 떨어지면 금방 색이 변해 밉상이 되고 비닐처럼 추적추적 들러붙어 치우기 불편해서 그랬을까? 그럼 눈 온 다음에는 진탕이나 얼음길이 될 테니 하늘을 막을 요량인가?
작년 봄엔 갑작스러운 역병에 당황했었고 겨울 내내 우울했는데 이 봄은 무척 속상하다.
윗 사진 : 작년 봄 목련 사진이다.
금년 봄에 목련이 이렇게 됐다.